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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새 Nov 19. 2023

눈을 감고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27 février, 2023 

Pont des arts _



내가 파리에서 몽마르트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 

처음 파리에 도착했던 1월, 길을 잃었었지

무작정 센 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우연히 마주한 아름다운 다리였다

이때 오전 8시쯤이었는데, 해가 뜨는 걸 다리 위에서 봤던 기억이 생경하다

내가 파리에 있다니! 하는 생각에 벅차서 행복해했어 



얼마 전에 파리의 한 클럽에서 친구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이 추억이 좋은 기억이 아니었던 이유 중 하나,

친구들이 과장 조금 보태서 정말 5분에 한 번씩  "I hate Paris.. I hate Paris" 를 내뱉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례하고, 길거리는 더러워.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딜 가든 사람이 너무 많아" 라고 덧붙이던 친구들


파리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으로서 슬펐다

이젠 관광객이 아닌 주민으로서 이 나라의 문화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곳에 살기 전에도, 살고 있는 지금도 나름의 환상을 갖고 있는데

환상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생겼을 뿐, 여전히 나는 이 냉정하면서도 낭만적인 도시를 사랑한다


오늘 에밀리 인 파리 1화를 처음 봤는데

피식, 웃었던 모먼트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말하면서 담배 연기를 쭉쭉 내뱉는 사람들, 느지막이 약속에 나와 느지막이 시작하는 업무, 

종종 마주하는 자유의 탈을 쓴 무책임에 가까운 태도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

영어로 물어봐도 프랑스어로 대답해 주는.. 그런 장면들이 공감이 되었다


노인과 아이, 약자에 대한 배려가 기본적으로 배어있는 환경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담백하게 인정하는 태도 

기본적인 매너와 배려가 스며들어 있는 곳이라

살면서 스트레스가 덜 하다


아무리 서류 처리, 행정이 느려도

고장 난 커튼을 내일 수리하러 온다고 해놓고 일주일째 오지 않아도 (...)

카드 비밀번호를 편지로 보내줘야지만 활성화를 할 수 있어도 

우리 눈에는 답답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나라지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대로 살아도

바보 되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관광지이자 미식의 도시지만 

그 이전에 이 나라가 혁명으로 일궈온 역사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만들어낸 문화는 참 거대하고 흥미롭다

프랑스 대통령이 연금 제도 바꾼다고 하니까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대규모 파업을 열면서 모든 대중교통을 중단시키는 것도 긍정적인 의미에서 대단하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해도 아마 정부는 들어주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지만 결코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문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논리정연하게 주장하는 고집 

사람들의 여유롭고 느린 태도

늘 바깥을 향해있는 레스토랑의 테라스 문화도 

개인의 여유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에서 비롯했는지도 모르겠다

식사가 맛있는 이유도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없던 여유를 배워가고 있는 중이기에 이곳에서의 시간은 더욱 특별하다

나의 잘못이 아닌데 나의 책임이 되어버릴 때는 이방인으로서 서럽지만

그럴 때는 꿋꿋하게.. 소신 있게 물러서지 않고 버티면

느리지만 어떻게든 해결된다


그런 고통 한 중간에도  

센 강 변에 걸터앉아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눈을 감고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바로 옆에 있는 미술관에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잔뜩 둘러싸여서 온몸으로 행복해하는 일은 

파리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프렌치에 대한 편견이 참 많지만

내가 만난 프렌치들은 친절하고 따뜻했다

볼뽀뽀 인사도 귀엽다 

지난번에 들어간 비누 가게에서는 

사장님이 나를 붙잡고 10분 동안 이 비누의 향과 효능에 대해서 불어로 설명해 주시는데

반은 알아듣고 반을 못알아들었지만서도 즐거웠다

내 담당 은행 직원분은 내가 은행을 갈 때마다 불어가 얼마나 늘었는지, 친구는 많이 사귀었는지 체크해 주신다


종종 불어가 마음대로 나오지 않을 때는 영어가 급하게 튀어나오곤 하는데,

가벼운 영어여도 소통이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의 철학 중에 하나는, 곧 죽어도 번역기 화면을 보여주지 않는 것 .

그건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일단 내가 아는 불어로 최대한 말해보고 못 알아듣는 눈치면 

얼른 사전에 검색해서 찾아보고 단어를 읽는다

그리고 말을 하면 뜻은 어떻게든 통하게 되어있더라

우리, 조금은 힘을 빼고 살아가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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