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윤효 Jun 30. 2024

내 사랑, 고여사!

10. 노년의 일상과 존재의 이유

“부모는 자식들에게 우주라고 합니다. 우리 또한 우리 자식들에게 우주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명당자리에 조상을 모신 집안은 자자대손 잘되는 집안이 된다고 합니다. 명당자리의 공통점이 자손들이 ‘효’를 하는 기운을 가진 자리라고 합니다. 


자신을 낳아 주신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모든 ‘복’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야 우주의 기운을 받을 수 있고, 우리 또한 그 우주의 기를 후손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절에 가서 또는 교회에 가서 복 달라 기도하기보다는 ‘복’ 짓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가 좋은 이유가 복을 지을 수 있는 환경과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불교에서 이야기합니다.


노년의 삶에 대한 존중을 해드려야 합니다. 사는 방법을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인생도 공부하면서 사람 되는 기본 도리를 배우고 복을 짓는 삶을 살며, 현생의 삶뿐만 아니라 나를 통해 세상에 나온 후손들에게도 복을 전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작년 시댁 밴드에 내가 올린 글이다. 시어머니의 치매가 점점 심해지시고, 급기야 남편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남이 되어버린 상황에 답답한 마음에 기록한 글이다. 돌아보면 삶은 짧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만의 고민과 생각들로 분주할 때, 삶의 마지막 옷자락을 잡고 계신 부모님께 소홀해질 수 있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후회하기보다는 살아 계실 때 할 수 있는 일로 부모님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먼 훗날, 그 기억들이 그분들을 추억하는 장면이 되어 우리가 노년이 되어 돌아갈 곳이 우리 부모가 계신 품이 될 때 삶의 마침표를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의 삶을 기록하면서, 크게 깨달음 점 중 하나가 노인에 대한 시선이다. 그냥 나이가 드신 분이 아니라 삶이라는 긴 여정을 걸어오신 분들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아오셨고, 어떤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셨으며, 어떤 행복감을 맛보시고 살아오셨는지 궁금해진다. 그분들의 희생과 견딤으로 인해 우리의 삶의 징검다리가 더 튼튼해진 다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내 부모의 부모가 삶을 포기하시지 않고, 그래도 힘든 시절을 견디면서 살아오셔서 지금의 내가 있다. 


 조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존재의 근원지다. 그래서 ‘조상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수시로 꺼내시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조상의 은혜가 바로 현재 내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하늘에서 ‘툭’ 떨어진 사람은 없다. 이렇게 다채로운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과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우리들의 조상이 우리를 위해 잘 차려놓은 밥상 때문이다. 그것을 받아 느끼고 즐길 수 있어야 하며, 우리 또한 후손들을 위해 멋진 밥상을 선물해야 한다. 


 조상을 위한 제상에 유독 정성을 들이시는 엄마는 그렇게 자신의 도리를 실천하시고 계신다. 아직도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가득가득 든 음식들을 장만하시고, 제사를 올린다. 추석과 설명절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형제 중 일제 때 장남을 대신해서 징용을 가신 둘째 형님 제사까지 지내 주신다. 시대 앞에서 무기력하게 쓰러져간 그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 감히 앞장서지 못해 주저하거나 조용하게 침묵하고 있을 때, 자신을 희생하면서 민주주의를 후손들에게 선물한 우리 인생 선배들 덕분에 우리가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에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노년을 보내고 계신 그분들께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살아오시면서 어떤 역경을 겪으셨는지, 그리고 언제 가장 행복했었는지를. 

9살 부모를 잃고, 고모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머슴처럼 사셨던 외할아버지는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극복하셨을까. 


시어머니 또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기골이 건장하고 체격이 좋다는 이유로 위협이 된다고 공산당원들이 대창으로 그녀의 아버지를 빼앗아갔다. 그 이후 9살밖에 안된 그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숯을 머리에 이고, 남은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었을 때,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 내셨을까.  


 남편의 작은 어머니 삶도 들었다. 한 동네에 삼 형제 부부가 살아가면서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그녀만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리모를 들여 두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두 아들을 낳은 아이들의 생모를 보내고, 남들이 다 아는 상태에서 두 아들을 키워낸 그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평생 아끼고, 절약하고, 자신을 위해 단돈 천 원을 쓰기도 아까워하셨던 외숙모는 70대 어느 날 치매가 왔고, 혼자서 밥을 떠먹는 것 까지도 잊으셨던 그분은 다음 생이 있다면, 어떤 삶을 꿈꾸실까. 


 자식들 중 2명을 서울대에 보내고, 지방에서 큰 부를 이루신 오빠의 장인 어르신은 검소하신 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트랙터에서 떨어지셔서 휠체어 생활을 하고 계신다. 집안의 작은 공간만이 유일하게 그분이 누릴 수 있는 곳이 된 지금 어떠한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실까.


 평범한 삶조차 사치였던 시대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 평범한 삶을 마치 공기 마시듯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느라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잊기 쉽다. 

 삶은 해석이다. 엄마의 삶을 해석해 온 지난 여정을 돌아본다. 엄마의 삶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글을 써내려 갈수록 참으로 안일하게 그녀의 희생을 누리고 살아온 이기적인 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삶에 진정한 관심을 가졌던가. 그녀의 삶을 알고 있었지만, 온통 내 세계에 빠져 이해와 존중을 해드리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글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 책의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너무도 닮아 깜짝 놀라 읽는 동안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누군가의 사랑과 희생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결국, 우리가 돌아갈 곳은 엄마의 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70이든 80이든 그래서 엄마가 필요하다. 


 나무처럼 성숙해지는 삶을 꿈꾼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풍성한 잎과 그늘로 가진 것들을 나눠주는 삶으로 성숙해져야 한다. 머리카락에 흰머리가 하나씩 나를 찾아오고, 어느 날 문득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 나이 듦에 대한 거부와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왔다. 나이 들어 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오래된 장이 맛이 나듯 경험과 연륜을 통해 성숙한 한 인간으로 점점 더 멋스러워지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한 그루의 나무처럼 더욱 풍성하게 존재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주고, 가진 잎을 하나씩 땅으로 내려 보내 어린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다. 엄마의 삶이 곧 나의 삶이 된다. 중년을 지난 노년 그리고 신의 부름을 받는 그 긴 여정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끼듯 살아가되,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베품을 실천 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역사가 된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당신의 삶을 존중합니다.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당신의 그 큰 바다가 있었기에 우리 오 형제 모두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우리들 만의 몸짓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 오 형제들은 각각의 자식들에게 어떤 삶의 지혜와 진리를 전달해야 할까요. 

자식이 아들 한 명이라 이제야 후회가 되네요. 

그때는 내 삶을 살아내기도 벅차고 힘겹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힘들 것 같아 피하기보다는 나의 존재를 완전하게 필요로 하는 자식들을 키워내면서 더욱 성숙해지는 삶을 꿈 꾸었다면, 지금의 후회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대가족의 사진을 보면서, 부모님이 이루어 놓으신 멋진 인생 작품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과 우리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그 시간을 소중하게 다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하늘에 계신 부모를 두고, 사무치게 그립다는 모 작가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을 귀한 보석 대하듯 해야겠습니다. 


어떤 부모가 되어 내 아이에게 그리고 그 아이의 아이까지 전달될 수 있는 삶의 진리와 지혜를 전달할지 깊이 있게 생각해 봅니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짧을 수 있지만, 그 인생 여정에서 당신과 함께 걷고 있는 지금이 인생 최고의 순간임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엄마! 내 사랑 고여사 님! ”

이전 09화 내 사랑, 고여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