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사람이 그래도 최선을 다해 쓰는
2022. 09. 18.
코스: 5분 걷기/7분 회복러닝/쿨다운 걷기
난이도: 쉬움과 보통 사이
사용 어플: NRC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만큼 힘들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딘가로 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함되는 '신체활동'으로서의 걷기나 달리기와 달리, 운동으로서 걷거나 달릴 때면 늘 "벌써 여기까지 왔어?"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돌이켜보면, 첫날은 늘 그랬다. 기분 좋게 운동하고 돌아와 예상보다 덜 피곤한 내 상태를 깨닫고는 괜히 이렇게 기대하는 것이다.
나...어쩌면 운동 잘할지도?
2022. 09. 19.
코스: 준비걷기/7분 러닝/쿨다운 걷기
난이도: 보통과 어려움 사이
어림도 없다. 아무리 달리기를 좋아하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꽤 잘 달리는 편이었다지만 난 단거리파다. 애초에 난 운동을 체력으로 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냥 정신력으로 버티는 타입이다. 어쩌면 그게 작심삼일의 핵심적인 원인이었을 지도 모른다. 운동은 물론 머리도 써야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체력과 근력과 근지구력과...아무튼 그 모든 요소들과 정신력이 포함된 활동이었던 것이다. 본체와 모니터와 키보드와 마우스와 스피커를 다 가지고 컴퓨터를 써야 하는데, 본체만 가지고 뭘 하려고 하니까 꾸준히 못 하는 게 당연하다. 아니나다를까 여기서부터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겨우 7분인데? 하고 놀라지 마라. 나중에 가면 더 심해진다.
2022. 09. 21.
코스: 걷기 1시간
난이도: 극악
명심하자. 잘 걷는 것, 그거 진짜 힘들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도 금물이다. 팔을 가만히 두지 말고 앞뒤로 규칙적으로 흔든다. 힘차게 리듬타면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규칙적으로 걸어야 한다. 시선은 정면을 보고, 허리를 펴고, 거북목이 되지 않도록 약간 목을 뒤로 빼고(?) 어깨와 가슴을 편다. 그리고 이 짓을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한다. 진짜 안 쉬었냐고 묻는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쉬었겠지, 아마도. 나같이 체력 모자라는 사람이 한 시간을 내리 파워워킹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내 주제를 깨닫고 코스를 좀 수정하기 시작했다.
2022. 09. 23.
코스: 5분 걷기/2분 달리기/2분 걷기/2분 달리기/3분 걷기/3분 달리기/쿨다운 걷기
난이도: 보통
보통의 난이도가 나왔으니 난 이 정도가 딱 맞았던 게 아닐까? 근데 그것과 별개로 병원은 계속 다니고 있었다. 역류성식도염이 정말 오래도 나를 괴롭힌다. 나는 이미 7월 후순부터 글을 쓰는 지금까지, 밀가루와 카페인과 알코올과 자극적인 음식을 일절 먹지 않고 있었고, 먹지 않고 있다. 운동 며칠 한다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건...아니잖아. 이건 정말 아니잖아.
이제는 원인이 다른 데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뭐, 지금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이때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2022. 09. 24.
그냥 나와서 20분쯤 걸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이다. 게을러서? 확실히 부지런하지는 않지만, 나는 내가 게으르다고 말은 못 하겠다. 귀찮아하는 게 많긴 하지만. 왜냐면, 나는 가만히 있을 때도 말로 꺼내지 못한 궤변들과 각종 소설식 설정놀이와 해야 할 일 목록과 실생활에는 하등 쓸데없는 사색과 잡녑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때마저도 머릿속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생하고 있다.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식도염 대가이신 김X훈 교수님 말씀대로 그냥 받아들여야 되나...나도 내 상태를 좀 유쾌하게 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자주 하긴 해도, 난 기본적으로 진지한 사람이다. 그건 확실히 알고 있다. 하염없이 재미없어질 수 있는 사람이다. 아참, 그래서 왜 제일 좋아하는 방식이냐고? 고요해서 그렇다. 그러면 맘 편히 내 안의 생각들을 스트레스받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으니까.
2022. 09. 25.
코스: 걷기 20분/달리기 1분
난이도: 보통
걷기 20분, 오케이. 달리기 1분...?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달리지 않으면 양심에 찔렸나 보다. 하지만 과거의 나에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좀 하다 보면 일상생활이랑 병행하기 힘들어서 걷기만 하는 걸로 다 바뀌게 되어 있다. 기대해도 좋다. 그래도 걷기라도 하는 게 어디야, 라고 누가 말 좀 해주면...확신이 설 것 같은데...
2022. 09. 26.
그냥 나와서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를 건드려 보고 다님
운동이 뭐 별건가? 아니, 별건 맞다. 다만 돈이 들지 않고도 제법 스트레칭이나 기본 운동 같은 것들은 할 수 있었다. 공원에 있는 다양한 운동기구들 이용하고, 걷거나 달리면 된다. 아예 근육을 키우고 싶다면...그건 다른 얘기인 듯 하다. 헬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므로, 이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다. 어쨌거나 내 목표는 작심삼일 탈출하기이다. 뭐 대단한 걸 하려고. 소박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며 성취감을 느껴 나가는 게 무기력증 탈출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고 있다. 정말 무기력할 때는 그마저도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정신적인 건강이나, 소화기관의 건강이나, 육체적인 건강이나, 다 전제는 그런 것 같다.
2022. 09. 28.
코스: 10분 걷기/10분 운동기구
난이도: 쉬움
운동기구에 재미 들렸나 보다. 쉽고, 부담이 안 되고, 최대한 덜 다치는 기구들을 갖다 놓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가장 큰 걸림돌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어떻게든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눈치를 보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스트레스 풀려고 스트레스를 다시 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난 원래도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가끔은 가까운 사람마저도 무서워했다.
2022. 09. 30.
코스: 걷기 40분
난이도: 보통
기억난다.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하늘, 뿌옇게 변해 안개가 낀 것처럼 답답해 보이는 공기. 그날은 새로운 코스를 시험해보는 날이었고 도로가 바로 옆에 있어 차를 피해다녀야 하는 것 때문에 편하게 뇌에 힘 빼고 걷고 싶었던 나는 별로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런데 놀이터 옆을 지나가던 순간, 카메라와 같은 각종 방송용 장비들이 보였고 배우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그네에 각각 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스태프에게 뭐 촬영하는 거냐고 묻자 스태프는 알려드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먼발치서 그걸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정말 다양하게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다.
이 이후부터는 운동의 빈도가 확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만 넘기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건강검진 체크리스트를 떠올리면 다들 알겠지만, 건강상태 자가진단 목록에는 항상 "일주일에 2-3번, 30분 이상 운동을 한다." 가 있다. 수없이 많은 작심삼일을 겪었던 내 경험상 제대로 움직이는 날 없이 일주일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의 상태가 되어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아무리 가벼워도, 아무리 건너뛰어도 일주일만 넘기지 않는다면, 나는 그래도 어떻게든지 포기하지 않은 나에게 칭찬을 해 줄 셈이다. 그래야 인생은 아직 살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