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활, 해외 여행으로 눈을 뜨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서울에서 보고 듣던 것들의 원형이 이거였구나 싶을 때.
영국성공회 마이클 주교의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아 갔던 아테니움 클럽에서 받은 충격이 또한 그랬다. 멤버십의, 사교 클럽 혹은 클럽하우스의 원형 혹은 최고봉이 이것인가.
아테니움 클럽의 외관은 신전을 연상시킨다. 도리스식 기둥이 늘어선 건물의 현관 머리위에 팔라스 아테나 여신이 창을 움켜쥐고 당당하게 서 있다. 지혜와 예술, 학문의 상징. 이 클럽의 성격을 말해준다. 퍼스트 플로어 창문 밖 외관을 장식한 프리즈는 파르테논 신전을 본땄다. 본래 이 건물은 퍼스트 플로어까지만 구상되고 건축되었다.
1824년에 설립된 클럽은 1830년에 지금의 클럽하우스 건물을 완공했다. 건물 내로 들어서면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리셉션이다. 겉옷을 벗어서 걸 수 있는 옷걸이가 벽에 달렸고 무거운 가방 같은 소지품을 보관하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우편물을 받는 회원들도 있는지 우편함도 있다. 회원들이 자기 집 말고 제2의 집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세컨드, 서드 플로어에는 숙박시설도 갖춰져 있다.
정현관 맞은편에는 대형 중앙계단이 시선을 끈다. 넓은 주계단을 오르다가 양쪽으로 갈라져서 돌아 2층으로 오르는. 전형적이지만 아름답다. 계단참에는 대형 벽시계가 걸렸다. 제작 과정에서 실수로 숫자판의 8 자리에도 7을 한 번 더 넣었는데 이게 큰 다툼의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만들자 창피하다, 아니다 이것도 역사고 재미있다 그냥 두자. 결국 그냥 두기로 결정했고 숫자판에 오류가 있는 채로 지금도 걸려 있다. 그때 다투던 회원들은 한참 뒤까지도 서로 다른 방향 계단으로 올랐다던가.
퍼스트 플로어에는 바와 도서관, 회의실과 접견실 등이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대형 책자가 펼쳐져 있는데 노벨상을 수상한 회원들이 기록되어 있다. 51명. 이 클럽 회원 중 노벨상 수상자가 무려 51명이다. 노벨상의 모든 부문에 수상자가 있다고 한다. 엄청난 지적 역사가 쌓인 곳이다.
회원 명단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창립자 명단에서 마이클 패러데이를 발견할 수 있고, 찰스 다윈, 찰스 디킨스, 아서 코난 도일, 에드워드 엘가 등 한국인도 알 만한 이름이 숱하다.
도서관에는 디킨스가 앉아서 주로 책을 읽었던 자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누구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오래 전부터 쌓여온 장서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요즘에 만들어진 클럽의 도서관은 말이야. 책을 껍데기만 만들어서 장식용으로 끼워둔다고 하더라니까? 역사가 오래되고 지적인 공간인 것처럼 흉내만 낸다더라고." 팔순 노인인 주교는 혀를 찼다. 200년 전부터 회원들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자기 작품을 창작했으리라. 곳곳에는 언제든 메모를 할 수 있도록 펜과 잉크병, 메모지가 놓여 있다. 나는 이날 잉크를 찍어서 쓰는 펜촉으로 글씨를 처음 써봤다.
1900년에 설치되었다는 전기 엘리베이터는 그때의 원형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전히 고풍스러웠다. 층을 표시한 버튼은 영화 소품 같았고 내부 마감이 목재로 되어 있었다. 함께 식사에 초대 받은 아일랜드 할배 로이는 "나무라서 이걸 관이라고도 해. 시신 넣는 관 말이야"라며 껄껄 웃었다.
레스토랑에서 내놓는 식사가 정말 훌륭했다. 식사는 무려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먼저 커피룸에서 식전주로 샴페인을 들며 가벼운 환담을 한다. 레스토랑으로 가서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된다. 에피타이저는 생굴, 메인디시는 양고기와 채소를 다져넣고 크루아상으로 덮어서 오븐에 구운 요리가 레드 와인과 함께 나왔다. 후식으로는 레몬 셔벗이 제공됐다. 식사 후에는 커피룸으로 자리를 옮겨서 커피와 초컬릿을 즐겼다. 물론 내가 선택한 메뉴가 이랬다는 것이고, 누구나 원하는 대로 주문할 수 있다.
영국 사람들은 점심을 제대로 안 먹는 줄 알았다고 웃으며 말하니까 주교님은 "사실 하루 한 끼 정도를 이렇게 정찬으로 먹는다"고 했다. 이렇게 제대로 먹는 점심은 디너라고 한다나. 일하는 사람들은 점심을 이렇게 먹기가 어려우니까 간단히 때우고 저녁을 거하게 먹게 된다고. 하긴 세 시간 가까이 먹으니 진짜로 배가 부르기는 했다. 저녁은 거의 먹을 수 없었다.
스쿨밀 이야기는 무슨 오래된 도시괴담인가 팔순 노인들도 할 말이 많았다. "우리 때는 말이야. 양배추 수프를 주는데, 그냥 온 학교에 양배추 삶은 냄새가 진동했어. 맛은 어휴. 먹기는커녕 식당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고. 그 와중에 선생님들은 수프는 밖에서 안쪽으로 떠 먹어야 한다고 엄격하게 가르치기까지 했으니까 가고 싶겠어?" 그 학교도 그랬느냐며 껄껄.
혼밥하는 회원들에게는 2인용 식탁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홀 중앙 긴 테이블에 다른 회원들과 합석해야 한다. 여기서 서로 인사하고 갖가지 대화를 하며 네트워크를 넓힌다. 내가 방문한 날은 테레사 메이 전 총리의 남편이 와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렸다.
회원들이 아무 불편 없이 또 하나의 집처럼 지낼 수 있는 곳. 지적 탐구와 소셜라이징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 곳곳에 식민지를 운영하거나 전쟁이 한창일 때는 해외로 근무 나간 친구가 돌아올 때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곳. 내 누추한 가난을 들키지 않고 손님을 초대할 수 있는 곳.
때로는 가벼운 놀이와 운동 공간. 이 클럽하우스에는 당구장이 있(었?)다고 했다. 옆에 있는 RAC(로열오토모빌클럽)에는 아름다운 수영장과 터키식 사우나가 있다. 수영장은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되는데, 여왕이 와서 탄 적도 있다나. 클럽이 운영하는 회원 전용 골프장도 물론 있다. 그런 곳에 있는 클럽하우스가 진짜 원형이겠다.
돈이 있다고 아무나 회원이 될 수도 없다. 이 클럽은 회원 12명이 동의해야 가입 심사라도 받을 수 있다. 웨이팅 리스트에 올라가도 상당한 기간동안 기다려야 한다고. 심지어 부적절한 후보자를 추천하는 경우 기존 회원의 자격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했다. 여성이 정식으로 회원이 될 수 있게 된 것도 20여 년 밖에 안 됐다.
사회적 계급을 강화하는 수단이자 차별의 최전선이라는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여성도 유색인종도 극소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럽에 쌓인 그 엄청난 지적 유산,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역사, 건축과 인테리어 자체가 보여주는 수준은 감탄을 자아냈다. 전 세계를 착취하는 제국의 수도였기에 가능했겠으나.
나는 12명의 동의를 받아서 이 클럽의 회원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