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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것도 병이 되나요?

빨리 치료할수록 덜 부끄러워진다

by 홍시

나는 그냥 좀 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얼굴이 잘 빨개지고 긴장도가 높은 아이였기 때문에 ‘이렇게 태어난 걸 어찌하리.’ 마인드로 체념하며 살아왔다. 교우관계도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늘 소수의 친구들은 있었고, 학생 때까지 심각한 부담으로 느껴지는 상황들은 회피하면 그만이었기에 나의 증상들을 불편하지만 그럭저럭 같이 지낼 만은 한 정도로 치부하였다.


하지만 취업을 하고 K직장인이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더 이상은 내가 직면하기 싫은 상황을 회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학생 때는 MT도 빠질 수 있고, 팀플이 없는 강의를 골라 수강신청을 하는 등 최대한 내 입맛에 맞게 생활을 꾸릴 수 있었지만, 회사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무조건 필참인 워크숍, 때마다 있는 미팅은 허접한 핑계로는 빠질 수 없는 단체생활이었다. 사람들 시선이 주목될 때마다 극강의 수치심과 자괴감을 반복해서 느끼던 나는 조금 더 나은 회사생활을 하기 위해 병원에 갔고, 사회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사회불안장애 치료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치료를 하면서 생각한 건 불편한 증상들에 대해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지고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했다면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맨날 집에만 있었다. 모임, 소개 등의 상황을 극도로 꺼렸고 내 긴장도를 올릴 수 있는 낯설고 새로운 활동은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들 찬란하고 시끄러운 20대를 보내고 있을 때 나는 방구석에 처박혀 잠을 자거나 인터넷만 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 세계가 내 현생 같았다.


다 지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지만 치료를 어렸을 때부터 시작했다면 나의 10대, 20대는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내성적인 내가 갑자기 외향적으로 180도 돌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집에 틀어박혀 자기혐오와 싸우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심하지만 치료를 받기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고 스트레스와 홍조의 강도도 약해졌다. 치료를 거듭할수록 불안과 홍조의 정도가 우하향하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조금 더 빨리 치료를 시작했다면 지금쯤 우하향 곡선의 끝부분에 도달했을 수도 있을 텐데.


문제가 있긴 있는 거 같은데… 이게 병원까지 가야 할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우선은 전문가와 상담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문제가 몇 년 넘게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더더욱. 전문가가 별 문제없다고 하면 땡큐인 거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니 더 땡큐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이 자가진단을 내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아직도 병원이나 심리상담센터를 가야 하나 긴가민가 하다면 이 글에서 설명하는 사회불안장애 정의와 나의 증상을 읽어보고 공감이 되는지 확인해 보길 바란다. 공감이 심히, 많이 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단은 전문가에게 받아야 한다. 내 글은 전문가와 상담 예약을 잡기 위한 단초 정도로 활용해 주길 바란다.


그럼 지금부터 사회불안에 대한 간략한 정의와 함께 내게 나타나는 사회불안장애 증상을 적어보겠다.


사회불안장애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발표를 하는 등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긴장하고 심한 불안을 느끼고, 그런 상황을 회피하게 되면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불안감이 심해지면 공황 발작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불안감을 유발하는 상황들을 회피하면서 사회적 기능이 저하될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고 비판이나 불안에 예민해져 사회불안장애 환자의 1/3은 우울장애가 동반된다고 한다.


얼핏 보면 '주목 받을 때 긴장하는 건 누구나 그런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요점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지나치게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그 정도가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유발하는 정도라는 대목이다. 나처럼 심한 홍조, 땀, 몸 떨림 등의 신체반응까지 갖고 있다면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도한 긴장, 사회적 상황 회피, 비판에 초예민, 게다가 우울증까지.


완전 난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 다음 장까지 읽어보고 전문가와 상담 예약을 잡을지 말지 마지막으로 고민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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