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피폐한 로맨스
“그래 호텔로 들어가라고.”
조현영의 지금 모습은 과거 눈이 풀린 엄마처럼 보였다.
이상한 일이다.
왜 조현영에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걸까.
난 조현영 말대로 차를 몰아 호텔로 들어갔다.
여긴 처음이었다.
수없이 많은 밤과 낮을 여러 장소에서 조현영과 보냈지만.
이 호텔은 진짜 처음 온 곳이다.
호텔 로비 입구에 차를 세우니 직원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뭐 해? 어서 내려. 직원이 파킹한다잖아.”
“...”
조현영은 나에게 엄청난 짜증을 냈다.
마치 서성호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다.
이런 모습은 굉장히 불길했다.
나도 조현영에게 서성호 아버지처럼 막 해도 되는 사람이 된 거였으니까.
“오셨습니까?”
“예.”
“절 따라오시죠.”
조현영과 함께 호텔로 들어가니 직원들이 지나칠 정도로 아주 친절했다.
그리고 조현영은 그게 아주 당연한 것처럼 행동했다.
우린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에 탄 후.
가장 높은 층에 있는 룸으로 안내되었다.
“오빠, 여기 엄청 비싸 보이지?”
“응. 그러네.”
“오빤 평생 일해봐야 여기에 있는 문도 구경 못할걸.”
일부러 그러는 건지.
조현영은 날 심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난 그저 대화나 하자고 한 건데... 갑자기 호텔은 왜 오자고 한 거야?”
“오빤 치마만 두르고 있는 여자면 만사 오케이 아닌가?”
“현영아. 자꾸 날 자극 하지 마. 나도 참는데 한계가 있어.”
“어휴 그러셨구나. 대단하시네.”
조현영은 그 말과 함께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훌렁훌렁 모두 벗기 시작했다.
“뭐 해?”
“뭐가? 옷 벗잖아. 그년은 오빠랑 옷 입고 하는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러니까 지금 내 행동이 뭐가 잘못되었냐고?”
“갑자기 호텔에 와서 이러는 거... 잘못된 거 아냐?”
“잘못???”
조현영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난 잘 모르겠는데.”
그러더니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옷을 모두 벗어 버렸다.
“오빠도 다 벗어.”
“싫어!”
“그럼 내가 벗겨 줄게.”
“싫다고 했잖아.”
난 조현영의 손을 잡고 버텼다.
당황하는 조현영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씻지도 않고 옷도 입고... 그 짓거리를 그 미친년 하고 즐겨했나 봐?”
“아니야. 아니라고. 제발 이러지 좀 마.”
“하아... 웃기시네... 오빠가 이 짓거리를 거부한다고??? 웃겨. 정말 웃겨.”
“뭐라도 좀 입어. 그렇게 있지 말고!”
알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조현영을 보니.
성적으로 흥분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짜증이 밀려왔다.
조현영은 날 죽일 듯 노려보다가 흰색 목욕 가운을 입었다.
“그냥 옷 입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흥. 퍽이나 그렇게 되겠다. 차라리 호랑이가 고기를 끊지... 어떻게 오빠가 이걸 끊겠어.”
“진짜야. 그러니까. 옷 입어!”
“싫어! 어차피 또 벗기 귀찮아.”
조현영은 날 아주 잘 안다.
그래 난 사실 그랬다.
조현영을 만나기만 하면 육체의 대화를 나누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절대 아니라고...
“경치도 좋은데 여기 앉아서 이야기나 좀 하자고.”
“그래. 오빠가 얼마나 버티나 한 번 보자고.”
우리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원래라면 마주 보고 앉아야 하지만.
조현영은 당연한 듯 내 옆에 바짝 앉았다.
그러면서 일부러 자신의 하얀 허벅지가 보이도록 다리를 꼬고 앉았다.
“현영아, 우리 서로에게 더 이상 거짓말은 하지 말자.”
“그게 가능할까?”
“그러지 않으면 난 이 순간 이후로 널 다시는 안 볼 거니까.”
“진심이야?”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빠도 마음을 정한 거 같으니까. 어디 한 번 솔직하게 대화를 나눠 보자고.”
난 조현영이 꼬고 앉은 다리를 내리고 허벅지를 목욕 가운으로 가려 주었다.
“오빠의 지금 행동은 별로 감동적이지가 않네.”
“지금은 대화에 집중하자는 뜻이야.”
