작은 흔적이 남긴 큰 질문

빈대와 벼룩, 내 몸에서 만난 문학

by 운조


『영국문학의 이해』라는 전공 수업에서 나는 오래된 시인 존 던(John Donne)의 「The Flea」를 읽었다.

작은 곤충 하나로 사랑과 욕망을 설명하는 대담한 은유.

그러나 내겐 그것이 단순한 시 구절로 머물지 않았다. 어느 날 내 팔에 돋아난 물집, 그리고 미국 생활 속에서 마주한 bedbugs의 흔적이 겹쳐 떠오르면서, 문학은 곧 작은 흔적이 남긴 큰 질문으로 다가왔다.


....팔에 돋은 물집


어느 날 내 팔에 물집이 돋았다. 처음에는 동전만 한 작은 자국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풍선껌처럼 부풀어 올랐다. 네모난 듯, 삼각형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곁에서 일하던 직원 하나가 내 팔을 보고는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혹시 독거미에 물리신 거 아닐까요? 심장 가까이 퍼지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자, 나는 더 불안해졌다. 피부는 점점 더 붉어지고, 가려움은 진물이 밴 듯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 했다.

약을 처방받아 며칠을 꼬박 먹었지만 차도는 없었다. 풍선껌 같던 물집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가까운 urgent care에 들렀다. 미국 병원에서는 주사를 잘 놓지 않는데, 그날은 의사가 주사를 놔 주었다. 그 순간부터 조금씩 증상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치 몸이 오래 기다려온 해답을 얻은 듯, 부풀던 피부가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며칠 뒤, 시어머니 팔에도 작은 붉은 발진이 돋았다. 산책길에서 풀을 스쳤기 때문이라 하셨지만, 내 눈에는 의심스러웠다. 나처럼 물집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집 청소를 하던 중 그 정체를 마주했다. 작은 그림자처럼 튀어 오르던 벌레 한 마리. 바로 빈대였다.

......벼룩, 문학의 은유가 되다

나는 모기 한 번만 물려도 크게 부어 오르는 체질이다. 작은 자국 하나가 며칠을 괴롭힌다.

그래서 빈대나 벼룩 같은 곤충은 나에게 낭만이 아니라 공포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 곤충이 문학의 중심 소재가 된 적이 있다.

존 던(John Donne, 1572~1631). 그는 17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메타피지컬(Metaphysical, 형이상학파) 시인’이었다. 형이상학파 시인들은 사랑이나 신앙, 삶과 죽음 같은 주제를 단순히 묘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발한 은유(conceit)를 통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물들을 연결했고, 논리적 설득(rhetoric)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하여 낯선 긴장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Donne은 우주의 별자리나 해부학의 뼈마디, 심지어 나침반 같은 도구까지도 사랑의 은유로 불러왔다. 그 중에서도 「The Flea」는 유난히 대담하다.


....「The Flea」의 전개


시인은 연인에게 벼룩을 가리키며 말한다.

벼룩이 먼저 나의 피를 빨고, 이제 그대의 피를 빨았다. 그러므로 그 작은 몸 속에서 우리의 피는 이미 섞였다.

“네가 거부하는 것은 이보다 더 큰 일이 아니다.”

그는 심지어 벼룩을 혼인의 침대요 성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인은 그 논리를 비웃듯, 손가락으로 벼룩을 눌러 죽인다. 붉은 자국이 남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시인은 다시 뒤집는다.

“보라, 그대가 두려워한 죄악도 사실은 이 벼룩만큼 하찮음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The Flea」는 거부 – 수락 – 죽음의 긴장을 벼룩이라는 작은 무대 위에서 압축적으로 펼쳐낸다.


....나의 몸, 나의 독서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불편했다.

벼룩이 내겐 낭만의 매개체가 아니라, 알레르기와 고통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내 몸은 벼룩이나 빈대에 물렸을 때의 발진과 가려움을 기억한다. Donne이 “사랑의 성전”이라 부른 벼룩은 내겐 병원 침대의 주사와 부풀어 오른 물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 왜 시인은 하필 벼룩을 택했을까? 그것은 가장 낮고 미천한 존재조차 인간 욕망의 본질을 비추어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 나는 그토록 거부감을 느끼는가?

내 몸이 기억하는 상처와 흔적이 문학의 은유보다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 독자로서의 감상


Donne은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학파(Metaphysical) 시인으로서, 벼룩을 통해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사유했다.

나는 21세기 이민자의 삶 속에서 빈대를 통해 생존의 현실을 배운다.

한국 현대 독자로서, 나는 이 시를 읽을 때 낭만보다 공포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동시에 깨닫는다. 문학은 반드시 아름답게만 다가올 필요가 없다는 것.

오히려 불편과 거부감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가 움트고, 개인의 체험이 해석을 풍부하게 만든다.


.....작지만 집요한 곤충들


그들이 남긴 흔적 속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 있음을, 그리고 문학이 여전히 내 삶을 흔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영국문학의 이해』 전공 수업에서 만난 존 던의 「The Flea」는 내게 단순히 17세기의 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의 기억, 이민자의 삶, 그리고 지금 여기의 생존과 맞닿아 있었다.

작은 곤충 하나가 남긴 흔적은 내 일상 속 불편과 두려움이었지만, 동시에 문학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 사유의 출발점이었다.

작은 흔적은 사라지지만, 그 흔적이 던진 질문은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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