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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by 데이지

우리 집은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준비를 하고 여름이 오기 전에 월하준비를 합니다.

덮고 자는 두꺼운 이브자리를 바꾸고, 겨우내 입었던 패딩, 코트 같은 두툼한 옷들을 드라이 맡기며 여름옷 꺼내놓기, 여름 김장 담그기, 햇마늘 사서 까기 그리고 매실청을 담가야 합니다.


매년 하는 일들이니 어렵거나 번거롭진 않습니다. 이브자리도 바꾸고 세탁해서 장롱에 넣어 두었고, 겨우내 입었던 세탁물은 세탁소에 맡겼습니다. 지난주에는 여름 김장과 열무김치도 담갔습니다. 주말에 올레길을 걷고 오는 길에 '대정 암반수 마농박람회'에서 마늘을 싸게 샀고, 일 년 동안 먹을 다진 마늘, 통마늘, 슬라이스 마늘 등 준비를 끝냈습니다.


이제 기다렸다가 6월 5일 망종이 지나고 나면 매실을 사서 청을 담거나 장아찌를 담는 일만 남았습니다. 제주에서 알게 된 지인을 통해 매실을 살 수 있는 농가를 소개받았습니다. 망종이 지나고 매실을 따러 조천의 한 농가를 갔습니다. 집 안채에 있는 매화나무에 매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집주인 할아버지가 의자와 사다리를 가져다주시며 올라가 따라고 하십니다.

따기 전에 모자를 쓰고 팔토시를 하고 장갑을 끼고 준비를 합니다. 낮은 곳은 나무를 돌며 매실을 땄고,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의자를 놓고 올라가 땄습니다. 집을 지으면서 심었다는 20년 된 매화나무에서 한 시간 남짓 매실을 16kg이나 땄습니다. 둘이 땄으니 반반 나누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무에 남아 있는 매실은 노랗게 익으면 매실 쨈을 만들려고 남겨두었고, 황매실이 되면 연락해 주십사 할아버지께 부탁도 잊지 않았습니다. 매실이 익으려면 8월은 되야겠지요.


마트에서 매실을 사 오면, 씻고 건조해 매실청을 담그면 되지만 직접 매실을 따서 청을 담그려니 고된 일입니다. 딴 매실은 집에 들고 와 깨끗하게 씻어 놓았습니다.

매실청을 담기 전에 일머리를 생각합니다. 우선 오랫동안 보관한 통을 가져다 씻어 물기가 빠지도록 엎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씻어놓은 매실은 청과 장아찌를 만들 매실로 구분합니다. 매실 장아찌는 알이 큰 매실을 골라 칼로 저며 씨를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설탕과 잘라낸 과육은 같은 비율로 버무려 용기에 담으면 완성입니다. 남은 매실은 같은 무게의 설탕과 버무려 씻어 놓은 통에 담고 윗부분은 설탕을 부어 공기를 차단해 주었습니다. 매실청과 매실 장아찌가 끝나고 날짜를 쓴 메모지를 붙여 놓았습니다. 뒷정리를 하고 담가놓은 청과 장아찌를 보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직접 매실을 따오는 정성까지 들여 만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하루 힘들고 바쁘기는 했지만, 싱싱한 매실로 청을 담가서 백일 동안 잘 숙성시키면 그 맛이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올해도 무더운 여름을 나기 위한 준비가 끝이 났습니다. 무더위가 와도 담가놓은 김치와 작년에 담은 매실 장아찌를 먹으며 건강한 여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황매실 쨈이 남아있군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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