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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짝꿍의 이야기

by 사파이어

언제까지 이렇게 피할 수만은 없지.

작정을 하고 엄마집으로 갔다.

운을 어찌 떼야할까 많이 고민했다.


엄마, 내가 밥을 안 먹는 게 그렇게 화낼 일?

엄마는 화낸 적 없다고 하신다.

아니, 내가 화로 느끼면 내 느낌도 맞는 거야.

나 지금 가족들한테 많이 서운해.

나의 슬픔은 당연히 나 말고는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슬픔이지만, 그래도 서운해.

초코가 아무리 강아지라지만, 12년을 같이 산 내 자식인데, 그 슬픔이 어떻게 한 달 만에 괜찮아지겠어.

밥 먹기 싫어도 걱정 끼치기 싫어서 눈물 싹 닦고 왔는데, 나 인제 나 먼저 챙기고 살고 싶어.

나 괜찮은 척했는데, 사실 안 괜찮아.

밥은 나한테 하나도 안 중요해.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밥 못해 먹어서 여기 와서 맨날 먹는 거 아니잖아요. 하지만 바로 옆에 살면서 맨날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나 어디 가서 혼자 좀 살다올까, 어떻게 할까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어. 아직은 모르겠어.


조근조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나마 추려보면 두서없이 울먹이며 저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10대 딸이 젊은 엄마아빠한테 화를 내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앉아 있는데, 엄마한테서 장문의 카톡이 왔다.

내 딸이 이렇게 슬퍼하고 있는데, 엄마가 어찌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어. 너의 아픔이 모두모두 지나갈 때까지 엄마는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 그러니 너의 마음이 편한 대로 해.




다음 날 아침 일단 집을 나섰다.

계곡길을 굽이굽이 돌아 되는대로 핸들을 꺾으니 영월 가는 길이다.

그래, 영월에 가야겠다. 그냥 가보자.

아, 동강으로 갈까.

이제 막 여기 강원도에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 너머로 동강이 흐르는 한적한 쉼터에 차를 세우고 잠시 강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걸었다.

그러나 역시 차가 좋다. 다시 달렸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설정 없이 안심 운행만 켜놓은 채로 산으로 산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무작정 달려도 길은 다 통하나 보다. 어느새 집으로 가는 길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달리는 차도 없고 신호도 없는 길을 끝 모르고 달리다가 드디어 익숙한 길이 나오는 순간, 참고 있는 줄 몰랐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되는대로 가보자고 맘은 먹었지만 내심 길을 잃을까 노심초사했던 모양이다. 낯선 영월의 산길을 돌며 나도 모르게 참고 있던 눈물이었나 보다. 돌고 돌고 또 돌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우리집이 싫어진 작년 겨울과 올봄이지만, 어쨌거나 내가 살고 있는, 살아갈 나의 집.




다음날은 4월 16일이었다.

이날만큼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초코의 명복을 빌기에 앞서 세월호 아이들의 명복과 유족들의 안위를 빌었다. 자그마치 십 년이다. 내 마음이 직접 가닿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도서관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섰는데, 웬일인지 핸들을 계곡 쪽으로 틀어버렸다. 오늘도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초코와의 산책길을 홀로 걸으며 '초코야'하고 몇 번이나 불러보았다. 봄이 되면 초코랑 가보려고 했던 저 멀리까지 쭉 이어져 있는 자전거길을 이번에도 역시 가지 못했다. 아마도 그 길을 영영 못 가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서관으로 가려고 차 시동을 걸었는데, 마침 <ebs 윤고은의 북카페>가 흘러나왔다. 정해신 님의 책 중 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눈물에 처음에는 온마음으로 함께 해주던 이웃들이었지만, 한해 한해 시간은 흐르고, 어느 날 밤에 오열하는 유가족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며 한 이웃이 신고를 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 마음을, 마음껏 울 수도 없는 그 마음을, 11년 간 끊임없이 흘렀을 그 눈물의 무게를 감히 내가 다 알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 그래서 더 많이 필요한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맘껏 울면서, 이렇게 맘 놓고 울지도 못하는 그 마음에 대해 자꾸만 생각했다.

