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언주 Nov 13. 2022

그리는 손

3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여자는 날씨 때문에 출발을 미루었다. 사이클론이 지나는 동안 눅눅한 실내는 에어컨을 켜면 춥고 끄면 답답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여자의 하루와 창민의 하루가 겹쳐졌다. 창민은 마음을 바꾼 여자가 떠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생각에 빠져 멍하게 앉아 있을 때 그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구부정하게 앞으로 몸을 숙였다. 강해 보이던 인상과 다르게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허리를 세우고 카드를 펼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화장기 없는 얼굴에 탈색한 금발 밑으로 검은 머리가 삐죽삐죽 드러나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과장된 그녀의 표정에 자꾸 눈길이 갔다. 여자 쪽으로 슬쩍 손을 내밀면 투명한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을 것 같았다. 시선이 마주치면 창민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훔쳐보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면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을 했다. 

   창민은 여자를 닥터 백이라고 불렀다. 닥터 백은 그런 창민에게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잘하려고 들지 말고 편할 대로 해요. 애쓰면 오래 못 가. 

   라는 말을 하고는 

   눈치가 타고났거나 아주 둔하든지 둘 중 하나면 돼, 라고 했다. 

   정해진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눈치껏 알아서 버티는 게 창민의 일이라면 일이었다. 며칠 지나면서 툭툭 던지듯 하는 닥터 백의 말을 창민은 웃어넘기게 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수시로 울려대는 전화벨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벨 소리는 스모키가 노래하는 ‘옆집에 사는 앨리스’였다. 여자는 노래의 전주가 나오고 몇 소절 흐르고 나서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영어나 중국어로 나누는 대화를 짐작해 보면 그녀의 사업은 규모가 커 보였다. 전화를 받지 않고 벨이 끊어지길 기다릴 때도 있었다. 의아하다는 듯이 창민이 바라보면 닥터 백은 “난 앨리스가 도덕적이지 않아서 좋아”라고 했다. 개인 방송하던 시절 창민이 제품에 관해 물으면 광고계약자들이 어깨를 들썩하며 보이던 그런 표정이었다. 

   타로를 보러오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매뉴얼이 내장된 것 같았다. 그녀는 먼저 사람을 자리에 앉혀 놓고 한참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무척 힘들었겠네, 하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몸이 테이블 쪽으로 기울고 눈이 반짝인다. 입을 다물고 있던 닥터백이 아랫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인다. 오래 전부터 두통이 있지 않았어? 올해는 건강을 조심해야 할 거야, 말이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는 올해는 구설이 있을 수 있으니 친구를 조심하라고 한마디 덧붙인다. 그 정도면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타로보다 비싼 신점을 보았다. 그녀의 통찰력이 신통력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사람들은 묻지도 않은 말을 알아서 쏟아 놓았다.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창민은 그런 상황을 점지적 백가 시점이라고 했다. 

   닥터 백이 떠났다. 창민이 맡은 일은 전화를 받고 그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어학연수를 온 단기 유학생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는 정도로 짐작했다. 창민은 타로하우스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가든 알바는 아니었다. 전화하는 사람은 대개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사람이 많았고, 한국 사람도 가끔 있었다. 어린 시절을 상하이에서 보낸 창민은 그들과의 소통에 어려운 점은 없었다. 

   지하실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벽에 곰팡이가 번졌다. 곰팡이는 닦아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터를 잡고 넓혀 갔다. 신기하던 것들이 곧 익숙해져 갔다. 닥터 백이 없는 사무실은 창민의 공간이 되었다. 한 번씩 그녀가 돌아오면 좁은 공간이 좁게 느껴졌다.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끊어지면 창민은 통장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무료한 시간을 타로 가이드북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요란한 그림 속에는 삶에 대한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카드는 단서만 제공하면 수십, 수백 가지 이야기로 풀려 나왔다. 끝없이 손을 맞잡고 돌아간다는 무한한 우주도 그중 하나의 의미였다. 파동이나 인연 따위는 처음부터 알지 못 하는 말이었고, 타로 하우스는 그저 시간을 벌기 적당한 곳이었다. 

   오후 5시가 되면 그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퇴근을 인증하는 공식적인 외출이었다. 빅토리아 마켓은 무료 트램 존의 마지막 정류장이다. 그곳에서 순환 트램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건물 대부분이 빅토리아풍으로 유럽을 여행하는 느낌이다. 화보처럼 조성된 공원이나 건물은 고작 이백 년도 되지 않았다. 쏘다니다 보면 한국말이 날아와 귀에 꽂혔다. 익명성에 기대 침을 튀겨 가며 쏟아내는 말속에서 창민은 그들과 일행이 된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몇 개의 단어만 바꾸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사건이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창민은 하는 일마다 꼬였다. 닥터 백의 말대로라면 시너지를 낼 파동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제대하고 단편영화 찍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공백의 벽을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다른 채널을 모니터링하고 스크립트를 편집했다. 대기실에서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화장을 했고, 얼굴에 직접 화장하는 트렌드 에디터로 자리를 잡았다. 기괴하거나 화장이 짙을수록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늘어나는 구독자와 조회 수가 자신감을 키워 주었다. 협찬 컬러렌즈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그랬다. 

   광고가 붙기 시작하면서 렌즈 회사에서 할인쿠폰을 보내왔다. 추첨을 통해 구독자에게 쿠폰을 발송했다. 컬러렌즈는 부작용으로 곰팡이가 생겼다. 렌즈 회사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일일이 대처할 경황도 없었다.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집까지 찾아오는 피해자가 생겼다. 한번 돌아선 구독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콘텐츠를 정비한다는 구실로 계정을 폐쇄했다. 먹튀라는 오명이 순식간에 웹 공간에 도배되었다. 그때 경훈이 사건의 중심에서 벗어나 보라고 충고했다. 틀어박혀 있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기회는 찬스’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거들먹거렸다. 

  기회는 무슨 개뿔. 창민은 대출받은 돈만 모이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 다짐했다. 계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반년만 참기로 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사람들이 다녀갔다. 중국 관광객들이 오기도 했고, 동양의 신점을 궁금해 하는 호주 사람도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닥터 백을 찾는 사람이 오면 지긋지긋한 브로콜리 농장이 떠올랐다. 창민이 그들에게 물 인심을 베풀었다. 편의점 생수는 터무니없이 비쌌다. 갈증을 참던 방문객이 물 한잔을 받아 들고는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벽에 걸어 놓은 상담료로 갔다. 일반 타로 30달러, 상세 타로 50달러, 신점 80달러. 코팅해 놓은 상담료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닥칠 불안에 대해 치르고 싶은 보험료였다. 그들에겐 위안이 필요했고 창민이 타로로 점을 봐주기 시작한 이유였다.           

이전 12화 그리는 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