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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프 Jan 17. 2022

식빵 굽는 시간

빵은 인생이다


빵을 만드는 시간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분주히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고, 입안 가득 향미 머금을 수 있는 게이샤(Geisha) 커피 한잔 드립(drip)하여 내려놓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빵이 발효되고 구워지는 시간을 기다리면 점점 흐릿해져 가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옛 추억을 겹겹이 다시 정리하여 쟁여 두기도 하고, 생각을 멈추고 의식의 이탈을 통해 머리를 비울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생각해 보면, 밀가루가 빵이 되어가는 과정은 내가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내야 하는 삶과 많이 닮아 있다.

열일곱 살,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풀풀 거리면서 방황하던 나의 사춘기 같은 강력분 밀가루는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위로해 주던 옆집 예쁜 누나 같은 맑은 물과 내 가슴을 콩닥거리고 부풀어 오르게 했던 하이틴 영화 여자 주인공 같은 이스트를 만나 잘 섞이고 조화를 이루어, 풀풀 날리던 그 모습은 다지고 다져져 매끈한 훈남으로 변한다.


 

외모는 말끔 해졌지만 아직은 거칠고 풋내가 난다. 힘 있고 단단해 세상의 모든 풍파를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만 가지고 거친 세상으로 뛰어든다면 온몸이 뚝뚝 끊어지는 처절한 아픔만 맞볼 것이다.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한다.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하게, 품고 있던 작은 열정을 서서히 끄집어내며 기다리면 마음은 넓어지고 생각은 유연 해진다.

그때쯤 되면 가끔씩 찾아오는 시련쯤 은 가뿐히 이겨낼 수 있게 된다.



이제 조심스럽게 험한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내디뎌 본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게 평화롭던, 나를 둘러싼 세상사는 가을 태풍이 되어 한차례 휘몰아친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소심하게 한발 내딛다 입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세상이 반겨 맞아줄 수 있게, 원하는 대로 두드려 밀어 펴고 말아 다듬어 그럴싸한 스펙을 갖추고 치열한 정글 속으로 뛰어든다. 정글은 푹푹 찌는 열기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고등생물들이 득실거린다. 그 속에서 버터 내고 이겨내어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과분하게도 내가 가진 그릇보다 조금 더 채워져 인생의 많은 부분을 성취해 낸다.

                          

 전쟁터와 같은 정글에서 빠져나올 시간이 됐다. 내 잘난 맛에 서둘러 헤쳐 나왔다고 교만하거나 아니면, 어설퍼 머뭇거리다 때를 놓치게 되면 눈에 보이는 나의 모습은 쭈글쭈글하여 추해 보이거나, 속이 퍼석퍼석한 쭉정이 같은 인생이 될 것이 분명하다.  

너무 늦지 않게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고 차분히 정리해 가다 보면, 보기 좋게 색깔이 입혀지는 것은 물론, 여유롭고 품격이 더해져서 삶의 향기가 온 세상에 퍼져 고소한 풍미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러하므로 빵은 인생과 같다.


나는 3~4일에 한번 정도 빵을 굽는다. 

제과,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빵을 만드는 것은 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에 내게 올 예쁜 손자, 손녀에게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맛있는 과자와 빵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언제쯤 아이들이 내게 올지 기약이 없다. 하는 수 없이 그때까지 감각을 유지하고 숙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빵을 만들어 낸다.

그럼으로써 생겨난 부작용…

언제나 나의 아침은 식빵에 스크램블 에그와 우유를 곁들인 breakfast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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