밀려오는 만감의 파도에 저절로 울음이 터지고, 잠잠해지고, 또 밀려오고 잠잠해지고.


내가 울고 싶어서 초코 생각을 하는 건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초코생각에 빠져들어 울음이 나오는 건지.

가만히 억지로 텅 빈 마음을 만들어 멍하니 운전을 해보았지만 모르겠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한 가지는 이제 알 것 같다. 방아쇠는 언제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얼마나 아팠을까.. 충혈된 초코의 눈동자이다. 이제는 내가 안아줄 수 없는 저 먼 곳에서 초연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초코의 모습이다. 그리고 초코가 딱 하루만 내 곁에 와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결코 이룰 수 없지만 버릴 수도 없는 나의 마음을 문득 느끼는 순간이다.


도서관을 이미 지나쳤음에도 차에서 내리기 싫었다. 라디오를 계속 듣고 싶어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진부까지 달렸다.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다, 는 문장을 청취자들이 보내오고 그걸 윤고은 작가님이 읽어주는 시간이었다. 청취자가 보내온 문장은 잊어버렸지만, 그에 대한 작가의 멘트에 내 마음이 꿈틀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내는 화는 그 대부분이 그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그림자 같은 것. 내가 초코를 진짜 사랑했었는지, 미안한 기억이 이렇게 많은데 그래도 사랑은 했다고 비겁하게 용서받고 싶어 하는 이런 나의 사랑도 사랑이라 할 수 있는 건지,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덤덤하게 저런 말을 읊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차로 빼곡한 주차장 한편에 겨우 주차를 하고 들어가 책을 검색했다.

얼마 전부터 펫로스에 관한 글을 브런치에서 매일매일 일부러 찾아 읽는다. 첫날 알게 된 Ellis작가님의 글을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그리고 밤에 또 한 번 다시 읽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작가님의 글에 나왔던 장그르니에의 <고양이물루>와 <어느 개의 죽음>이 읽고 싶어서 찾아보았으나 아쉽게도 없었다. 밖은 이제 가디건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봄기운이 완연한데, 도서관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내 어깨와 등에는 오슬오슬 한기가 느껴졌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차분함이었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한참을 망설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치킨 사갈까 물었더니, 엄마가 좋지 하신다. 치킨을 가지러 가면서 생각했다. 그래, 너무 거창하면 되레 쓴웃음 나오니까, 나는 나대로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변해볼까.

동생 퇴근 시간이길래 혹시나 집에 와서 치킨 같이 먹을래 물었더니 오겠다고 했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을 텐데 안미안해하련다. 고맙다 동생아.


치킨냄새 가득한 차 안에서 잠시 설렘 비슷한 마음상태가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이어서 써볼까. 요 며칠 도통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초코를 기억하고 싶어서,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어서 쓰겠다고 해놓고,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초코는 이제 내가 안을 수도 없는 저 먼 곳에 있는데.

요 며칠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절대 놓고 싶지 않은 지푸라기이기도 했다.


나도 브런치북을 만들어볼까, 제목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초코와 나의 12년? 추억하면 할수록 마음 아픈 기억들만 떠오르는데..

그럼.. 반려의 의미?

짝반, 짝려. 짝꿍? 짝꿍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 초코는 나의 짝꿍이었구나..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애기라 마음 아팠다. 미안해서, 잘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못한 엄마라서 마음 아팠었다.

아니었어, 초코는 내 애기이기도 하지만 나의 짝꿍이었어. 기쁨도 슬픔도 함께 했던,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짝꿍이었어.


짝을 보내고 나서야 처음으로 반려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초코가 우리와 함께 살아 행복했다고 딱 한 마디만 해준다면 이 죄책감과 미안함이 사라질 것 같다고, 부질없는 그 생각을 매일매일 했다.

'나의 짝꿍 초코'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초코에게 달아주는 그 짧은 순간 알았다.

초코는 계속해서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의 짝꿍아, 이제는 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봐..라고.


초코를 보내면서 고맙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저 미안해, 사랑해라고 초코 가는 길 마지막까지 귀에다 속삭였었다. 언젠가는 초코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미안해 하지 않고도 할 수 있기를..

초코야, 사랑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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