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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Jun 23. 2024

내 사랑, 고여사!

9. 끝나지 않을 삶의 열정

물 위를 걷는 것이, 또는 공기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지구를 걷고 있는 그 자체가 기적이다. 틱낫한 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을 열차에 비교해 본다면, 탄생의 승착역에서부터 죽음의 종착역까지 쉼 없이 달리는 게 삶이다. 목적지에 빨리 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두 점위를 달리는 동안 창밖 풍경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서 내리기도 하고, 다시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기도 한다. 


 엄마의 삶을 써내려 가면서, 인생의 여정 구간 구간,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을 살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농사짓고, 소를 키우고, 자식들 잘 키워내는 삶이 자신의 전부인 삶도 의미가 있지만, 세상에 한 여자로 태어나 자신만을 위한 오롯한 삶은 없었을까. 엄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형이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남들보다 빠르게 시도해 보신다. 초등학교 시절, 바구니가 달린 노란 자전거를 사 오신 엄마가 떠오른다. 자신은 자전거도 타지 못하면서, 우선 사 오신 것이다. 자전거를 끌고 학교 운동장에서 넘어질 듯하면 긴 다리로 중심을 잡고, 그렇게 쓰러질 듯이 몇 바퀴 타시고는 바로 자전거를 타셨다. 자전거는 우리 집에서 시장까지 가는 길을 짧게 만들어 주었고, 이동의 편리함을 엄마 생활에 선물이 되었다.


 자전거 보다 더 빠른 오토바이가 나오자, 면허증 없이 탈 수 있는 작은 오토바이도 발 빠르게 사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을 오가시던 엄마는 늘 바쁘셨다. 그리고 드디어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에도 도전하신다. 당시, 엄마 친구들 중에서 면허증을 가지고 운전을 하실 수 있는 사람이 엄마가 유일했다. 무엇이든 처음 사보고 발 빠르게 삶에 적용해 보는 그녀로 인해 서서히 주위의 엄마 친구들이 한 명씩 엄마를 따라서 운전면허를 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소장사를 하셔서 돈을 벌어 주시기는 했지만, 항상 친구들과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홀로 외롭게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엄마는 구슬을 꿰어 노리개나 쿠션을 만드시기 시작하셨다. 언니와 오빠들은 이미 시집 장가를 갔던 때라, 엄마는 내 결혼식을 위해 미리 준비한다고 옷장에 다는 장신구를 비롯해, 화장지 케이스와 두 마리의 원앙이 마주 보고 있는 쿠션까지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늦은 결혼을 하는 나에게 오랫동안 간직해 오신 구슬로 만든 엄마의 작품들을 선물로 주셨다. 여전히, 원앙으로 만든 쿠션이 우리 집 거실에 놓여 있다. 마음이 울적하고,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끼실 때 구슬로 작품들을 만들어 낸 엄마의 외롭지만 희망을 노래하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혼자만의 외로운 섬에 사는 듯한 느낌이 드신다고 하셨다. 엄마는 사람이 많은 아파트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아버지는 소도 키울 수 있고, 주위 눈치 볼 것 없이 맘 편하게 살 수 있는 양정 마을을 떠나기 싫어하셨다. 그래도 양정 마을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엄마는 자신의 삶이 외롭고 힘들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아랫 양정 마을을 가셔서 위로를 받고 오시곤 했다고 한다. 당시 아랫 양정이는 소를 키우고 살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집도 없이 비닐 하우스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던 곳이었다.


오래된 집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보다는, 집을 짓는 것도 가장 빠르셨다. 오래된 집 뒤에 새집을 짓자, 어느 순간 큰아빠와 작은 큰집 그리고 고모들도 따라서 집을 지으셨다. 우리 집 뒤에 집을 지을 때의 이야기를 가끔 들려주신다. 엄마의 이종 사촌인 오빠와 인부 몇 명이 집을 지어 주시기 위해 우리 집에서 숙식을 다 하셨다. 집을 짓는 몇 달 동안 엄마는 하루 삼시 세끼와 간식까지 챙겨 드렸고, 중간중간에는 자신이 집 짓는 일까지 도왔다고 한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끝날 것 같아, 그녀 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도왔다고 한다. 몸을 아끼지 않고 쉼 없이 모래를 퍼다 날라주는 엄마를 보고, 사촌 오빠가 조용하게 ‘누이 몸 좀 아끼고, 매형보고 좀 하라고 하이소.’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항상 앞서고, 아버지는 지켜보고만 있는 모습이 사촌 오빠에게도 보이셨나 보다. 


