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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딛고 도약하는 힘

2025.3.25

by 온호

청년플랜브릿지 마인드셋 2주 차 활동이 오늘 5시에 끝났다. 어제 노트북 수리를 맡겨놓아서 핸드폰으로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 센터에서 아는 청년을 만났고, 노트북을 빌려주셔서 함께 저녁을 먹고 카페에 왔다. 노트북 메인보드는 무상수리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 43만 원을 지불하게 되었지만 그 덕에 오늘 말로만 들었던 느린 학습자를 위하는 식당에도 가보고, 카페에서 각자 할 일 하는 바쁜 도시사람스러운 경험도 태어나 처음 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청년플랜브릿지를 소재로 하는 글에서 하는 이유는 오늘 수업에서는 이런 긍정적인 생각하는 방법을 연습했기 때문이다.

강의 시작 시간인 한 시가 되었지만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애초에 밖에 나가는 것이 힘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시간 맞춰 제 때 도착하는 게 심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음을 알고 나도 그래봤지만, 내가 속한 이 집단의 고질적(아닐 수도 있다.)인 특성에 약간의 염증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런 감정 역시 수업 중에 '비합리적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다뤄보게 되어서 좋았다.

가장 처음에는 첫 주에 스스로 냈던 숙제를 검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숙제를 해내기 위해 한 노력은 무엇이었는지와 숙제 완수율을 점수로 썼다. 나는 6점을 주었다. 철저하게 한 것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3일만 지킨 것도 있었고 거의 아예 지키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점수를 후하게 주며 자신을 칭찬해 주려고 애를 썼다. 강사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숙제를 쉽게 내줘야 완수하기 좋다고 하셨다. 실제로 '일주일에 한 번 이불 정리하기'를 숙제로 내셨던 분은 숙제 완수율이 100퍼센트인 유일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구글의 OKR 같은 것과 너무 반대되는 개념같이 여겨져서 혼란이 있었다. 70퍼센트 달성을 성공으로 삼는 어려운 목표 세우기가 끊임없는 성공과 발전을 추구하는 승리자들의 사고방식인가? 달성하기 쉬운 목표로 차근차근 성취감을 느끼는 건 쓰러진 사람들을 살리고 위로하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사고방식인가? 여기에는 '승리자'라는 것에 대한 가치 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에 나도 생각의 방향 하나를 고르기가 힘들다. 내 오랜 고민과 똑같은 맥락에 있는 문제다. 살아있으니 승리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더 거창한 승리자를 욕심내기도 한다. 구글 OKR 내용이 나왔던 강의의 교수님은 "준거집단을 높게 잡아라."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긴 하셨었다.

숙제 검사 이후에는 이런 내 생각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를 막는 힘"- '내가 해낸 것은 별 것 아니야, 더 잘해야 해.' 같이 잘하고 있는데도 기준점의 위치 설정으로 스스로를 좀 먹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내 경우에도 남들이 이야기하듯 이미 잘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역으로 나를 막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종이에 쓰인 열 가지 신념 중 동의하는 것에 동그라미 치고 찬반토론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토론이 끝나자 강사님이 열 가지 신념은 모두 심리학에서 비합리적 신념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합리적으로 수정해 알려주셨다. 예를 들어 8번: 의지할 만한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는 없어도 되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해 도리어 우울감을 느끼게 만드는 생각이라는 것, 10번: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다. 는 해결책이 없는 문제도 있으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설명하셨다. 신념은 자세 교정처럼 단번에 쉽게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신경 쓰다 보면 조금씩 교정 시간도 늘고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게 인상 깊었다. 내가 내 잘못된 모습이 단번에 고쳐지지 않는 것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기도 했고, 척추위생 지키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유가 잘 와닿았다.

네 가지 가상 트라우마 사건을 가지고 자신과 가장 관련이 없는 사건을 하나 골라 시나리오를 짧게 써보는 시간도 가졌다. 이런 슬픔 글짓기를 하면 자신의 불행은 과대평가하고 타인의 불행은 과소평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결국은 1.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이 있음을 이해하고 2.한 걸음 떨어져 슬픔을 대하게 되며, 3.사건이 주는 의미를 배우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굉장히 격하게 공감이 됐다. 청년들과 모임을 가지다 보면 은연중이든 언어로서 표현을 하든 "그래도 누구누구 님은~" 하는 말이나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타인의 불행을 감히 과소평가하고, "누구누구 님은 이런 면이 있으니 저보다 나아요, 괜찮잖아요." 하는 말을 많이 했다. 그 사람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 도움이 될까 하고 골랐던『 공감의 본질과 형식 』을 읽으면서도 그게 얼마나 어렵고 사랑이 필요한 일인지만을 알게 됐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난 1년 7개월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온 결론들 중에 하나도 "남이 내 문제를 생각하듯 내가 내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슬픔이든 삶의 문제든 그렇게 거리를 두고 볼 수만 있다면. 사건이 주는 의미를 배우는 일도 글을 쓰면서 참 많이 있었다. 숨통 트기 위해 좋게 생각하려고, 그래도 어떻게든 지금부터라도 남은 인생 살아가려면 비관과 부정이 아니라 낙관과 긍정이 필요했기에.

최근 겪은 시행착오와 그로 인해 오히려 잘된 점 등을 적어보는 시간도 있었다. 1년 7개월 동안 늘 해 온 일이어서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행복 설계와 행복 메뉴판을 썼다. 행복 설계는 자신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인지 쓰고 채점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행복이 구체적인지, 저렴하고 시간이 들지 않고 자주 할 수 있는지, 능동적인 것인지를 기준으로 채점했다. 행복 메뉴판에는 자신에게 행복감을 주는 행동이나 소비를 적고 그것의 가격을 매겼다. 소비 관련해서는 단순히 공허함을 채우는 소비가 아닌 소비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지점을 반복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다음 주까지는 행복 메뉴판에 적은 것들을 실천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숙제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봐야겠다. 돈이나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없으니. 일단 오늘은 다섯 자를 쓰면 한 번은 오타를 치고 그 걸 지우다 맞게 쓴 글자까지 지우는 일을 반복하며 한 문장 쓰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핸드폰 자판으로 글을 쓰는 불행을 피해서 감사하다. 컴퓨터 수리에 작지 않은 돈과 시간이 들지만 그로 인해 스트레스받지 않는 나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오늘 수업은 총체적으로 이렇게 소위 '원영적 사고'를 3시간 반 동안 연습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실패를 딛고 도약하는 힘'이기 때문일 것이다. 배운 것을 까먹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괜찮을 것이다. 척추위생 지키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듯 마음위생 지키는 시간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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