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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May 31. 2024

하루 한 권 독서

[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 김제동 외 7분 (2편)

질문이 있어야 답을 찾는다. 질문이 없으면 답도 없다. 하지만, 삶의 속도가 빨라질 때는 질문을 잊게 된다. 그 속도를 늦추어 주는 게 독서 같다. 이미 질문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한 발 앞선 사람 같다. 그 질문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답을 잘 보여 주는 책이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예리하고 정확한 눈을 가진 전문가를 통해 답이 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음을 알 것 같다. 


 3명의 전문가에 이어 경제 전문가 유현준 교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새로운 시각을 준다. 선거철마다 기본 생활비를 이야기하는 정치인이나 핀란드나 스웨덴의 국민들이 매달 고정적으로 받는 생활비가 가지는 필요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1인 기본 생활비로 월 30만 원은 최소한 사회가 개인들의 생활을 지켜주기 위한 안정망이다. 잘살든 못살든 누구나 존재 자체로 사회로 기여하고 있음을 인식시켜 주는 돈이다. 사회에 기여한 몫으로 기본 생활비가 나온다면 사람들에게 작은 자존감을 심어 줄 것이다. 그냥 이 사회에 있어 주는 것 자체로 감사함이 표현된 돈이 기본 생활비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새로운 관점이지만 매력적이다.  4차 혁명 시대의 노동의 주류가 긱워크(Gig Work: 내가 원하는 만큼 업무 선택)라고 하는데, 기본 생활과 긱 워크 형태를 통해 개개인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노력을 좀 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리 분배를 해준다는 개념이 없는 공산주의 와는 다르다. 20년 전만 해도 독일에서는 아이들을 3명만 키워도 매달 정부에서 150만 원 정도의 생활비가 고정 지급 되었다고 한다. 독일이 인구 감소를 겪거나 실업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적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인 것 같다. 정부에서 돈을 주면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이원재 대표가 보여주는 소록도의 ‘한 생병’ 환자들의 생활을 보면 지나친 기우라는 것을 알 것 같다. 정부에서 모든 생활비와 의료비를 지원받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있는 분들은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실천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생활비를 충분히 받는 스웨덴(작년에 얼핏 봤던 내용으로는 한 가정당 150만 원씩이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명확하지 않다)은 사회적 신뢰도가 80%라고 한다. 소득이 평등한 나라일수록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기본 소득을 보장해 주면 사람이 서로 믿게 된다는 것이다.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기본 소득을 가지고 생산, 분재, 소비가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사회에서는 질투가 사라진다. 남이 잘되어 세금을 많이 내고, 그 세금으로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는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가 형성 될 것이다. 실패하는 사람에게는 안락하게 밑에서 바쳐주는 쿠션이 되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기본 생활비다. 


 ‘사람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져야 할 몫이 있고, 자본은 그 몫을 보장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해, 예를 들면 세금으로 기본 소득을 도입해서 모든 사람에게 그 몫을 보장해 줘야 하는 거지.’ 

수혜자가 있는 복지가 아니라 국민 주주로서 배당금을 받는 기본 생활비에 대한 그 긍정성에 적극 찬성하게 된다. 조건 없이 주는 돈을 받는 순간 힘이 생긴다는 대표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들으면서,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 것 같다. 헬 조선이 아니라 해븐 코리아를 기대하게 만든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이야기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라는 감정을 낳게 한다. 뇌가 또 다른 변화 기를 겪는 청소년기에는 집중력이 다양한 곳으로 분산되고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고 한다. 집중하라고 너무 몰아 붙여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린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못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채소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독을 미각이 발달한 아이들에게는 그 쓴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밥 숟가락에 억지로 채소를 놓고 먹으로라고 강요한 무지했던 나를 반성해 본다. 


 질문이 있는 교실이 왜 중요한 지 알 것 같다. 궁금해하던 것에 대해 답을 얻게 될 때 장기 기억으로 저장될 확륙이 3배가 더 높다는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 질문을 상징하는 물음표를 교실에 걸어 두어야겠다. 많은 질문을 유도해 내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다. 