 집 짓는 동안, 엄마는 오른손을 너무 많이 써서, 그 후 오른쪽 어깨 인대가 끊어졌다. 급하게 병원에 가서 연결수술을 했지만 가끔 비가 오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엄마의 신경을 뺏아 간다. 소 죽을 쒀서 먹이느라 오른손으로 밥을 드시지 못했던 일과 집 짓느라 모래 퍼다 날리는 일로 엄마의 오른쪽 어깨는 주인에게 수시로 쉬어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하는 것 같다. 집을 짓는 동안 나는 대학생이었고, 엄마는 단 한 번도 우리들에게 그런 속사정 이야기를 하시지 않으셨다. 단지, 앞으로 다시는 집을 짓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셨다. 엄마의 사촌 오빠는 인부들과 객지에 나와 집을 짓는 일을 하면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가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나고 나서는 인부들과 술 마시고 도박을 해서, 부모님이 주신 돈을 그의 집으로 생활비를 보낼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고 한다. 명절은 다가오는데 집으로 부칠 돈이 없는 것을 아시고는, 명절을 가족과 평안하게 보내시라고 엄마가 따로 돈을 드렸다고 한다. 


 밤마다, 술과 도박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속상했던 게 막내 동생에게 술심부름을 시키는 거였다고 한다. 중학생이던 남동생에게 운전해서 술을 사 오게 했는데, 당시 시골은 아이들이 술을 살 수 있었다. 동생은 술심부름하고 얻는 용돈에, 운전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흔쾌히 심부름을 했다고 한다. 환경이 아들을 망칠까 봐 노심 초사 하셨던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동생이 읍내 오락실에서 게임을 많이 할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오락실에 가서 동생을 소를 묶는 사내끼로 묶어서 집으로 끌고 왔던 이야기를 하셨다. 그날 오죽 창피했으면, 동생은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오락실을 가지 않았다. 주위 어른들의 생활태도를 보고 물들듯이 아이들도 닮아 간다. 그래서 어른은 누릴 자유가 있지만, 지켜야 할 의무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버지의 그 급 처방이 효과가 있었지만, 사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늘 후회의 말씀을 하셨다. 오빠들은 공부를 잘해 걱정이 없었는데, 막내 동생은 생활도 넉넉했고, 막내라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특권으로 공부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인 건 지금 막내 동생은 사업을 하고 있고, 부모님께 금전적 선물을 아끼지 않는다. 책의 제목도 막내 동생이 평소 엄마에게 애칭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녀석은 넉살도 좋고, 애교도 많아 엄마에게 늘 ‘고여사’라는 말로 애정을 표현하곤 한다. 


 아버지는 엄마처럼 뭔가 삶의 열정으로 쉼 없이 달리는 스타일은 아니셨지만, 그는 늘 긍정적이고 낙관적 이셨다. 그래서, 엄마가 자식들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이 많이 들어도 단 한 번도 반대하시지 않으셨다. 소를 키워 돈을 벌기 시작하시면서, 자식들이 객지에서 공부하는데 드는 큰 비용들은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어떤 사람도 부럽지 않다고 하신다. 자신의 삶에서 단, 한 번도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없이 살았고, 늘 현금을 두둑이 들고 다니셔서 그런지 자신의 마음만은 최고 부자시다.  비록, 엄마는 돈을 아끼느라 늘 생활의 긴장감을 가지고 사셨지만, 아버지는 인심 좋고 마음 좋은 분으로 알려지셨다. 그래서 엄마는, 가끔 ‘함께 살아 봐야 내 속을 알 거다’라고 이야기하신다. 


 우리들이 모두 성인이 되자, 엄마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서서히 찾아 하셨다. 시골은 여전히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있다. 엄마는 그 풍물패에서 꽹과리를 치는 상쇠 역할을 하셨다. 작은 조직이지만, 엄마가 리더라는 게 당시에 참 자랑스러웠다. 

삶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아버지의 낙관적 긍정성이 우리 자식들 모두가 닮은 영역이다. 열심히 살아가되, 결국은 잘 될 거라는 긍정성이 그래도 인생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엄마의 열정과 인내심 그리고 아버지의 낙관적 긍정성이 우리 다섯 자식 모두에게 잘 스며들어 있다.


