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두부와 부추
두 어머니의 첫 기일이 다가오니 문득문득 떠올르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명절이나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는 두부를 만드시곤 하셨다. 어린 작은딸과 친청집에 다녀오려고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고 도착해 보니 그날도 어머니는 손두부를 만드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마트에서 언제든지 살 수 있는 두부를 집에서 만드다고 하니 작은딸이 신이 나서 어머니를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본다.
어머니는 불린 콩과 맷돌을 준비하시고 콩을 곱게 갈아 내신다. 작은딸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맷돌에서 나오는 콩물을 손으로 만져 보기도 하고 입에 넣어 보기도 한다. 비릿한 맛이 나는지 금세 뱉어 버리며 맛없다고 얼굴을 찌푸린다.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지켜보시더니 비린 콩맛이 날 테지 하시곤 웃으신다.
작은딸은 궁금하면 직접 만져보고 먹어보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맷돌 윗구멍에 불린 콩을 한 국자 떠 넣고, 맷돌을 돌리면 크림 같은 콩물이 떨어진다. 다 갈려졌다 싶으면 다시 콩을 한 국자 떠 넣기를 반복하시는 동안 그릇엔 갈아진 콩물이 가득하다. 작은딸은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하고 국자로 불린 콩을 떠 넣고 싶어 한다. 그렇지 해봐야지! 싶어 국자를 손에 들려주니 서툰 손놀림으로 한 국자씩 떠 넣었다. 몇 번하자 싫증이 났는지 국자를 넘겨준다.
예전에 할머니가 쓰시던 방은 부엌에 가마솥이 있어서 콩물을 가마솥에 끓여 두부를 만들었지만, 집을 짓고 나서는 가마솥을 마당 한 편으로 옮겨 그곳에서 콩물을 끓이셨다.
가마솥에서 콩물이 끓으면 큰 그릇을 놓고 자루에 끓인 콩물을 부어 맑은 콩물을 걸러낸다. 콩물과 콩건더기를 분리하는 작업이다. 콩물은 두부를 만들고 건더기는 콩비지가 되는 것이다.
맑은 콩물은 식기 전에 간수 담은 바가지를 한 방향으로 살살 저으며 지나가면 자리마다 몽글몽글 생겨나는 두부가 참 신기하다. 작은딸도 할머니가 요술을 부리시는 줄 알고 내 손을 잡고 넋을 놓고 쳐다본다.
하얀 팝콘이 물속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콩물은 투명해진다. 콩의 단백질이 간수 때문에 응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어머니는 커다란 그릇에 삼발이를 놓고 두부 틀을 놓으신 다음 삼베천을 깔고 두부에서 물을 빼기 위해 준비하신다. 그리곤 손자루바가지에 몽글 거리는 순두부를 떠서 커다란 그릇에 덜어 주신다. 금방 만든 순두부에 간장양념을 살짝 넣어서 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넘어가는 맛이 참 좋았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따끈한 순두부를 가져다 드리면 활짝 웃으시곤 참 맛나게 드셨었는데, 지금은 딸이 어머니에게 같이 먹자고 손을 잡아 끈다.
준비된 틀에 순두부를 넣고 삼베천으로 감싼 다음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으면 저절로 물이 빠진다. 작은딸은 언제 두부가 나오냐며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보기도 한다.
딸아 시간이 지나야 물이 빠진단다. 일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지. 기다리는 시간을 잘 보내야 단단한 두부가 나오니 말이야. 기다려야 하는 시간에 딸과 뒷정리를 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콩을 불리고 갈고 끓이고 응고시켜 마침내 물을 빼주는 시간을 기다리고 나면 두부가 된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두부를 만드시는 과정을 지켜봤던 딸은 아직까지도 그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언니에게 자랑도 한다. 흔하게 마트에 가면 살 수 있는 두부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보았고 가족을 위해 번거롭고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할머니의 정성에 담겨 있는 사랑도 느꼈을 것이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눌러놨던 따끈한 두부는 큼지막하게 잘라 김치에 싸 먹고, 콩비지는 김치를 듬뿍 넣고 찌개를 끓여 먹었던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다.
----시어머니
시골에서 자란 나는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일을 보고 자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엇을 해야 할 때이고 지금쯤은 어떤 일을 준비해야 한 해의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다.
결혼하고 친정집에 가려던 나에게 시어머니는 집 화단에 부추를 심고 싶으시다며 모종이 필요하시다고 한 적이 있었다. 친청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집 뒷 곁에 있는 부추를 한 움큼 뽑아 흙과 함께 봉지에 담아 주셔서 시댁에 가지고 왔다. 짐정리를 하고 부추를 심으려고 찾으니 벌써 시어머님이 들고나가셨단다. 화단에 나가보니 시어머니께서 부추를 한 뿌리씩 열심히 심고 계셨다.
"어머니, 벌써 심으셔요. 제가 짐정리 끝내고 심으려고 했는데요?"
하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갑자기 웃는 며느리가 이상하신지
"왜 웃냐!"
하시며 시어머니도 멋쩍게 웃으신다.
"어머니 부추는 한 뿌리씩 심으면 나중에 잘라먹기 힘들어서 한 움큼씩 뭉텅이로 심어야 좋아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러냐, 난 한뿌리씩 심는 줄 알았다."
하신다. 농사를 직접 지어보시지 않으셨으니 당연히 모르셨을 것이다. 부추는 대가 가늘어서 한 움큼씩 심은 후 윗부분을 잡고 한 번에 잘라야 편하다. 그리고 잘라진 밑동에서 다시 부추가 자라니 한번 심어 놓으면 겨울이 오기까지 잘라먹을 수 있다.
우리는 분가를 하게 됐고 가끔씩 시어머니댁에 가면 스티로폼 박스에 흙을 담아 부추를 한 움큼씩 심어 놓으시곤 네가 알려준 대로 심었다 하신다.
오늘이 시어머니 첫 기일이어서 부처님 앞에 극락왕생 향초를 공양하고 오는 길이다.
두 어머니가 계시던 때처럼 부추로 전을 부치고 두부와 김치를 곁들여 막걸리 한 잔 했던 날들이 빛났었다는 걸 이제야 알아간다. 모습을 볼 수는 없어도 함께 했던 기억이 있음에 감사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