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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프 Jan 13. 2022

내가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이유


나는 어린 시절, 몇몇 종류의 애완동물을 키워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70년대는 문화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절이 아니었으니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이고 지금과 같은 환경 속에서 애완동물을 키운 건 아니었다.

마당 한 구석 양지바른 담벼락 밑에 받침대를 준비하고 나무판자와 철망으로 얼기설기 새 장 두 어 개를 만들어 올려놓고 십자매 등 몇 종류의 새나 다람쥐를 키우는 정도였다.

한 번은 우리 집에서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 한 마리를 얼마간 맡아서 키운 적이 있었다. 보름 남짓밖에 같이 지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다해 돌본 탓인지 순식간에 정이 들었고 헤어질 때 울며불며 힘들어했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아이가 생기고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이들 정서 발달에 좋다고 해서 여러 종류의 애완동물을 키웠다.

몇 종류의 애완동물을 경험한 후, 언제인가 TV광고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견종(犬種)인 코카스파니엘이 눈에 꽂혀 별 다른 고민 없이 입양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탓이었는지 얼마를 같이 하지 못했고, 몇 번의 실패를 더 겪은 후 막내가 중학교 들어갈 즈음 흰색 토이푸들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다행히도 이번 아이는 사전에 준비를 해서인지 아님, 우리 집 환경과 잘 맞았는지 가족의 일원으로 순조롭게 적응하였다.

초롱초롱한 눈매에 약간은 까칠했지만 붙임성과 애교가 많아 두루두루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덧붙여, 입에 잘 붙는 이름을 생각하다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 “몽실이”라 지었다.

몽실이는 커가면서 이불속을 파고드는 습관이 있었다. 한참을 자고 있으면 침대 위로 올라와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밤새 이 방 저 방을 전전하다가 아침이 되어 눈을 뜰 때 최종적으로 몽실이가 머무는 곳에 있는 사람이 서열 1위 대접을 받았다. 그 서열 1위는 대 부분 큰아들이 차지했고, 정성을 쏟은 것 비하면 나의 서열은 보잘것없었다.

 “회사 회식 후 술냄새를 풍기며 새벽에 들어갈 때도 한결같이 반갑게 맞아주는 이는 우리 집 반려견 밖에 없어!”

그렇게 푸념하듯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어떤 사람의 말에 격하게 공감을 하면서 몽실이는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잘 융화되어 갔고, 아이들이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를 다녀오고, 유학을 가고 하는 긴 세월을 건너, 성장하는 과정을 오롯이 같이 하였다.

돌이켜보면, 같이한 세월만큼 많은 추억도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세월이 흘러 자식들 다 성장해 독립시키고 부부 둘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지금, 제일 그리운 것은 녀석과의 눈 맞춤이다.

언제든 “몽실아!”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와 시선을 빤히 맞추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던 녀석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거의 열 일곱해를 우리와 같이 한 몽실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같이한 몽실이,

반려(伴侶)라는 것이 동반자로서 희로애락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듯 기쁨과 슬픔, 아픔을 같이 하는 동안, 시간은 무심히 흘러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게 됐고,

몽실이가 노환으로 힘들어하던 4년 전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힘없이 누워있는 몽실이를 보고 “몽실아!”하고 부르니 이별을 예감한 듯 힘겹게 고개를 약간 들어 그렁그렁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는데 그것이 몽실이와의 마지막 있었다.

어떤 이별이던 이별이라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중에 특히 생과 사를 갈라놓는 이별은 다시는 같이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더 가슴 시리게 아픈 것 같다. 객지에 있던 막내에게 몽실이 소식을 전할 때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가 한순간 흐느끼는 듯했다. 나도 애써 내색은 안 했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아픔을 겪은 후로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같이 하는 기쁨도 크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과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아예 시작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몽실이가 떠난 지 시간이 꽤 지났고 나도 정년퇴직으로 인해 한 발짝 빗겨 나 있는 지금,

특별히 나를 고립시키는 어떠한 제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옥죄여 오는 속박 감에 시달리는 한편, 혹시나 세상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고립되지 않을까? 전전긍긍 가슴앓이를 하고 있기에, 끊임없이 내게 위로를 주던 몽실이가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그래서, 세월이 좀 더 흐른 다음, 자연의 이치대로, 먼저 내 눈으로 이별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세월이 흐른 후에 몽실이를 꼭 닮은 녀석을 만나 그 아이가 내게 주었던 시선을 되 갚아 주며 오랫동안 함께 하길 희망해 본다.






                                           몽실이가 아프기 시작할 즈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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