상쇠 역할을 하던 엄마는 작은 오빠의 딸, 주영이를 키우기 위해 멈추셨다. 작은 오빠 부부는 직업군인이라, 아이를 맡길 곳도 마땅하지 않아, 두 사람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엄마는 주영이를 3년 동안 키워 주셨다. 프랑스 육아법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엄마의 손녀 육아법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프랑스 아이들은 밤낮이 바뀌는 아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의 수면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막 태어난 아이들은 생활 리듬을 몰라 수시로 깨어난다. 이때, 부모가 깨서 우는 아이를 바로 달래거나 우유를 먹인다면, 그 리듬 주기를 찾아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처음 아이가 울었을 때는 조금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 주는 게 결국, 아이가 어른과 생활하는 생체리듬을 빨리 찾게 되는 것이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깨어 아이에게 수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신생아라도 깨어서 먹을 시간과 참고 자야 하는 시간을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 자신이 불면증이 있었기 때문에, 주영이를 키우는 동안 저녁 8시면, 말도 못 알아듣는 아이에게 아침까지 깨지 말고 푹 자야 한다고 말하셨다. 신생아가 마치 말을 알아듣듯이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났다고 한다. 프랑스 엄마들이 신생아에게 자신들이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알려주고, 그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인식시키듯이 엄마 또한 손녀 주영이에게 들려주신 것이다. 


 프랑스 아이들은 식당이나, 학교에서 먹지 않으려 하거나 편식하는 아이들이 드물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가 아이들 또한 어른과 동일한 메뉴로 그 양을 적게 해서 먹게 할 뿐, 아이들을 위한 메뉴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음식을 즐기면서 먹기 위해서는 미각의 발달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도 주영이를 키우는 동안 이유식이 끝나자마자, 부모님이 드시는 된장, 나물, 고기, 생선 등 모든 음식을 함께 먹였다고 한다. 3년이 지나고, 작은 오빠 부부가 주영이를 데리고 갔다. 할머니를 보고 싶어 하는 게 당연했고, 먹는 음식이 달라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고사리 무침이 먹고 싶다고 말하는 딸을 위해 요리법을 묻기 위해 둘째 올케가 전화를 해왔다. 저녁이면 할머니를 찾아 울면서 전화를 해오던 주영이와 함께 울었던 엄마에게는 손녀가 또 다른 자식이었다. 고맙게도 둘째 올케는 170이 넘는 주영이의 키가 어릴 적 엄마가 잘 키워 주신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손녀가 지금은 서울대 병원에서 간호사를 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안부 전화도 해오고, 명절이면 영양제 주사도 나주고, 어버이날이면 예쁜 꽃바구니도 보내오며, 커플 잠옷도 사다 드린다. 


 엄마는 늘, 아이들을 키우면서 공부뿐만 아니라 건강까지를 유념해 두신 분이다. 겨울이면, 아버지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소 사골 뼈를 밤새도록 달여 우리들에게 먹이셨다. 그래서 곰국을 보면 엄마가 생각이 난다. 하얀 곰국 위에 파를 송송 썰어 놓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었다. 추운 겨울이면, 엄마의 곰국이 생각난다. 밤새 다린 곰국의 냄새는 겨울 아침을 여는 냄새였다.


 여고를 졸업할 때, 매달 주는 용돈을 그냥 모았다. 돈 쓸 일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라, 졸업과 동시에 엄마에게 드렸다. 도시로 가서 공부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고 엄마는 그 돈으로 내 보약을 해주셨다. 그때는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여고 시절 낯선 타향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 틈에 끼여, 향수병에 혼자 허덕였고,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가는 그 길이 행복함과 동시에 심한 차 멀리로 내 페이스를 찾지 못했던 시절이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시간은 길었지만, 좋은 결과를 못 내던 그 시절이 가끔 삶이 고단해질 때 꿈에 나타 난다. 하얀 시험지에 답을 써야 하지만, 이미 종이 친 상태로 답을 쓸 수 없는 답답함이 꿈에서 나온다. 공부를 잘해야 엄마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조바심과, 욕심과 달리 성취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그 답답한 마음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딸을 위해 보약을 해주신 기억도 가슴에 남아 있다. 그녀 덕분에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고, 노산이었지만 건강한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영역에서 엄마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은 크다. 아직도 그녀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의 제목이, 내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을 참으로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다.

