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부터 동생들과 타지에 나와 자취를 하게됐다. 부모의 품에서 떠난 나는 서둘러 어른이 되야만 했다. 여름엔 땡볕에 서 있는 기분이었고 겨울엔 헐벗은 기분이었다. 어려서 세입자라서 학생이라서 피고용인이라서 겪는 설움이 상당했다. 부모라는 울타리가 쓰러지고 부서져 복구가 어려웠다. 해가 거듭되면서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가 극에 달했다.
하루는 여동생과 동태탕을 먹으러갔다. 엄마가 생각나는 맛이라 월급날이면 으레 외식을 하던 곳이었다. 뜨끈한 국물에 동태와 알이 가득하고 무와 두부까지 푸짐해서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허한 우리에게 딱이었다. 그날따라 배가 고팠던지 동생이 라면사리를 시켜도 되느냐 물었다. 그런데 내가 뱉은 말이 최악이었다.
"돈도 못 버는 주제에......"
고작 라면사리 하나에 칼을 꽂았다. 나는 자린고비도 아니고 악당이었다.
당시 동생은 고시생이었고 월세를 포함한 모든 생활비가 내 몫이었다. 계약직 강사였던 내게도 고충이 있었다. 학교에 행사가 많은 달에는 근무일수가 적어 다음달 통장에 말도 안되는 액수가 찍힌다는 것이다. 그 달이 그랬다. 월세가 30만원이었는데 월급이 고작 50여만원이었다. 통장에 모아둔 돈이랄게 없었다. 방학엔 일이없으니 대비해야 하는데 학기말이 다가오면서 수업일수가 불확실했다. 아무리 그렇대도 내가 잘못했다. 동생을 아프게 할퀴었다.
그 다음해 결혼을 하면서 여동생과 작별했다. 그 시간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단 걸 알기에 가슴이 아리다.
그렇듯 잃고서야 알게 된다.
P.S.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따스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