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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프 Oct 19. 2022

설산에서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삶의 고비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어찌하던 무엇인가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그 선택이 잘 된 선택인지 아닌지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보고 판단할 수 없기에 이후 상황이나 심리적 만족도에 의해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그날 새벽, 설산에서의 나의 선택은 어떠했을까? 


시작은 아주 오래전에 본 한 장의 사진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난생처음 암벽등반을 접하고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나의 관심은 오로지 등반에 관련된 것뿐이었고, 인터넷이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등반에 관련된 것은 서적에서 대부분의 정보를 얻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우연히 등산 전문 잡지에서 발행한 히말라야 아마다블람 브로마이드 사진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누군가는 히말라야 다른 산과 별다를 것이 뭐 있냐며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당시 산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너무나 진지했기에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가슴 벅차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마음 한 구석 깊은 곳에 꽁꽁 쟁여 두게 되었다. 


아마다블람은 “어머니(Ama)의 목걸이(Dablam)”라는 뜻으로 그 모습이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를 연상하게 하고 주변을 흐르는 빙하가 마치 목걸이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네팔 현지인들이 왜 그리 아마다블람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지 무릇 전래된 이름에서부터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히말라야 ‘마차푸차레’ 알프스의 ‘마터호른’과 더불어 3대 미봉으로 불리는 아마다블람, 꼭 아마다블람이 세계적인 아름다운 산 이어서가 아니라, 불현듯 다가왔던 나의 벅찬 감동에 미루어 볼 때 언젠가 한 번은 그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을 직접 내 두 눈으로 봐야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누구에게나 별반 다르지 않게 맞닥뜨리는 일들을 핑계로 마음먹었던 일이나 계획한 일 들을 쉽게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르고 바야흐로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여러 가지 계획과 그간 하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을 버킷리스트란 명목으로 정리를 하고 있던 중 오랫동안 가슴속에 묵혀 간직해 두었던 아마다블람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갈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때부터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워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검색하던 중 임자체(6189m)와 메라피크(6476m) 트레킹 등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인으로서 크게 부담이 없는 보름 남짓한 적당한 기간 그리고, 체력과 약간의 등반기술만 있으면 한번 시도해 볼만도 한 것 같았다. 

애초에 해외 원정 고산등반 경험이 전무했던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약간의 주저함이 있었지만 “누구나 처음은 있다”는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나의 선택 방향은 트레킹 등반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였다.


 Photo by 남형윤


'크램폰에 스노우볼이 자꾸 생긴다' 스노우볼 방지 패드가 장착되지 않아 얼마 걷지 않았음에도 크램폰 사이에 눈이 잔뜩 들러붙었다. 스노우볼을 떨어내며 걷는다는 것이 가뜩이나 힘겨운 상황에서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의 고산등반 기록이 경신되어 가고 있음에 위안을 얻어가며 힘을 내어 올랐다. 


약간의 두통이 남아 있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천천히 힘겹게 오르다 보니 어느새 빙하 구간에 접어들었다. 가끔씩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얼음으로 변한 마른 눈가루가 바람에 날리어 얼굴에 강하게 흩뿌려졌다. 그럴 때마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어쩔 수 없이 바람을 등지고 돌아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돌아서 본 히말라야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운무가 잔뜩 끼어 있다 가도 거센 바람이 한 차례 몰아치고 나면 어느새, 아득하게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로체 등 히말라야의 장엄한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도계를 보니 5500미터를 표시하고 있었다. 빙벽화를 내디딜 때마다 발아래 선명하게 드러나는 옥색 빙하의 고혹한 빛깔이 신비롭기까지 했다. 


카레 캠프까지 오는 트레킹 구간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것은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욕구조차 원활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비릿한 본성을 접했을 때 나의 인내는 과연 어디까지 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도 본격적인 등반 구간에 접어들어 하네스를 차고 안자일렌을 하는 순간부터 한낱 부질없는 상념이 되어 버렸다. 하이 캠프를 향해 고도를 점점 높이면서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공기 밀도, 그래서 한 줌의 산소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듯 거칠고 깊은 호흡을 몰아 쉬다 보면 오로지 숨쉬기 편했으면 하는 한 가지 욕구만이 머리에 맴돌 뿐 혼란스러움은 사라지고 머릿속은 단순함에 의해 오히려 편안해지는 듯하였다.      


Photo by 여민재

저녁이 되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한동안 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하이 캠프의 비좁은 공간에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아득한 낭떠러지인데 텐트를 날려버리려는 듯 무섭게 불어 닥치는 히말라야의 거센 바람과 그 바람에 의해 미친 듯이 펄럭거리며 울어 대는 텐트 소리 때문에 공포심마저 들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침낭 속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쉬이 잠들지 못하고 조금씩 뒤척거리는 것 만으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텐트 속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던 그날의 몇 시간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의 이입으로 마음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었다. 


어둠이 가시기 한참 전부터 등반 준비를 하는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지만 엄습해 오는 긴장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번 겨울 내내 내렸던 폭설로 인해 앞서 출발한 몇 개의 원정팀이 모두 정상 등정에 실패하고 하산했기에 더더욱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방한장비를 단단히 갖추고 등반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착용하고 나니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다. 

희미한 헤드 렌튼 불빛에 의지하여 설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고산등반 경험이 없던 나는 세르파 ‘니마’와 자일로 서로를 연결한 후 조금 뒤처져서 정상을 향해 등반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5800미터를 넘어서는 고도에서의 등반은 지금까지의 등반과는 확연히 그 느낌이 달랐다. 컨디션에 따라 다른 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걸음 내 디딜 때마다 숨이 끊어질 것 같고 몸이 바닥으로 내리 꺼지는 듯하였다. 허리를 숙여 숨을 헐떡이다가 앞서가는 ‘니마’가 자일을 당기면 온 힘을 짜내 또 몇 걸음 옮기기를 반복하였다.

등반 속도가 너무 늦어졌다. 앞선 대원들과 거리가 너무 벌어지면 안 될 것 같아 힘을 내 보았지만 체력이 급격하게 고갈되었고 방한장비들이 온몸을 압박하는 것이 더해져서 호흡을 한층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훈련소에서 화생방 훈련을 할 때 가스를 마시고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을 것 같았던 그 악몽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쯤 되어서 또 한 번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등정 기록은 6000m 정도에서 멈추었다.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이 또한 잘 된 선택 중 하나였다고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2019년 3월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에서 히말라야는 지워지지 않았다. 아직도 아마다블람에 대한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있기에 언젠가는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는 날이 있을 것이라 예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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