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말하지만 진단은 전문가에게
정신과 문턱이 낮아진 만큼 수면 위로 올라온 우울증 환자들도 많아졌다. 사회불안과 곁들여 우울증도 함께 앓고 있는 나는 다른 우울증 환자들은 어떤 식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종종 그들의 글을 써치해 보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은 우울증 진단을 받을 줄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거 같긴 했는데 그렇다고 질병코드로 분류될 수 있는 질환으로 진단받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남일 같지 않았다. 나 또한 정신과에서 사회불안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불안으로 인한 신체반응만 없었다면 나는 내게 사회불안이 있다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냥 성격 차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얼굴이 빨개지거나 땀이 나는 등 당황한 모습만 안 보일 수 있다면 문제 될 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시도 때도 없는 홍조와 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치료를 받아 보니 비단 신체반응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뿌리 깊은 신념부터 바꿔야 할 정도로 생각하는 방법을 고쳐야 하는 사람이었다.
분명 예전의 나처럼 ‘고작 이 정도 소심함, 부끄러움 가지고 병원을 가는 게 맞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면 그 문제는 더 이상 ‘고작’이라는 가벼운 단어로 치부할 수 없다. 아직도 병원에 갈지 말지 고민된다면 내 사회불안 증상을 참고해 보길 바란다. 사회불안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회사도 다니고 있고 정기적으로 사람들도 만나는 걸 보면 나는 내 사회불안 증상이 극심한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전문가의 소견이 반영되지 않은 100% 제 의견입니다) 이런 나도 병원에 가서 사회불안 진단을 받고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으니 사는 게 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자신의 증상을 ‘고작’이라는 단어에 국한시키지 말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태도를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지금부터는 사회불안장애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나의 증상에 대해 나열해 보겠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극도로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사람 앞에 서서 말할 기회만 주어지면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뛴다. 일대일, 다대일, 다수를 가리지 않는다. 가족, 친구, 익숙해진 동료와는 비교적 덜 긴장한 상태로 대화할 수 있지만 낯선 사람, 친분이 없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상대가 내게 다가오는 모습만 봐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극강의 긴장감에 시달린다. 얼굴을 마주 보기 전부터 고조된 긴장감은 대화를 하면서 극에 치닫고, 결국 얼굴이 더 이상 빨개질 수 없을 정도로 붉어지고 땀이 한 바가지 나고 나서야 내가 자리를 황급히 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나는 다대일 환경에 더 취약했다. 대화를 하는 것 자체도 부담스럽지만 대화하는 나를 누군가 보고 있는 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내가 한 명과 대화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눈앞의 한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석하게도 이 상황이 내게는 일대일이 아닌 다대일 상황으로 느껴진다. 나는 눈앞의 동료에게 이상하게 보일까 봐 노심초사하는 동시에 사무실에 앉아 자기 일을 하는 다른 동료들이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속으로 내가 하는 말,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까 봐 불안해한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신경이 과도하게 나에게 집중돼 있다.
나는 대화할 때 기본적으로 얼굴이 빨개지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손을 벌벌 떤다. 이 세 가지 중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신체반응은 홍조인데 그도 그럴 게 홍조는 어떻게 숨길 수가 없다. 발그레~ 정도가 아니라 두피까지 술톤으로 빨개지기 때문에 마스크, 화장 등으로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내 의견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 공감하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같이 퀄리티 있는 화법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내 신경은 오로지 ‘대화할 때 얼굴이 빨개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과도하게 쏠려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면 내 얼굴은 어김없이 빨개진다. 얼굴이 빨개지면 피부가 미세하게 부푼 느낌(실제로 부푼 건 혈관이겠지만)과 함께 열감이 확 올라오기 때문에 나는 얼굴이 빨개진 걸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챌 수 있다. 그때부터 나의 절망 소나타가 시작되는 것이다. 홍조를 한번 의식하면 대체로 홍조는 더 강하게 발동되며 나는 가라앉을 줄 모르고 더 빨개지는 얼굴 때문에 대화에 통 집중을 하지 못한다. 홍조 때문에 당황한 눈동자를 갈팡질팡, 어수선하게 횡설수설하다가 나는 빠르게 자리를 떠버린다.
나를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게임 속 캐릭터라면 모든 스탯이 마이너스일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외모, 성격, 인기, 학벌, 연봉 등 이렇게까지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인간이 또 있을까.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성장을 해야 하는데 나는 퇴보만을 거듭하며 살아온 거 같았다. 사춘기를 지나 역변한 외모, 목표한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열패감, 대단하지 않은 연봉,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힘들어서 절절매는 이 지긋지긋한 소심함까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웠고, 어렸을 때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은 ‘쟤 옛날에는 괜찮았는데 왜 저렇게 됐대?’ 하고 뒤에서 수군덕거릴 것 같았다. 자기혐오를 사랑한 지 오래되어서 칭찬을 들어도 ‘속으로는 저렇게 생각 안 하면서 인사치레하는 거야.’ 하고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매몰되었다.
(다음 장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