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돌이가 잠든 후 지하 창고를 향해 내달립니다. 겨울 날씨가 풀리기 전, 급한 마음에 작업실로 향하는 지하주차장 통로를 제 전용 씽씽이를 타고 통과하던 중에 김서린 안경이 배수로 턱을 가렸고 '꽈당' 소리와 함께 제 몸은 뱅글뱅글 돌아 바닥에 고꾸라졌습니다. 작업 중에 먹으려 바짓주머니에 넣어 둔 오렌지는 시멘트 바닥과 허벅지 사이에서 으깨지며 어두컴컴한 지하를 상큼한 과일 향으로 가득 채웠고, 저는 손목을 부여잡고 천장을 보며 소리 내 웃어댔습니다. 절뚝이며 작업실로 들어와 차분히 엄지와 검지로 실매듭을 힘껏 지려했는데, 손등부터 팔목까지 전기가 통한 듯 저려왔습니다. 아마 미약한 골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병원을 들르고 팔을 깁스로 고정하기에는 시간에 쫓기는 통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콩돌이 엄마가 사용하던 육아용 손목보호대로 아픈 부위를 강하게 고정시키자 그런대로 작업이 가능했고, 시간이 자연스레 부상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할 겨를 없이 실을 얹고 꼬아갔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를 넘어갔고, 가뜩이나 겁이 많은 제게 인기척이 전혀 없 지하실은 등골이 저리게 무서웠습니다.
'돈은 돈대로 다 쓰고, 가족들한테는 매번 짜증만 내고, 나도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졌는데... 내가 이 새벽에 왜 여기서 사다리를 타고 있는 거지?'
"파스스스스!"
주변인들이 지긋지긋해하는 자기 연민을 찢으며 불쾌한 마찰음이 들렸습니다. 환청이라고 스스로에게 자기 암시를 주며 침착하려 했지만 지하실 구석에는 시커멓고 온몸에 소름을 끼치는 쥐 한 마리가 쌓아둔 종이상자 탑을 번개처럼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새하얘졌고 제 신발보다 작은 쥐의 모습을 보며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공포에 떨었습니다.
'어떡하지?'
"빨리 가자, 콩돌이가 기다려."
"... 알았어. 딱 30분만 기다려줘. 바로 올라올게."
초음파 폭탄, 페퍼민트액, 삼나무 조각 등 쥐가 견딜 수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것들을 조사하여 지하실 구석구석을 채우고 뿌렸습니다. 저의 게으름을 탓하며 1년 넘게 모아 온 쓰레기와 음식찌꺼기들을, 마치 남이 그랬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치워댔지요. 가족과의 한 달 전 약속이 다가온 오전, 작업이 일정에 밀리지 않도록 그 전날부터 밤을 새웠기에 머리는 어지러웠고 쥐돌이가 한창 작업 중인 섬유를 타고 오르며 망가뜨리는 상상에 웃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잡동사니 틈바구니에 몸을 숨긴 쥐돌이를 향해 페퍼민트 물총을 쏘아 갈기며 '제발 나가라'는 주문을 중얼거리고는 창고문을 걸어 잠궜습니다.
우리 세 가족은 처음으로 호캉스를 즐겼습니다. 그간 새벽을 지새우던 지하에서 단 몇 초 만에 수십 층을 건너뛰어 오른 호텔은 쾌적했습니다. 아이와 물놀이를 하고, 평소에는 엄두 내지 못할 음식을 먹으며 심신을 달랬지만 마치 주머니 구석에서 쥐돌이가 제 다리를 간지럽히는 듯 그 녀석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쥐의 청각에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듯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소리, 코를 찔러들어가 고통을 준다는 박하향이 녀석을 쫓아냈기를 기대하며 휴가를 마쳤습니다.
"야... 이 놈 봐라..."
쥐돌이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가 없는 작업실을 주인인양 헤집어놓았습니다. 제가 드로잉을 하는 긴 책상 위는 쥐돌이의 발자국으로 빼곡했고, 목이 말랐던 녀석은 아크릴, 수채화 물감의 농도조절을 위해 사용하던 물을 실컷 마시고 행패 부리듯 물통을 엎은 채 자취를 감췄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다행히 그간 우여곡절을 거치며 만들어가던 <깨진물>이라는 제목의 대형 작업은 무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