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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상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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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배 Mar 08. 2023

회상 1

나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나에게 음악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끈이었다. 금융위기를 맞아 사업을 접고 귀향하여 특별한 직장도 없이 어렵게 삶을 이어가던 시기에 밴드 음악을 하던 친구를 만난 것이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친구는 나에게 음악을 함께 하기를 권했고 무료했던 시간을 나는 그들과 함께 열심히 음악을 해보기로 했다. 다들 하고 싶어 하는 악기인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꽉 막힌 부스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두드리는 스틱 소리만 있었다. 그렇게 리듬 연습을 3개월 이상 배운 후 드럼에 앉아보라 하였다. 그때는 정말 벅차오르는 감정이 가슴을 뛰게 하였다. 오른발로 페달을 밟으니 북소리가 가슴을 치고 스틱으로 스네어를 두드리니 심장이 요동을 친다. 상쾌한 쇳소리를 내는 하이엣 심벌은 내 마음을 상쾌하게 울려 주었다. 정말 금방 멋진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첫 무대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동아리 실버 밴드였다. 어르신들 중에 드럼을 하시는 분이 안 계시니 젊은 내가 드럼 파트를 맡은 것이다. 또다시 나는 설렘과 긴장감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나보다 어린 동생이 지도 선생이었는데 지도 선생으로부터 악보를 받아 들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악보에 그려있는 리듬을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 피할 곳도 없다. 천천히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따라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템포가 빨라진다. 마음이 급해져서 자꾸 빠르게 앞서가곤 했다. 시작은 그렇게 했고 날이 갈수록 나도 단원들과 하나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복지관 어르신들 생신 잔치를 하기 위해 무대에서 연주를 했다. 강당에 꽉 들어찬 어르신들 앞에서 우리는 신나는 음악을 연주했다. 이마에는 땀이 흐르지만 땀을 닦을 수도 없다. 하지만 가슴에 밀려오는 행복감으로 나는 울컥했다.      


  그렇게 행복한 음악인이 되어가고 있을 때, 음악을 통해 즐거운 삶을 꿈꾸는 것이 깨어지고 말았다. 함께 하는 연습실 친구들 간에 갈등과 불화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어린 동생들이지만 그들을 정말 좋아했고 온 마음을 열고 그들을 믿었는데, 냉정하게 떠나는 그들에게 받은 상처는 아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상처였다. 그렇게 각자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정들었던 연습실과 드럼을 버리고 말았다. 내가 다시는 밴드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악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런 악기가 색소폰이었다. 일단 색소폰을 중국산으로 구입을 하고 색소폰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아가 배우기 시작했다. 색소폰을 배우니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이다. 노래를 연주하니 재미가 있다. 그런 색소폰에 빠져 하루에 5시간씩 연습을 했다. 입술이 부르트고 아파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을 했다. 지금은 이제 구력이 십여 년이 넘고 보니 전공을 한 프로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내공이 쌓여 관객들에게 인정을 받고 이곳저곳에서 연주 부탁을 받기도 한다.     


  나의 불운의 삶은 사업실패와 불의의 사고로 한 사람의 생명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가뜩이나 사업실패로 힘들어진 가정 형편에 또다시 사고로 인해 직장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가족을 위해 어려운 일을 했던 애들 엄마에게 정말 얼굴 마주하지 못할 만큼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혼자서 덜렁 집안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면 나는 누구일까, 나는 가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아빠이고 남편이었다.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살아야 할 의미가 사라지고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자, 결국 죽음을 생각하는 자신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이러다 정말 나 스스로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나약해지고 우울증 증세로 삶의 의미를 잃어갈 때 음악이라는 끈을 잡고 있었다. 현실을 잊기 위해 나는 온통 하루를 음악과 함께 하며 어려움을 이겨냈고, 이제는 안정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족들과 멋진 모습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부족한 가장이 아닌 당당하고 멋진 남편이고 아버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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