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프 Sep 11. 2023

 긴 오후.
그리고 미묘한 반향(反響)


익숙함과 낯설음.

가끔 생각에 잠겨 집 근처를 천천히 걷다 보면 의식의 분산으로 인해 시각적 자극이 금방 무뎌져 버린다. 어쩌면 그것은 낯익음이 가져다준 감각의 작은 반란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흐트러진 감각을 추스르고 주위를 살피다 보면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사물들의 조합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익숙하게 인지하고 있던 사물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는 분명 나의 내면에 흔들림이 있었고 그것에 의해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이유야 어떻든 시각적 자극으로 인한 사물에 대한 의미부여, 다시 말하면 노에시스(Noesis)가 노에마(Noema)로 전환되어 가슴 떨리게 인식되는 순간,


나는 이 순간을 삭풍(朔風)처럼 이어온 나의 긴 인생의 여정에서 불현듯 일으킨 감정의 미묘한 반향(反響)이라 규정하고 싶다.


긴 오후.

100세 시대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은 과연 축복받은 사람들일까? 
그렇다고 말하기엔 무력한 늙음의 기간이 너무나 길다. 
하루에 빗대어, 
황혼에 물들어 아름다워야 할 삶의 해 질 녘이 의미 없이 스러져버리고, 어둠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오후가 무료하게 길어진다는 것이 두렵고 한편으로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그러함이 싫어서,

나는
나의 늙음에 거슬러 끊임없이 각성하고 채근하며 낯섦에 반응하는 감성을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다.

긴 오후.
그리고 그 미묘한 반향을 위하여…

 




삶으로 대변되는 프레임 속에서, 
나의 긴 오후는 구석으로 내몰려 암울하게 웅크리고 있고 끝내 지켜내야 하는 존엄의 표상만을 희미하게 유지하고 있다. 





무엇을 향한 몸부림인가?
내딛고 올라서야만 한다는 강박감에서 해방되어 평화로운 오후가 되기를 기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허함에 맞서는 두 개의 시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