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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쑥 찐빵? 쑥 떡? 아무렴 어때!!

by 데이지

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의 첫 태풍 우딥으로 새벽까지 비가 내리다 그쳤습니다. 아침 창으로 보이는 한라산이 구름을 가득 휘감고 있어 용이 승천할 것 같은 형상입니다.

대기 중에 습기를 가득 머금어 후덥지근한 주말입니다. 무덥기는 가만히 앉아 있으나, 움직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오름이나 둘레길을 걸을까 하다가 쑥떡이 먹고 싶어 걸어서 갔다 오기로 했습니다. 모자를 쓰고, 팔 토시를 하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까지 쓰고 집을 나섰습니다. 큰 도로를 벗어나 골목골목 이야기에 눈을 크게 뜨고, 귀는 쫑긋 기울이고, 코는 활짝 열었습니다. 어느집 텃밭에는 감자꽃이 피고, 호박이 열매를 맺고, 고추가 열리고, 양파를 수확하고, 콩과 옥수수가 자라고 있습니다. 여름을 맞은 밭은 열일 중입니다.


골목길은 집들이 마주보며 담장 넘어 복숭아, 비파, 귤, 오디, 블루베리 등 유혹의 손길을 보냅니다. '나를 지나치지 마세요! 나를 따 먹어요! 하는 아우성에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다가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계신 어르신께 들키고, 마당에서 서성이는 또 다른 어르신의 눈길에 도망가듯 발길을 돌립니다.


쫓기듯 서둘러 그 자리를 뜨고 나니 담장 너머 탐스러운 수국이 발목을 붙들고, 담장 밖까지 마중 나온 붉은 장미가 말을 건네고, 대문 안에 은밀히 피어난 백합과 길가의 하얀 치자 꽃이 눈길을 낚아챕니다. 향에 취해 어질어질, 빙글빙글, 휘청휘청,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치자 꽃이 지고 발그레한 치자 열매가 맺으면 말렸다가 곱게 치자물을 들일 생각에 설렙니다.


골목을 벗어나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로가 나옵니다. 차들은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화려한 봄을 보낸 길가의 벚나무는 버찌를 품고 있습니다. 담쟁이는 단숨에 키 작은 돌담을 삼켜버렸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차를 타고 지나치기만 했던 동네북카페도 천천히 둘러보고게 하고, 주인장의 솜씨가 돋보이는 카페 앞 정원을 만끽하는 즐거움도 느끼게 해 줍니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의 유혹은 되돌아올 때를 위해 잠시 미뤄둡니다.

한두 방울 빗줄기가 바람에 날립니다. 안경을 덮쳐 시야를 가리기는 하지만,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서둘러 쑥떡으로 소문난 집으로 갔습니다. 하나씩 개별 포장이 되어 있어 먹기도 편하고, 냉동실에 넣어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쑥이 많이 들어가 향은 좋고 소는 팥입니다. 밥 먹기 싫을 때 식사 대용으로 먹어도 좋습니다. 가끔씩 걷고 싶거나 피트니스에서 운동하기 싫을 때 떡을 사러 다니기로 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과 골목골목 달라진 모습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떡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시원한 카페라떼와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조용하고 시원한 곳에서 책 한 권을 완독했습니다. 7월 독서모임에서 읽어야 할 책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지만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는지를 되집어 보는 책입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한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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