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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파서 목이 메여서

사랑은 유치를 남기고..

by Ella


이가 아프다며 울먹이는 아이를 품에 안고,
저는 붉은색 챔프(어린이용 진통제)를 건넸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진통 효과가 있으니...’
제발, 나아라...’ 속으로 간절히 빌면서요.


아이의 아픔은 일기장에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절규하듯 눌러쓴 글씨.


절규의 일기장


그날 밤 10시, 급한 마음에 가까운 치과에 예약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복잡해졌어요.

'그냥 이를 실로 묶어서 이마를 빡!! 쳐서

내가 뽑아버릴까?’

물론 무서워서 못 했지만요.


아이가 아픈데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현실.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그렇게 울다 지친 아이는 겨우 잠이 들었어요.



다음 날 아침

통증이 없어 보였습니다.

치과에서는 이메일이 왔고, 진료까지는 무려 4일을 기다려야 한다네요.


아이는 이가 흔들리고 잇몸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믿고 싶었습니다.
'곧 빠지겠지. 제발 빨리 빠져라.'


그날 밤, 아이는 다시 눈물을 글썽였고
저는 또 빨간 챔프를 찾아 먹였습니다.
그렇게 3일을 반복했습니다.



드디어 4일째

학교 픽업 시간.
아이는 천사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엄마, 이 빠졌어! 이~~~~~!”


함께 달려온 친구들도 외쳤습니다.

“Tooth lost!”


담임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Today, Jane wiggled her tooth all day and it finally came out.”


빠진 어금니와 투스케이스




선생님은 아이에게 마시멜로우를 건넸습니다.
피가 멈출 때까지 눌러두라고요.

마시멜로우가 피도 흡수하고 진통효과도 있나 봅니다.
달콤한 마시멜로우로 놀란 마음을 달래주는 방식, 정말 캐나다답습니다.


아이는 이내 빠진 이가 들고 냅다 교장실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예쁜 투스 케이스에 이를 담아 목걸이로 걸어주셨어요.

이 특별한 선물은 아이에게 귀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사실 아이 속마음은 이랬대요.
‘제발 학교에서 빠져라...’

투스 케이스 목걸이를 갖고 싶어서 계속 이를 흔들었나 봅니다.


교장선생님의 선물



한국 학교였다면, 이런 상황은 달랐을 거예요.
이가 심하게 흔들린다고 하면 선생님은 부모에게 연락을 드렸겠죠.

“제인 어머님, 제인이 이가 많이 흔들려서요.
치과에 한 번 들러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한국에선 교사가 의료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보호자에게 상황을 알리는 정도지요.

그럼에도 치아가 빠지면 보건실에서 거즈를 물고 조치를 취했을 거예요.


하지만 캐나다는 다릅니다.

치과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없기에,
아이 스스로 해결하고, 학교 안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인이의 흔들리는 이와, 반 친구들의 합동 대작전.
제인이가 이가 흔들리고 아프다 말하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Just twist it!”


각자 자신만의 이 뽑기 비법을 전수해 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지요.


자기주도적 유치 발치 전문가 - 학급 친구들



이곳 아이들은 흙을 밟고, 비를 맞으며 자라듯, 이를 뽑는 법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익혀갑니다.




또 하나 놀랐던 건,
캐나다에서는 점심시간에 양치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공용화장실 세면대에 양치 물을 뱉는 것도 이곳에선 큰 실례가 된다고 해요.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이러다 이 썩는 거 아닌가?
한국 학교의 양치실이 너무도 그리웠습니다.

그렇다고 제 아이만 양치하게 할 수도 없더라고요.
괜히 눈치 보이기도 하고, 이곳의 문화를 따라야 하니까요.


양치도 어렵고, 병원도 쉽게 못 가고...


K- 의료 서비스 세계 최고입니다.

친절하고, 빠르고, 접근성도 뛰어나지요.

어디가 아프다 하면 바로 진료받고, 검사하고, 약까지 받아 집에 옵니다. 원데이 원스톱!


하지만 캐나다는 조금 다릅니다.
응급실도 기본 10시간 대기가 흔하고,

일반 병원은 진료를 받으려면 3~4일, 길게는 2~3주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의사를 만나기도 전에 나아서 예약을 취소하면, 그 수수료만 50달러. 우리 돈으로 오만 원이 넘어요.


게다가 한국엔 동네마다 하나씩은 꼭 있는 '보건소'

여긴 그런 것도 없습니다.


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서는 흔들리는 이를 뽑는 데도 예약을 잡고, 기다리고, 비용은 200달러가 넘습니다.


한국이라면?
흔들리는 유치 발치, 5분이면 끝. 만원이면 해결됩니다. 거기에 엑스레이사진을 통해 앞으로 더 빠지고 나야 할 영구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친절히 설명해 주십니다.




하지만 캐나다는 중증 환자에 한해 병원비가 ‘0원’.
출산, 암 같은 중대한 질환은 철저히 국가에서 책임집니다.

캐나다 의료 시스템은 ‘위급한 순서’가 기준입니다.

그래서 감기 같은 일상 질환엔 한국과 같은 의료 혜택을 바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우리 같은 외국인은 아프면 한국으로 가는 게 낫습니다.

한국은 대형 병원도 민간 운영이 대부분이니 접근이 훨씬 빠르고 유연합니다.

정말이지, 아플 땐 한국이 최고예요.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나니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다짐합니다.



요즘 우리 집 가훈입니다.



사랑은 유치를 남기고,


Tip) 아이가 유치 때문에 아파하고,

아이를 안고 걱정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노래 가사를 음미해 보세요.


테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 마음을 가라앉혔다.





"제인아, 빠진 이는 어린 날이 남긴 너의 선물이야.

그리고 오늘도 잊지못할 추억이 생겼네.

용감하고, 씩씩하게 자라줘서 고마워."


제인이는 빠진 이를 베개 밑에 넣고 잠들었고,
밤새 다녀간 이빨요정은
그 자리에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두고 갔습니다.


넌 한국 아이니까, 2달러 대신 500원.
아이도 웃었고,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이가 빠지고,
그 자리에 작은 추억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이빨 요정이 두고 간 500원, 제인이도 웃고, 나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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