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에서 '마음이 열리는 절'까지.

충남 서산 용현 '마애여래 삼존석불'~개심사까지 아라메길 걷기.

by 박상준

가을 햇살이 뽀얀 가루처럼 가야산 용현계곡에 쏟아졌다.

나무다리를 건너 숲 속으로 들어서니 '마애여래 삼존석불' 가는 길에 가파른 돌계단이 가로막았다. 그 계단을 한발 한발 올라갈 때마다 마치 볼륨을 조금씩 높이듯 독경(讀經) 소리가 커졌다.

도량석(道場釋^새벽에 하는 불교의식)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났다. 그래서 암자 스피커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암자를 지나 경사진 계단에 오르니 석불 앞에선 뜻밖의 풍경이 펼쳐졌다.

'비구니'가 승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고 단정하게 서서 낭랑한 목소리로 독경을 낭독하고 있었다. 소박하고 해맑게 웃는 얼굴로 '백제의 미소'라는 불리는 석불은 더욱 신비스러워 보였다. 귀를 열고 그저 가만히 지켜만 봐도 절로 마음에 온기가 돌았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석불로 올라가는 돌계단)


길을 걷기 전 시작이 좋았다. 그 느낌 그대로 상왕산(해발 310m)을 휘감아도는 아라메길을 향해 떠났다. 뇌리 속에는 '백제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애여래 삼존석불과 보원사지터 답사를 끝내고 용현 자연휴양림으로 접어들었다.

번잡한 세상과 잠시 결별한다면 바로 이 길이다. 일부러 비워둔 듯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적한 길이다.

울창한 숲이 햇볕을 가려 어두운 오솔길이 고즈넉하다. 이 길에선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산림욕 하는 기분이 든다. 숲의 향기가 스멀스멀 풍겨오는 오솔길은 적막한 사색의 길이다.


용현 골짜기 순결한 물길이 요란하게 흐르고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쾌청했다. 한 여름이라면 자연휴양림으로 휴가 온 피서객들로 북적였을 터다.

숲 탐방길에서 내려와 산판 길로 접어들었다. 계류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를 배경음으로 삼아 하염없이 이어진 외길을 무작정 걷노라면 세상의 기억마저 아늑해지는 듯하다.


(개심사를 품에 안은 상왕산 능선)


가야산과 상왕산이 갈라지는 삼거리의 넓은 풀밭에서 잠시 앉아 보온병에 담아 온 연한 커피 한잔으로 목을 축였다.

다시 나선형 임도를 따라 상왕산 능선에 오르면 붉은 소나무(紅松)가 양쪽에 도열해 있는 오솔길을 만난다. 능선에서 개심사를 가려면 1km 정도 가파른 오솔길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이 길 역시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어 바라보기만 해도 한유롭고 유려하다.


(탐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개심사 경내)


'개심사'. '마음이 열리는 절'이라는 뜻이다. 백제 의자왕 때 혜감국사가 창건한 절은 명성에 비해 크지는 않지만 매력이 넘치는 절이다. 봄이면 왕벚꽃이 흐트러지게 피어 선경을 연출한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에 "나더라 가장 사랑스러운 절집을 꼽으라면 나는 무조건 영주 부석사, 청도 운문사 그리고 서산 개심사부터 생각할 것 같다"고 썼다.

유홍준 식으로 표현하면 저 멀리 내다보는 시야는 서해바다로 뻗어가는 시원스러움이 있고 양쪽 산자락이 꼭 껴안아 주는 포근함이 있다.


(개심사 대웅전 전경)


산자락을 타고 개심사 경내로 들어서자 담을 덮은 넝쿨에 서리가 앉으면 붉게 타오를 듯하다.

개심사를 상징하는 심검당의 기상천외의 기둥은 자연스러움에 순응해 외려 즐기고 순종한 마음의 소산이다. 노랗게 칠한 벽체와 조화를 이루었다..

가야산의 한 줄기가 내려온 상왕산(象王山) 능선길, 홍송(紅松) 군락, 맘껏 휘어 뻗은 개심사의 나무기둥은 한 점 그림이 되어 시간을 잊게 한다. 길을 음미(吟味)하느라 시간이 늦어 정갈한 신창호수도, 서산목장 '용비지'도 들리지 못했다. 언젠가는 서산목장 초록 언덕과 굽이치는 목장 길, 환상적인 데칼코마니 풍경으로 유명한 용비지로 이어진 '날등길'도 걸어보고 싶다.


*코스 /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불상~보원사지터~용현 자연휴양림~상왕산 송림숲길~개심사~보원사지터(10km)


*tip / 승용차를 타고 와서 이 코스를 걸으려면 왕복 20km 이상을 걸어야 한다. 다만 불상 근처의 보원사지터에 차를 주차한 뒤 갈 때는 정 코스로 가고 개심사에서 되돌아올 때는 상왕산 능선에서 좌측 보원사지터로 가는 이정표를 보고 내려가는 길이 거리와 시간이 절반 이상 단축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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