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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Nov 01. 2022

'단풍비'내리는 대청호수에서

단풍이 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강(霜降)이지나고 입동(立冬)이 다가오고 있다. 스산한 가을이다. 어느 순간 단풍은 나무와 작별할 것이다. 길가엔 샛노란 은행잎이 카펫처럼 깔리고 붉은 단풍잎은 바람에 흩어졌다. 

  


 공교롭게도 차안 라디오에선 '에릭 크립튼'의 고엽(枯葉 / Autumn Leaves)이 흘러나왔다. '기타의 신(神)'은 자신의 기타 반주에 맞춰 저음의 감미롭고 호소력짙은 음색으로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했다. 어느덧 올 가을도 떠나가고 있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길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집에서 멀지않은 충청의 젖줄 대청호반이었다. 요즘 청남대는 온통 화사한 국화가 지천이다. 주말 문의톨게이트에서 청남대로 가는 호반도로는 국화향에 취하기위해 ‘국화축제’로 가는 차량으로 붐빈다. 

  

하지만 내겐 대청호 인근 단풍이 더 매혹적이었다. 파스텔톤 자태를 뽑내며 길가를 장식하는 단풍 명소’는 아니지만 드믄드믄 서있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는 윤슬이 반짝이는 호수와 어울려 가을의 감성을 자극한다.



호반 데크길엔 20대 청춘들이 파란하늘 노란풍경 아래서 삼삼오오 ‘셀카’를 찍고 있었다. 이들은 밝은 얼굴로 노란옷을 입은 은행나무와 잔디밭을 뒤덮은 은행잎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았다. SNS를 통해 사진을 받은 지인들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흐를터였다.

  

산책로에서 바라본 호수는 맑고 부드러운 가을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한낮 따스했던 햇볕이 온기를 잃고 찬바람이 코끝을 스쳤지만 마음은 따스해졌다. 데크길에서 수면을 내려다보자 은행나무가 캔버스에 그린 수채화처럼 물속에서 흔들렸다.


대청호를 향해 반도처럼 튀어나온 휴보힐링센터와 카페 더대청호 산책길을 거쳐 문의 문화재단지로 올라가는 길에 때깔이 고운 당단풍나무를 발견했다. 요즘은 기상이변으로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곱게 빛나는 단풍을 보는것은 쉽지않다. 40대 커플이 화려한 단풍나무 아래서 셀카를 찍었다.

  

호수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마른 단풍잎들이 마치 춤을 추듯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단풍비'가 쏟아지는 듯 했다. 호반오솔길은 물기를 머금은채 떨어진 단풍잎이 융단처럼 뒤덥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에 손을 잡고 산책하던 젊은 연인이 탄성을 터트렸다. 대청호반 단풍길의 특별한 가을이 남긴 강렬한 추억이다.

한 친구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 ‘를 리메이크한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흥얼거렸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 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 하렸더니..."

 하지만 내 마음은 시렸다. 단풍이 모두 떨어지면 헐벗은 나무가지는 삭풍(朔風)에 시달리고 곧 겨울이 찾아오고 한 해가 지날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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