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을 뒤로

미국 서부 하이킹으로 회복을 배우다

by 닥터로

바위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서, 스팸과 사과를 먹으니 약간 정신이 들었다. 인디언가든에서 물보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머리에 물을 쏟아부었다. 한참을 걸었기 때문에 팔다리, 머리 열이 식지 않았다.


콜로라도 리버까지 내려갔어야 하는데 아쉽지만, 내 몸상태로는 가는 게 무리였다. 무척 아쉽긴 했다.

콜로라도 리버를 가면, Plateau 포인트의 이 멋진 뷰를 못 보고, 콜로라도 리버는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플래튜 포인트에서 다시 인디언 가든으로 갔다가, 팬텀 랜치까지 가면, 저녁에 하이킹을 해야 할 거 같았고, 만약 사진을 찍지 않고 걷기만 하면 가능하겠지만... 겁이 나서 플래튜까지만, 생각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찐으로 보려면, 텐트 들고 며칠간 야영하고 자연인처럼 그랜드 캐니언에 푹 있으면 가능하겠다.


아무도 없는 이 고요함 속에는 멀리 독수리가 우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내가 어떻게 저 길로 왔을까..

걸을 땐 저길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하면서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점점 더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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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강이 힘차게 요동치면서 흐르고 있다.

혼자 생각도 많이 하고..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카메라 셧터를 눌러 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는 표현이 다 안되지만.. 장면은 압권이었다..

만약 누가 묻는다면, 꼭 추천한다.

꼭대기서 보지 말고, 꼭 내려와서 보기를


아쉽지만 이제 진짜 떠나야 했다..

더워서 못 견딜 시간이 다가온 거 같다.

다리는 많이 풀렸지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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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인디언가든부터 머리 위에서 빙빙 돌던 독수리가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까마귀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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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잠시 벗어두고.. 저 그늘아래서 잠시 휴식을 했었다.


이곳에 오면서도 뒤를 돌아봤었지만..

또 돌아갈 때 정면으로 바라본 그랜드 캐니언은 또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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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햇빛을 피하게 해준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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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돌아가는 길

사진으로만 보다가 그 사진 안으로 내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든다


그늘이 없는 곳을 걸어오다 보니.. 많이 지쳤다.

그런 가운데.. 오아시스와 같은 인디언 가든을 보자.. 마음이 매우 푸근해졌다.


기온은 오전보다 약간 더 올라간 4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멀리서 갑자기 구름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제 내가 올라가는 곳에는 이미 해가 가리어져.. 그늘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올라오는데.. 내가 완전 맛이 간 표정이었는지 3마일 휴게소에서 레인저가 어디서 올라오냐고 해서 Plateau에서 왔다고 하자.. 잘했다고 한다. 혼자 하는 하이킹은 자기네들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원래 혼자 하는 하이킹은 금지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사진 한 장 찍어주겠다고 한다.. 아주 잘 나왔다.. 얼굴이 안 나오게 하늘만 찍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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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게 휴식을 하고 가라고 하며..

초콜릿도 하나 줘서.. 꿀맛 같은 당분을 섭취했다. 내려갈 때.. 초콜릿을 준비 안 한 게 매우 아쉬웠었다.

다시 사진을 온도계 옆에서 찍으라고 하면서 찍어 줬다. 그건 개인 소장하기로..


구름에 가리어진 그랜드캐니언의 모습은 또 다른 멋을 준다.

이제 강렬했던 햇빛에 전체가 반사된 그랜드캐니언이 아닌 구름사이에서 내리는 빛에 따라 음영이 생긴 그랜드캐니언의 색상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아침과 점심.. 시간대에 따라서 모습이 계속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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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르막은 정말 힘들었다..

이때 한국 돌아가면 살부터 빼고.. 중간에 철퍼덕하고 앉고 싶었다.

발목에 통증이 오고, 무릎이 너무 아파서 걷기 힘들었다.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속도는 내지만, 다른 사람을 앞으로 계속 보내며 걸어 올라갔다.


몸은 고통스러웠지만, 올라가면서 본 그랜드 캐니언의 모습이

아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구름과 햇빛이 만들어낸 한 폭의 그림 같아서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사진 찍고, 또 찍고...


이렇게 떠나는 게 아쉬웠다



한참을 올라가서.. 해가 점점 지는 모습을 보니..

그랜드 캐니언은 감춰진 자기 색을 들어낸다..

하루종일 태양의 빛을 받아서 마치 지는 태양이 아쉬웠던지

붉은색을 더 찐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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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쓰면서, 해 지기 전에 정상으로 다시 올라왔다.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특히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신발을 벗어보니.. 이미..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혀서.. 걸을 때마다 통증이 심했다.

작은 나이프를 이용해 양쪽 발바닥 모두 물을 빼고, 빈 껍데기 Skin을 대고, 붕대를 감고, 양말을 다시 신었다. Skin을 빼 내면 맨살이 너무 아플 거 같아서 그랬다. 군대 시절 행군뒤도 그랬는데 그때와 똑같은 처방을 했다


그래도 안전하게 돌아왔다. 이 멋진 그랜드 캐니언을 하이킹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당시는 못했고, 교회 다니고 난 뒤 감사기도를 드릴 때, 이때를 기억하며). 매우 아쉬움이 많이 남는 건 지금 생각해 봐도 Rim to Rim을 할걸, Tonto West로 가서 캠핑하면 더 좋았을 걸. 좀 더 깊이 좀 더 깊이 들어와야지 하는 그랜드 캐니언이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았지만.. 난 속으로 할 수 없어, 할 수 없어 하지만 여기까지만.. 여기까지만 내가 할 수 있다 했던 거 같다.


올라온 뒤.. 내가.. 저길 다녀왔구나.. 감격했다.

올라오는 길에.. 위에서 사람들 (관광객)들이 환호성을 부르는 사람과 박수를 쳐주는 사람..

그리고,, 저 사람들 뭐지.. 하는 사람들 반응이 달랐다. 올라와서.. 사진 몇 컷 찍고 가려는데.. 한 외국인 (미국인 아닌)이 저 아래 다녀왔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자. 박수를 쳐준다.. 사람들이 딱 알아보는 건 아래에서 올라온 하이커들 대다수가 모두 붉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에 다들 탄광에서 바로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신발을 보니.. 온통 그랜드 캐니언의 붉은색 모레가.. 있고.. 종아리가 많이 그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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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왔다고 하며 자기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찍어주고 이메일로 보냈다. (좌), 화상같이 그을 종아리와 등산화 (우)


이날.. 호텔로 돌아가서... 가장 비싼 화이트 와인을 두 병 마시고 정말 혼절했는데도..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몇 번이고 깨었다. 하지만,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인생의 버킷리스트였던 그랜드 캐니언 하이킹을 해서 무엇인가 성취한 느낌이었다.


사람이 그렇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못했을 때.. 우리는 방향을 잃은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매사 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런데 막상 성취하고 나니... 대단하다는 생각은 금세 사라지고, 당연한 거처럼 생각 되거나, 자랑거리로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랜드캐니언 하이킹을 해보고 바위, 흙 맛을 본 거 자체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거에 살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로했던 거 같다. 어쩌면 뚱뚱했던 나의 몸을 학대하는 과정이었더라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내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날 저녁 와인을 혼자 먹으며.. 나도 모르게 잠이 푹 들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Philippians 4:13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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