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시즌
벚꽃은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지는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싶은 곳의 풍경이 오늘 새로 보니 몰라 볼 정도로 화사해져 있었다. 나도 순식간에 지나갈 이 벚꽃 시즌을 놓치지 않고 만끽하기 위해 지난 주말에는 나름대로 이곳저곳 구경을 다니기도 했다. "벚꽃 시즌이라는 건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것"이라는 말마따나 시험이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아서 어딘가 켕기기도 하지만 할 것과 즐길 것의 균형을 잘 잡아 돌파하도록 해야겠다.
시간이 점점 빨리 간다. 2025년도 벌써 4개월이 지났고 4월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하루가 지나는 속도도 야속하게 빨라지기만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렇다는데 그럼 앞으로는 얼마나 더 빨라진다는 것인지 겁이 나기도 난다. 특히 요즘엔 좋은 시간을 보낼 때야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강의를 듣거나 공부를 할 때도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느낀다. 기다려주지 않고 앞서서 달려가는 시간의 등짝을 뒤에서 바라보며 애가 타는 것을 느낀다. 나도 열심히 달리면 조금 마주 보고 갈 수 있을까.
얼마 전 청년 분에게 식칼을 선물로 받았었다. 자취방에서 요리해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본인 집에 안 쓰는 칼이 많으니 하나 주겠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잊지 않고 센터에 가져오셨다. 새로 한 번 더 날을 갈아서 안전하게 이중으로 포장해 놓은 칼을 방에서 포장을 뜯어서 씻었다. 그게 왜 그렇게 마음 따뜻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알겠다. 일처리가 꼭 우리 엄마가 했어도 똑같이 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했고, 그 배려 깊은 마음씨가 감동스러워 그랬던 것이다. 그 칼로 가장 먼저 썰어본 건 연어였는데, 소금 숙성을 하는 과정에서 까먹고 냉장고에 넣어 놓지 않고 싱크대 옆에 두는 바람에 먹을 때 미지근해서 맛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런 생활스러운 일이 내 작은 자취방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흡족스러워서 좋았다.
글을 쓰면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있다. 시끄럽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할 때 깔아놓는 음악은 클래식이 됐든 뭐가 됐든 대체로 시끄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틀어 놓는 건 교수님이 매주 내주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나야 원래 동영상 강의든 감상 과제든 처음부터 끝까지 속이지 않고 제대로 듣는 스타일이지만 교수님의 "재생시간을 확인하니까 똑바로 들으라."는 감시사회 디스토피아식 엄포에 괜히 반감이 들어 하기가 더 싫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걸 하고 있을 때 적당히 틀어 놓고 재생 시간을 채운다.
그리고 교수님은 수업 전 쉬는 시간에도 강의실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으시고,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도 음악을 크게 트시고 설명까지 하시는데 왜 그러실까 싶다. 쉬는 시간이라는 뜻을 모르시는 걸까. 귀도 쉬어야 하고, 친구들끼리 이야기도 해야 하고, 쪽잠도 자야 하는데 말이다. 다른 강의에서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클래식 음악 교양 강의에서 그러면 감상이 아니라 공부 같고 일 같을 수밖에 없다. 수업 시간에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있을 때도 너무 전형적인 꼰대스러울 때가 많으셔서 학습 의욕에 악영향을 끼친다. 거기다가 강의도 잘 못 하시고 강의 자료도 시원찮아서 여러모로 힘들다. 또 본인 수업 시간은 끔찍이 아끼시면서도 두 시간 반 강의에서 후반 30분 정도는 그냥 깎아내고 버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일찍 마치는 걸 좋아하는 학생들도 많겠지만 나는 그래도 학교 갔을 때는 꽉 채워서 제대로 누리고 싶다. 14년도에도 [재즈 음악의 이해와 감상]이라는 음악 교양 강의를 수강했었는데 그때는 교수님이 강의도 잘하시고 과제와 수업량도 깔끔해서 좋았던 것이 기억이 나 더 아쉽다.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던 전공 선택 강의 하나가 대학 본부 지침으로 오프라인 강의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OT이후로는 처음으로 오늘 강의실로 갔다. 나는 이 강의에 대해서 애초에 불만이 있었다. 몇 년 전에 녹화했는지도 모르는 동영상은 싱크가 안 맞았고 중간중간 조금씩 짤려나가기도 했다. 또, 교과서를 요약해 놓은 PPT를 읽기만 하는 강의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온라인 강의를 들을 거면 대학을 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훨씬 값싼 사이버 대학을 가도 되고, 안 그래도 AI 덕에 공부 자체만 보면 대학 공부도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시대인데 말이다. 온라인 강의보다는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강의가 학습효율이 더 좋은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 강의실에 갔다가 싫은 것이 더 확고해졌다. 교수님은 오프라인 강의로 전환된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는데 결국 같은 말만 반복하셨고 허둥거리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결론은 수업은 녹화 동영상 강의로 들으라는 것이고 강의실에서는 문제 풀이를 시키겠다는 걸로 지어졌다. 한마디로 본인의 자동 사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더 싫은 건 말로는 과목 특성이라느니, 온라인 강의로 알고 해당 시간에 다른 일정을 잡아놓은 학생들에 대한 배려라느니 하는 말씀을 하신 것이었다. 하지만 과목 특성은 온라인 강의를 하는 것과 하등 상관이 없고, 이 강의 시간에 자격증 학원이나 시험공부 스터디 등을 잡아놓은 학생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대학을 대학답지 못하게 만드는 말일뿐인 것 같았다. 대학에 분과 학문 공부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취업 준비하러 오는 것을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분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대학생활이 더 허위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학원을 가고, 자격증을 따러 다니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지 않나.
화룡점정으로 이 이슈에 대해서 언급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를 하셨는데 그런 떳떳하지 못한 모습에 혐오스럽다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 질문 없냐는 말에 "그럼 앞으로 오프라인 강의에서 실제 강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학생들은 동영상은 동영상대로 따로 봐야 되고 오프라인 강의도 와야 하니 부담이 늘어났다고 보면 맞는 것이냐"고 말해버렸다.
대학을 다녀도 공부를 할까 말까 하는데 왜 잘하던 공부까지 안 하고 싶게 만드는 교수님들이 계실까. 내가 자세를 고쳐 앉아야 되나. 시험 기간이니 내 마음이 이렇든 저렇든 떠나서 할 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