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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삶을 위한 첫걸음

2025.03.18

by 온호

서울 청년 기지개 센터에서 하는 청년플랜브릿지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번 한 달간은 그룹활동으로 진행된다. 1교시는 마음 열기/TCI기질검사, 2교시는 그림검사/멘탈점검/그림명상 으로 소주제를 나누어 한 시간마다 10분씩 쉬며 네 시간 진행했다.


A4용지를 접어 명패를 만들고 그 명패에 간단한 자기소개거리들을 써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마음 열기를 시작했다. 우리 조에는 고립은둔청년지원사업에 3년 차로 참여 중인 것을 겸연쩍어하시는 분도 계셨고 OT때 봤던 지원 사업의 나이제한에 대해서 민감해하시던 분도 계셨다. 작년 활동 중 한 번 마주쳤던 분도 계셨는데 나만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사람 얼굴 기억하는 능력이 조금 특출나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기도 했다.


간단하게 소개를 한 바퀴 돈 후 TCI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TCI 검사는 학교 심리상담센터를 통해서도, 작년 활동에서도 아주 간간히 해 본 편이었다. 이번 강사님께서는 이 검사에 드는 비용을 강조하시면서 청년들의 결과 분석에 대한 의욕을 끌어올려주시려 한 것이 인상 깊었다. 비용이 기관마다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 나는 이 검사가 그렇게 비싸질 수도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꽤 효과적인 언급이었다고 생각했다.


기질과 성격을 구분하여 말씀하시면서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셨다. 사진에 대한 즉각적인 호불호를 가지는 것에 비유해서 기질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누군가는 싫다는 사진을 누군가는 좋아하기도 하는 모습들을 통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그런 성질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니, 강점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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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에는 그림검사와 스트레스 사건 진단표를 통해서 자신의 멘탈 상태를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진 후 젠탱글이라는 것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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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림검사 시간에는 빗 속의 사람을 눈을 감고 상상해 본 뒤 활동지에 그려보라고 했다. 나는 아무도 없는 늦은 밤이나 캄캄한 새벽의 길 위에서 가슴 후련하게 비를 맞는 것을 상상했다. 집에 있던 20대 시절 태풍 비에 샤워를 했던 기억과, 6학년 때 장대비를 맞으며 친구와 그네를 탔던 기억 때문에 나는 비 맞는 것을 일종의 해방처럼 느낀다. 그림 속 내가 좋은 기분이라고 상상하며 그렸으나 사실 비는 스트레스, 우산이나 장화, 비옷 등은 그런 스트레스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장치를 의미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설명을 듣고 내 옆자리 복지사님의 그림을 다시 봤다. 큼직한 우산에 하반신만 겨우 드러날 정도로 몸이 가려져 있었고 장화도 신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나를 보호하지 않고,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에 무방비한 약한 인간인가 싶어 걱정이 됐다. 다행히 강사님이 스트레스를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비를 피할 나무나 처마, 우산 등을 그리지 않기도 한다고 뒤이어 설명했는데 '나도 그런가 보다.'하고 좋게 생각하고 넘겼다. 자기 보고식 검사나, 저런 그림 검사 분야를 완전히 믿지는 않는 영향도 있는 것 같다.


42개의 스트레스 사건 목록 중 지난 1년간 자신에게 일어난 것들을 체크하고 그 점수들을 더해 현재 스트레스 수준을 가늠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배우자(연인) 사망이 100점으로 스트레스 점수가 가장 높은 사건이었고 이혼(이별), 별거, 수감생활, 병, 결혼, 실업, 퇴직, 임신 순으로 차등이 있었다. 취미/여가활동 변화, 수면습관 변화, 식생활 변화, 장기 휴가, 큰 이벤트가 19점부터 12점으로 가장 낮은 축에 속했는데 이것들은 스트레스 사건들이 반드시 부정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적응하는데 에너지가 필요한 변화들을 만드는 사건이라면 스트레스를 동반한다는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동그라미 친 사건들의 점수를 더해 계산해 본 내 총점은 심각하게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번아웃 점수대 초입에 해당했다. 요즘 자취방 생활에서 불만족스러운 생활패턴을 가지게 된 것이 단순히 혼자되면서 나태해진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젠탱글은 선(禪)과 얽힘을 합쳐 만든 단어라고 한다. 명상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뻗어 나와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명상 활동의 하나의 예시로서 해보게 되었다. 잡생각이 들지 않는 느낌이 들어 좋기는 했지만 저런 것들은 얼마나 지속적으로 습관화해서 할 수 있는지가 언제나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참여하는 프로그램에서 종종 저것과 비슷한 것들을 하곤 했었지만 내 삶은 언제나 불안한 편이었다.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들 안에서 그나마 일시적이지 않은 불안해소 방법으로 나는 걷기와 뛰기, 맨몸운동, 글쓰기 정도를 채택해서 하고 있다. 특히 글쓰기를 할 때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것들보다 몰입이 잘 이루어진다. 왜냐면 나는 걸을 때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속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운동을 할 때도 내 몸을 볼 타인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글을 쓸 때는 글이 내 마음에 들게 써지도록만 애쓰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모든 것에서 남 시선을 떼어놓지 못하고 사는 내가 내 생각과 내 목소리, 내 말을 더 잘 들으려고 애쓰는 유일한 시간이다.


어쨌든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자체 명상류 루틴이나 잘 지키자는 다짐을 하면서 1주 차 일정을 마무리했다. 스스로에게 숙제를 냈는데 대부분 요즘 잘 지키지 못하고 있던 루틴을 숙제에 넣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도 했으니 잘 지켜볼 동기가 조금은 더 생겼다. 오늘의 수확은 그것으로도 만족스럽다. 禪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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