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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휴가, 쉬면서 잘 먹고 있네요

무계획이 계획보다 나은 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네요(D-205)

아들이 흑백요리사에 나온 '철가방 요리사'의 식당인 '도량'에 예약을 성공했다고 해서, 사전에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정년휴가를 썼습니다. 저는 성격 상 사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한 후 진행을 하는데, 이번에는 의외로 별 생각이 없이 10 일간의 휴가의 첫 발을 헛발질하듯이 내딛게 되었습니다.


맛있는 점심 식사하러 고기리로 고고~

무계획인 정년휴가라 그냥 아내와 딸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딸애한테 물어보니 한정식이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마침 얼마 전에 후배 팀장으로부터 고기리에 괜찮은 한정식 집(산사랑) 이 있다는 소개를 받은 터라 오늘은 거기로 가보았습니다. 지난번에 고기리에 있는 유명한 막국수집에 갔을 때도 느꼈지만, 참 도로 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네요. 한창 공사 중인지 도로포장도 일부는 안 되어 있고 차선도 없는 좁은 길로 되어 있어, 만삭의 딸애를 태우고 운전하려니 조심 또 조심하면서 찾아갔습니다. 솔직히 이런 곳에 식당이 있나 할 정도로 제법 깊이 들어가네요.


평일 점심이라 그런지 주차장도 한가했고, 기다림 없이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인원 수만 말하니 바로 음식은 준비가 되는 모양입니다. 한상차림으로 두 개의 쟁반에 메인이라 생각되는 '제육볶음'과 '임연수어조림' 외에 제법 많은 반찬이 한가득 나왔고, 밥은 돌솥밥으로 나왔네요. 전체적으로 간이 심심한 편(몇 가지는 짰습니다)이라 저한테는 잘 맞았습니다. 정원을 내다보면서 한가롭게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만약 주말이면 이렇게 한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고기리 산사랑.png [고기리 한정식 집 '산사랑'에서 식사]

밥을 먹은 후에 찍어서인지 딸애의 배가 더 불룩 나와 보이네요. 식사 후 나와보니 정원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기는 한데, 모처럼 나왔으니 조용한 카페에 가서 커피는 마시는 것으로 했습니다.

[카페 프리즘에서 음료수]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카페 '프리즘(Cafe Priam)'이 있어서, 시원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한적하고 배부른 오후를 만끽했습니다. 딸애는 출산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기침대를 놓을 공간과 잡다한 아기용품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집이 좁아서 엄두가 안 난다고 걱정을 하더군요. 지난번 어버이날 딸 내 집에 갔을 때 보니 정말 물건이 많이 쌓여 있는데 저걸 어떻게 하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이 좁은 것인지 정리가 안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출산 전에 시간을 내서 정리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딸애는 큰 짐을 옮길 필요가 있으면 저희를 부른다고 하니 가보면 어떻게 던 될 것입니다.


이번 휴가의 모토는 '생각 없이 잘 먹기'입니다.

요 며칠 사이 집에서 쉬면서 가족들과 같이 매일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고기리 한정식집 '산사랑', 어저께는 안양에 있는 '에버그린 돈가스집', 그리고 오늘은 평촌 롯데백화점 10층에 있는 '아웃백스테이크'에 와 있습니다.

얼마 전 종합 검진결과에 대해 상담을 받았는데 혈당은 정상치 수준으로 잘 관리가 되고 있지만, 너무 체중이 감소하다 보니 근손실이 우려된다며, 체중을 적정한 수준까지 올리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경치 좋은 곳을 가서 쉬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곳에 가서 배부르게 먹고 체중을 좀 불리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설빙에서 빙수도 먹고, 고기리 산사랑에서 한정식도 먹고, 안양 에버그린에서 돈가스도 먹고, 아웃백스테이크에서 스테이크와 파스타도 먹었더니 지난주에 비해 약 3㎏ 정도는 찐 것 같습니다.

점심식사 모음.png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설빙 빙수, 고기리 한정식, 아웃백스테이크, 에버그린 돈가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니 휴가의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준비를 안 하고 시작했지만, 너무 집에서 뒹구니 답답하기는 합니다. 잠시 시원한 시간대를 이용해서 수리산 언저리를 트래킹 하였고, 이전부터 가고 싶었던 오산 '물향기수목원'도 한번 다녀왔습니다.


계획하지 않았다는 것은 게으르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늘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옳다고 믿었고, 그래야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충실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이나 홍콩에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꼭 들려야 하는 곳은 억지로라도 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뭔가 아쉽고 잘 못되었다고 생각했었지요.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일분일초라도 잘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흘러 보내는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그냥 잔잔히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부드럽고 시원한 산들바람처럼, 조용한 클래식 선율과 함께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홀로 책상에 앉아 '카미유 생상스(Camile Saint-Saens)의 동물의 사욱제'를 듣고 있는 지금은, 저녁노을이 창문에서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시간이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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