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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회불안 증상(2)

소심함을 모아모아

by 홍시
사회적 상황을 최대한 회피한다.

일단 눈앞에 사람이 있으면 머릿속은 자기혐오, 긴장, 불안, 당황 등 온갖 벅찬 감정들을 소화해 내느라 과부하 걸린 컴퓨터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당연히 눈앞의 상황에 집중을 못하고, 사회적 상황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색하게 앉아있거나 나름 용기 내서 던진 말이 갑분싸를 일으켜 차라리 가만히 있을 걸 하는 후회를 반복한다.


대화할 때 내내 긴장하고 있는 것도 피곤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어색하고 바보 같이 동떨어져 있는 내 모습을 견디는 일이다. 내가 나를 봐도 한심하고 나잇값 못하는 거 같은데 남들이 볼 땐 오죽할까? 또다시 끝없는 자기혐오에 빠지고 스스로에게 이런 지저분한 감상을 갖고 싶지 않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최대한으로 피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어울리고 싶으면서도 그 속에서 무안함, 민망함을 느낄 내 모습을 상상하고 나면 집에 혼자 있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선다. 군중 속 외톨이가 될 내 모습이 싫어서 아무와도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과도하게 불안해하고 걱정한다.

모든 상황에서 불안과 걱정이 너무 많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 속에서 말도 안 되는 저 먼 곳까지 내다보고, 부정적 파국을 예상하고, 체념까지 해버린다.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가능성도 희박한 상황을 시간 날 때마다 상상하며 불안해한다.


한 번은 거래처 분이 나를 좋게 보고 다른 거래처를 소개해준 적이 있었다.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나는 두 사람과 미팅 약속이 잡힌 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얼굴 안 빨개지고 잘 말할 수 있을까?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면 어떡하지? 괜히 소개해준 사람 얼굴에 먹칠하는 건 아닐까? 두 사람 다 미팅 뒤에 나에 대한 평가를 부정적으로 바꾸면 어떡하지? 다른 거래처에도 소문나는 건 아닐까? 결국 거래처들이 다 끊겨서 실적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내년 연협은 망하는 건가?


소개를 받기도 전에 나는 업계에서 매장당하고 회사에서 문책당하는 상상까지 끝마친다. 잘 안 될 것을 기정사실화 하여 현실처럼 받아들인다. 이렇게 망하는 상상, 저렇게 망하는 상상을 시간 날 때마다 하며 스스로를 좀 먹는다. 하지만 내 걱정의 8~90%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부족했던 기억을 계속해서 곱씹는다.

잘한 건 당연한 거고 못한 건 소 되새김질하는 것 마냥 계속 곱씹는다. 거래처와 미팅한 날이라고 해보자. 동료와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음료를 마시며 간단하게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자리라 긴장을 많이 하기도 했고 원래 대화할 때 얼굴이 잘 빨개지는 편이라 이날도 어김없이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홍조는 금세 가라앉았고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질답 모두 생각 이상으로 막힘없이 잘 해냈다. 미팅을 함께 한 동료도 미팅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며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책을 시작한다.


내 생각보다도 잘했던 거 같긴 하지만 이건 회사 일인데 당연히 잘해야지. 그보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 얼굴이 빨개졌었는데 거래처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려나? 살짝 뭐지? 하는 눈빛이었던 거 같은데 그냥 크게 표 내지 않고 넘어가준 거겠지? 저번에 다른 거래처랑 미팅할 때도 이랬는데 이 나이 먹고 아직도 얼굴이 빨개져서 어떡하지? 이러다가 환갑 될 때까지 이러는 건 아니겠지? 지금이야 얼굴이 빨개져도 어찌어찌 먹고살고는 있다만 나이 먹고도 이렇게 당황을 잘하면 일하는 데 제약이 있지 않을까?


하고 나의 부족했던 면들을 계속해서 곱씹는다. 얼굴이 빨개질 때 피부에서 느껴지던 열감, 얼굴이 빨개진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미묘한 시선들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시키며 그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이 상황에 비해 과도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것은 이 모든 것들이 투 머치하다는 것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끝도 없이 튀어 오르는 이 자기 파괴적인 생각들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긴장하고, 불안해 하지만 실제로 내가 만나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가 얼굴이 잘 빨개지고 당황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설사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내가 알아차릴 만큼 무례하게 굴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내가 자기 비하, 자기혐오가 심한 편이긴 하지만 또 막상 따지고 보면 모든 스탯이 마이너스보다는 평범한 축에 끼는 것 같기도 하다. 매일 바닥에 가까운 파국적인 결말을 예상하지만 그런 상황이 일어날 확률이 낮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매일 같이 불안하고, 사람을 만나는 게 힘겹다.


내게도 남은 인생을 불안해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혼자 돌파구를 찾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심리상담센터를 다니며 점차 나아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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