“퍽이나. 그러겠다. 훗훗.”
“...”
조현영은 날 조롱했다.
그래 조롱해라.
어차피 나도 이젠 둘 중 한 명에게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무색무취했던 지소영의 매력을 발견했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지소영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였던 김미숙을 소영이는 단숨에 제거했다.
거기에 뭘 더 바라겠나.
그러니 당연히.
나에게 거짓말만 하는 조현영은 이별하는 게 맞는 거다.
“내 첫 번째 질문이야.”
“그렇게 취조하듯 묻지 말고 그냥 내게 묻고 싶은 거 다 물어봐. 어차피 우리 사이는 여기서 쫑치는 분위기인데 뭐.”
조현영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좋아. 그럼 내가 어제 회사에서 있었던 일은 어떻게 아는 거야?”
“우리 집은 돈이 많다고 했잖아. 오빠가 어디서 뭐 하는지 알고 싶으면 알 수 있다고. 됐어?!!”
“그럼. 사람을 시켜서 날 감시한 거야?”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회사 사람이야?”
“그냥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해. 너무 자세한 건 묻지 말고.”
조현영의 이런 모습을 내게 너무 낯설었다.
단, 한 번도 전에는 이런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뭔가 막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어제 성호를 만난 건 사실인데...”
난 성호랑 헤어진 후,
소영이와 있었던 일에 대해 어떻게 아는지 물으려고 했다.
“그런데... 성호 오빠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갑자기 조현영이 먼저 훅치고 들어왔다.
“성호... 그래 그것도 궁금하긴 하지. 성호도 너 못지않게 뭔가 의심스러운 게 많았거든.”
“그래. 성호 오빠와 오빠 아버지인 서재국 아저씨... 둘 다 오빠가 궁금해할 사연이 아주 많지.”
조현영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가서 음료수를 왕창 꺼내 왔다.
“술을 마시긴 너무 이른 시간이고... 이야기는 길어질 거 같고... 목이 타지 않게 이거라도 많이 마시자고. 어차피 긴 이야기가 될 거 같으니까 말이야.”
틱,,,
조현영은 캔을 따 하나는 날 주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마셨다.
“오빤, 성호 오빠를 어떻게 만났어?”
“그거야, 내가 잘 가던 술집에서 자주 보다가 안면을 트고 그러다 나이도 동갑이고 마음도 잘 맞아서 친하게 지냈지.”
“큭큭... 그런데 그게 다 성호 오빠의 의도된 행동이라면...”
“뭐? 의도된 행동이라고?”
놀라운 말이었다.
사실 나도 술집에서 처음 만난 성호에 대해선 많이 알지 못했다.
성호가 조현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 그 덕분에 내가 오빠를 만나게 된 거고... 몸도 섞고 결혼도 약속한 거니까.”
“난 도무지 이해가...”
조현영은 그런 내 반응이 굉장히 재밌는 거 같았다.
“성호 오빠 집안에 대해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봐.”
그녀는 성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성호 오빠 집은 원래 우리 집이 가지고 있던 별장 중에 한 곳을 맡아 관리하던 사람이었어.”
“전에는 재산을 관리한다고 하지 않았어?”
“킥킥킥... 그 집안사람들이 그럴 머리나 되고?!!”
“...”
전에 조현영은 내게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재산에 눈이 멀어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장난질을 하도 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같은 동네에서 잘 알던 서성호 아버님을 자기들 재산 관리인으로 삼았다고...
“성호 오빠는 또 어떻고.”
“성호...”
“그래. 성호 오빤 자기에 대해 뭐라고 그래?”
“군대도 다녀왔고 대학 졸업을 했다고...”
난 성호에게 들은 그대로를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아아... 배 아파. 하도 웃겨서 배가 다 아프네.”
그런데 조현영은 새우처럼 허리를 굽히고는 크게 웃었다.
“왜? 그것도...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조현영은 음료수를 벌컥벌컥 소리 내어 마셨다.
“오빤 보기보다 참 순진하다. 하긴 사람 머리가 좋다고 해서 사기를 안 당하는 건 아니긴 하니까. 하하하하하.”
조현영은 황당해하는 내 반응을 굉장히 재밌어했다.
“잘 들어. 이제부터 내가 오빠를 위해 모든 진실을 다 말해 줄 테니까.”
그녀의 눈이 강렬하게 반짝였다.
37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