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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프 Jan 11. 2022

상실의 시대

본성의 소멸


 가끔씩 울리던 휴대폰 벨 소리조차 잠잠하고 하루 종일 있어봐도 마치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듯 이 좁은 집안으로 교류를 요청하는 아무런 교신이 없다. 이렇게 스스로를 단절시키며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앉아서 이 상실의 시대에 내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한 달 정도만 지나면 정년퇴직을 한지 꼭 일 년이 된다. 불행하게도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팬더믹 상황도 지루하게 이어지고 마치 전쟁을 치른 듯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우리의 모습은 KF-94 마스크에 철저히 가려져 어느 날 문득 마스크를 벗은 친구의 모습조차 낯설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직장으로 복귀할 수 없다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 더욱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을 상실의 시대라 규정짓고 싶다. 기억해 보면, 내가 초등학교 4~5학년쯤 시골집 마당에서 할아버지 환갑잔치를 했는데 당시 낡은 흑백사진 속 할아버지는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진짜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때 할아버지의 연세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두 살이나 적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빗대어 나는 늙지 않았다 항변하고 싶다. 비교할 수도 없이 충분히 사회 일원으로 생산활동을 해낼 수 있음에도 세상은 나를 옛날 할아버지처럼 두루마기를 입히고 갓을 씌워 대청마루에 앉히고 이 상실의 시대에 적응하라 강요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진리이고 모든 사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변해 소멸해 가는 과정을 겪는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늙어간다는 물리적 현상에 의한 소멸과정과는 또 다른 차원인 가장으로써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무를 규범적 본성이라 한다면 이제 그 본성은 소멸했다. 낡고 더러워 아무도 앉지 않는 의자, 더 이상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아 잡초에게 자리를 내어준 철문처럼…

누구는 한 짐 덜었으니 이제 오로지 나 만을 위한 책무를 부여하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라 조언한다. 나도 간절히 그러고 싶다. 그러기 위해 약간의 준비도 했었다. 몇 가지 자격증도 땄고 바디 프로필을 찍을 정도로 체력관리를 잘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지나온 일 년여를 돌이켜보면 나의 본성을 지키며 열심히 살 때 그토록 열망하여 적었던 버킷리스트 항목 중 불과 몇 개도 체 체크하지 않은 이 시점에 나의 나머지 여정이 생각만큼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팬더믹 상황, 단절된 생활과 단순한 일상의 반복에 의한   권태로움을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 때문에…

그러하기에, 애써 상실의 시대라 규정짓고 합리화하며 위안받고자 하는 나의 비겁함을 뒤로하고, 비록 세상이 나를 끝까지 구석으로 몰아세울지라도 어깨를 부딪치며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나서며 이 상실의 시대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나의 소멸해 버린 본성을 다시 찾기 위해 힘을 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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