 

 엄마를 중심으로 오 형제는 각자의 역할을 한다. 큰 오빠는 집안의 대소사를, 핵심 브레인답게 잘 처리해 준다. 집안의 태양열 설치나, 창고 업체, 집안내 시시티브이, 아버지의 소 축사 관련일, 농지 관련이나 세금 등에 대한 중요한 행정처리들은 오빠가 해결한다. 오빠 덕분에 떨어져 살아도 수시로 부모님 댁을 휴대폰으로 볼 수 있고, 아버지의 사랑 소들도 본다. 둘째 오빠는 군인이라 생필품들을 싸게 살 수 있다. 작은 올케는 집에 올 때마다, 화장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맥주, 그리고 손님 접대용 음료수와 엄마의 화장품 등을 잔뜩 사들고 온다. 엄마는 그런 둘째 올케를 보고, ‘나는 너처럼 시어머니에게 못하겠다. 아까운 것 없이 이렇게 사들고 오면 어쩌냐?’ 그러면 올케는 ‘저도 어머니처럼 자식들에게 못해요’라고 응수한다. 


언니는 엄마, 아버지의 건강 담당자다. 요가를 시작한 후 건강에 필요한 보조 식품들을 부모님께 보내 드린다. 간 해독제와 식이용 천염 소금은 물론, 호두액이나 니골루액 등 이름도 생소한 약들을 보내고, 어떻게 드셔야 하는지, 잘 드시고 있는지 점검까지 한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식자재 박스가 도착하면, 큰 딸 답게 항상 부모님께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한다. 


 남편과 나는 매달 한 달에 한번 부모님 댁을 방문한다. 나는 엄마가 청소하기 힘든 주방과 보조 주방, 그리고 옷방에 널린 정리 안된 물품들과 화장실 청소를 담당한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은 내가 준비해 온 식재료로 손수 요리해 드린다. 신랑은 손재주가 좋아 아버지가 소 키우는데 필요한 장비를 고쳐주거나, 시골집이라 손이 많이 가는 부분들을 알아서 고쳐둔다. 지난달은 아버지와 함께, 콩 모종 100개를 심었다. 부서진 창고나 농기구도 그의 손길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아버지는 집안에 손볼일이 있을 때 언제 오는지 엄마 몰래 전화를 걸어오신다. 사위를 자꾸 부려 먹는다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외양간에서 엄마가 없는 틈을 타서 도움 요청을 해오신다. 


 막내 동생은 부모님께 질 좋은 신발들과 비싼 겨울 파가나 코트들을 자주 선물한다. 그리고 집에 갈 때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사과, 배, 포도 등을 박스로 넉넉히 사간다. 그러면 엄마는 아껴 쓰라는 잔소리를 하시고, 동생은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라고 받아친다. 엄마는 그 과일들이 너무 많다고 다시 동생네 딸 수하를 위해 싸주신다. 이렇게 자식들이 부모님께 마음을 다하는 것을 느끼신 아버지는 어느 날,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식 하나 더 나을 것 그랬네....’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오 형제가 자신들만의 자리에서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엄마의 힘인 것 같다. 살면서, 세록 세록 느끼는 부분이 엄마의 현명함이다. 한집안에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엄마가 갖는 역할이 훨씬 크다. 유대인들의 <토란>에는 '착한 여자가 나쁜 남자를 만나면, 나쁜 남자가 착한 남자가 되고, 나쁜 여자가 착한 남자를 만나면, 착한 남자가 나쁜 남자가 된다'라고 말한다. 한 가정에서 그만큼 여자가 가지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유대인이 아니라, 엄마가 유대인이어야 진정한 유대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아내가 남편과 자식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엄마의 쉼 없는 삶의 여정은 흘러가고 있다. 그녀는 외로운 노래를 열정으로 불러낸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노래 교실, 수영장, 시니어 골프등 다양한 노년의 활동을 하고 계신다. 단지, 가끔 한 번씩 그녀를 찾아오는 건강문제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지만, 엄마의 노년이 꽃처럼 아름답게 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막내 동생네 수하가 태어나기 전에 찍은 대가족 사진>

<결혼전 엄마가 부부금실 좋으라고 선물해 주신 원앙 쿠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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