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팀장 18, 모야모야병이라고 아시나요?
팀과 실을 이끌면서 개인사정이나 권고사직 등과 같은 이유로 퇴사를 한 직원은 봤지만, 병으로 인해 퇴직한 경우는 딱 한번 있었습니다.
퇴직하게 만든 병의 이름이 '모야모야병(Moyamoya Disease)'이라고 하는데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모야모야병?
저도 예전에 TV에서 방송되는 것을 잠시 본 적은 있지만, 정확한 사항은 몰랐던 병입니다.
모야모야병(Moyamoya Disease)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뇌혈관이 좁아지는 질환입니다. 인구 10만 명 당 18명 정도의 유병율을 보이는 드문 질환이기는 하지만, 주로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인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희귀 뇌혈관 질환이라고 합니다.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경동맥 및 주요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게 되면, 뇌는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뇌는 살아남기 위해 그 부근에 아지랑이처럼 수많은 비정상적인 가는 혈관을 만들어 피를 공급받게 되는데 이것이 모야모야 혈관이라고 합니다.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모양을 뇌혈관 영상검사 사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병명도 이러한 양상을 뜻하는 일본말인 '모야모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침
팀장으로부터 직원 한 명이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휴대폰으로 여러 번 연락을 취해 봤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네요. 일단 당일은 연차 처리를 하였으나 다음 날도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상연락망에 있는 부모님 전화번호로 연락을 드렸더니, 아들이 지금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직원은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아, 자취방으로 찾아갔더니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병원으로 긴급하게 이송을 하였고, 검사결과 '모야모야병'이라고 진단이 나왔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이 직원은 평소에도 지병인 당뇨병이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사와 같이 좁고 사람도 많은 곳에서는 주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에 여유가 있는 저희 쪽으로 옮기고 싶다는 의사가 이전부터 있기는 했습니다.
이 친구는 해외에서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내서 인지 최소 3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유럽에 있는 UN 산하 기관에도 약 2년 정도 근무한 적이 있는 인재라고 합니다. 그런데 외국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한국회사의 문화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가끔씩 상사와 부딪치는 경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사에서는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어 했고, 그 타깃이 바로 본사와 떨어져 있는 저희 실이었습니다. 문제는 저희 실 직원과 1:1로 맞교환하자고 했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결사반대를 했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다시 본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1:1 맞교환이 아니라 그냥 보내주겠다고 하네요.
아마 본사 생활이 너무 힘들고, 몸도 안 좋아서 나름 고충처리를 인사에 요청한 모양이었습니다.
저희 실 인원을 유지한 채로 추가 한 명을 지원한다고 하니 좀 고민이 되었습니다. 개인 사정도 고려해 보고, 이 직원이 왔을 때 실과 팀에 도움이 되는지를 팀장들과 협의를 한 결과 저희 실에서 받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당장 다른 업무를 주기보다는 기존 업무 중 해외와 연관된 업무는 잘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해당 업무를 주기 위해 면담을 해보니 본인도 처음 하는 업무이기는 하지만 해 보고 싶다고 하네요.
이런 게 Win-Win이지요.
한동안 본인의 일도 잘 처리하고 본사에서 있을 때와는 달리, 직원들과도 잘 어울리고 조직에도 잘 융화가 되어 갔습니다.
장기간 재활
그런데 갑자기 이런 큰일이 생기니 많이 당황하였습니다.
다행히 병원에서 수술은 잘 끝났지만, 재활치료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연락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병문안을 가더라도 대화도 안 되는 상황이니, 어느 정도 재활이 된 후에 와주었으면 하더라고요. 자식의 상태가 안 좋은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아마 제가 부모라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네요.
재활치료를 위해 계속 서울과 경기도 인근의 병원을 다녔지만, 쉽사리 회복되지는 못했습니다.
몸의 움직임이 다소 부자연스럽기도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언어소통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복직을 하더라도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니 계속 병가를 연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퇴사
팀장이 인사에 문의를 한 결과, 이 직원이 사용할 수 있는 병가 휴가기간이 거의 소모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나서 얼마 후 "아직까지 회사에 복귀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아쉽지만 퇴사를 신청하겠다"라고 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꽤 오랜만에 이 직원을 만났습니다.
그날은 인사팀 직원과 함께 만나서 사직서를 작성하는 날이었습니다.
직원과 아버님이 같이 사무실에 오셔서 사직에 대한 의사를 확실히 하고,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이야기를 해보니 아직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더군요. 그래도 얼굴 표정도 좋고 몸의 움직임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마주 보고 앉아 사직서에 서명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집니다.
그래도 재정적으로 든든한 아버님이 옆에 계신걸 보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몸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본인이 몸을 잘못 관리해서 그럴 수도 있고, 업무 중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지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몸이 아프면 결국 본인이 손해를 보는 것이지요.
저도 젊었을 때 건강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다 보니, 흔히 말하는 성인병을 몇 개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정신을 차리고 나름 열심히 관리를 하고 있지만, 10여 년 동안 망가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리는 만무하고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은퇴 후 가장 걱정되는 것이 단연 '건강보험료'라고요.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건강이 최고의 자산이지만, 한 번 잃은 건강을 되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후로는 그 직원으로 부터 연락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고,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고 싶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