 사진을 보고 자신의 몸을 판단하는 실험에서는 예외적 결과가 놀랍다. 이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호감 가는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자신의 심박수를 보여 준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감정과는 상관없이 임으로 높은 숫자의 심박수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 아닌 보인 숫자로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판단하는 다양한 결정들이 정확할 수 없음을 알 것 같다. 


 사랑에 대한 뇌과학자의 이야기는 희망을 준다. 결혼을 두려워하는 미혼들이 흔하게 하는 말이 사랑의 감정은 3년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그 불안정한 감정을 올인해서 전 인생을 걸기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3년 이후부터는 함께 있는 것 만으로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고, 마음의 평온을 느끼도록 옥시 토신이 분비 되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면 자제가 쉽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또한,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교수의 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의 귀한 자원들이 스스로 이 사회를 떠나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들 개개인의 탓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국립 과천 과학관 이정모 관장의 편안한 인상은 독자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말을 드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130만 년 정도 존재하고 있고, 호모 사피엔스는 30만 년 동안 존재해 오고 있다고 한다. 생물이 멸종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말도 긴장감을 준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70~95%가 사라지는 여섯 번째의 대 멸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 최상의 포식자인 인간은 사라지는 일순위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인류의 수명이 짧으면 500년 길면 1만 년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은 긴장감을 준다. 지구상의 2,000만에서 1억 종이 넘는 생물이 살고 있지만, 이는 지구 등장의 생물의 1% 정도 안 되는 수치이다. 그 1%가 오랫 동안 살아남기를 바란다. 


 사람이 죽으면, 탄소가 되고 그 탄소가 공기 중 산소와 만나 이산화 탄소가 된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에서 이산화 탄소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온난화로 인해 수면이 높아지면 물속에 있는 메탄이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데 이는 온실 가스 이산화 탄소 보다 80배 높은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관장의 말처럼 동네 깡패 같은 미세 먼지에 신경 쓰기보다는 기후 위기의 주범이자 핵폭탄 같은 메탄 비율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육식을 자제하고 채식을 왜 해야 하는지, 생활 속에서 전기를 왜 아껴야 하는지,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닐 수 있는 개개인의 실천을 왜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준다. 나만이라도 라는 개념을 잡게 된다. 그래서 빈 교실의 불을 끄게 된다. 고기자체로 먹기보다는 채소에 고기가 약간 들어가는 정도로 줄이게 된다. 책은 이렇게 생활의 변화를 부른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창남 교수가 들려주는 고 신영복 선생님의 사상을 접해 본다.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라는 책을 몇 해 전에 읽었다.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가 마치 먼지가 털린 가구처럼 서서히 신영복 선생님의 사상이 기억이 난다. ‘책은 멀리서 찾아온 벗입니다.’라는 신용복 선생님의 문구를 뒤로 하고 김창남 교수와 김제동 씨의 담화를 듣는 재미가 크다.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게 인간이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대해야 한다’는 춘풍 추상을 실천해 본다면 가능한 이상이 될 것이다. 저잣거리의 대중문화가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인문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 생활 속 여기저기 존재하고 있다. 사람이 각자 자기 정체성, 주체성을 갖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어떤 권력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구조에 의해서 특정한 주체로 호명되고 있을 수 있다는 호명 이론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수동적으로 호출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조금 떨어져 나를 보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도적인 공부가 필요함을 알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주변에 크고 작은 축제나 개인이 즐길 수 있는 소소한 문화거리가 없어서 일거라는 교수 의견에 공감이 간다. 주말에 공원이나 바닷길을 걷다 만나는 음악가들의 노래나 연주는 그래서 발거음을 멈추게 만든다. 우리 모두 그런 소소한 즐거움에 목이 말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작은 만남이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결국, 책은 이렇게 간단하게 변화의 시작을 알려 준다. 직접 사람을 만날 수 없지만, 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화를 통해 성장해 가는 게 인생의 또 다른 맛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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