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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Dec 08. 2024

역대급 글로벌 생일파티 막전막후

디데이. 캔싱턴 첼시 아이들의 기상천외 흥미진진 생일파티https://brunch.co.kr/@ea77230899864d4/62에 초대 받아온 핵인싸 아이의 생일날이다.


가장 최근 생일파티에서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안전하게 태우고 다녀야 한다고 파티버스를 대절하고 대저택에서 하룻밤을 자기도 했었다. 자 우리는 어떻게 한다?


계획은 이러하다

아이와 친한 여자 아이들만 6명 초대한다. 슬립오버는 불가. 원베드룸 그라운드 플로어 플랏에서는 무리다.


배터시파워스테이션 한국 마트에 가서 한국 간식을 산다. 탁구장을 빌려서 논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예쁘게 되어 있으니 사진도 좀 찍고 바람을 쐰다.


택시로 캔싱턴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이동한다. 아이 친구들과 부모들까지 함께 하는 만찬을 즐긴다.


계획대로 순조롭게만 되면 좋겠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원래, 더구나 이방인이 런던에서 벌이는 일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다.


장소 예약부터 왜 어렵나

배터시파워스테이션에 탁구장이 있다. 흔한 동네 탁구장이 아니다. 탁구를 테마로 한 실내 놀이시설이다. 피자를 비롯한 음식물을 제공하고 술도 판다. 여기서 생일 파티 연말 파티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https://www.bouncepingpong.com/ 


마침 보니 아이들 파티 패키지가 있다. 이용 시간 1시간 55분. 1인당 25파운드. https://www.bouncepingpong.com/kids-parties/ 


이메일로 문의를 하고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제를 위한 링크를 주겠다더니 감감무소식. 이메일을 보내고 또 보내도 열어보지도 않는다. 생일파티 이틀 전에 배터시로 처들어갔다. 이러다가 큰일나겠다 싶어서.


매니저 L은 미안하다고, 도와주겠다고 하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 "미안하지만 아이들 생일파티는 주말엔 오전 11시와 오후 1시, 두 타임슬롯만 있어. 근데 너는 오후 2시를 원한다고 했잖아." 그래 맞아 L. 난 이미 딸 친구들을 다 초대했다고. 너네가 된다고 했잖아. 이메일 볼래?


내가 주고 받은 이메일들을 보여주니 L이 미간을 찌푸린다. "음 이거 정말 이상하네. 내가 본사에 직접 연락할게. 이렇게 무책임하게 대응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미안해."


L 고마워. 근데 본사 연락을 내가 다시 기다리기가 너무 불안해. 믿을 수 없고 시간도 없고. 일단 토요일에 너네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지부터 확답을 해줘.


"다시 얘기하지만 오후 2시부터 아이들 생일파티를 할 방법이 없어. 이미 오후 1시 시작하는 팀이 있어. 게임 구루 직원은 그 팀에 붙어야 하고. 탁구대도 풀 부킹이야. 연말 주말이잖아. 파티들이 많다고." 아니 이런 사소한 예약마저 왜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런던살이 진짜 피곤하다, 생각하는 찰나 L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니다. 예약했다가 취소한 탁구대가 하나 있네. 딱 하나 있어. 오후 2시. 일반 단체 이용으로 예약할래?" 그래 L 뭐라도 하자. 음식이나 음료는 그럼 따로 주문해야 하는 거구나. "ㅇㅇ 미안하지만 그렇게 해 줘. 게임 구루 직원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현재로서는."


게임구루는 당일에 현장에서 어떻게든 동원해보자는 생각이다. 안 되면 내가 몸으로 때운다. 일단 탁구장 이용료만 90파운드.


한식당https://www.millenniumhotels.com/en/london/millennium-gloucester-hotel-london-kensington/korean-grill-kensington은 세 식구가 한 차례 가서 시식을 한 뒤 예약했다. 단체 예약은 이메일로 받았다. 다행히 한국인들 업무 처리는 깔끔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생일파티 당일

날씨부터 심상치 않다. 비바람이 거세다. 심지어 곳곳에 홍수경보가 내렸다.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들려오는 계엄과 대통령 탄핵 표결 소식에 뒤숭숭하다. 서울과 런던 양쪽 다 폭풍우가 몰아친다. 그래도 할 일을 하자.


11살이 된 따님은 대흥분 상태. 전날 밤부터 친구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챙겨뒀다. 우리 선택은? 한국에서 싸들고 온 메이드인코리아 문구류 대방출. 한국산 문구는 디자인이 예쁘고 만듦새가 튼튼하고 사용감도 훌륭해서 여기 아이들도 좋아한다.


그리고 귀마개? 귀덮개? 귀도리도 하나씩 주자. 이제 본격 겨울이 시작되니까. 예쁜 바구니를 살까 하다가 그냥 쇼핑백으로 대체. 마침 연말이 다가오니까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는 화려한 걸로.


호스트가 늦으면 안 된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배터시로 간다. 긴 하루가 될 거니까 체력을 아끼자. 나는 양 손에 아이들 나눠줄 선물 쇼핑백을 잔뜩 들고 배낭까지 맸다. 나도 살아야겠다. 볼트로 차량을 호출한다. 캔싱턴에서 배터시까지 16.7파운드.


탁구장 이용 시간 30분 전에 약속을 잡았고 우리는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배터시에 도착했다.


약속 장소에서 대기하는데 평상시엔 여유롭던 배터시발전소도 터져나갈 것 같다. https://batterseapowerstation.co.uk/ 사람이 너무너무 많다. 차 갖고 오는 사람들 주차하기 힘들겠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난리. 주차공간이 없다거나 오는 길이 너무 막힌다거나. 제 시간에 도착하는 사람이 없다.


온 친구들을 몰고 한국 마트 가서 간식거리를 산다. 이곳 아이들도 이젠 꼬깔콘이나 꼬북칩에 맛을 들였다. 한국 스낵을 꽤 좋아한다. https://maps.app.goo.gl/ThyBfEoyo5pWa5cj6

2시 조금 넘어서 탁구장 입장. 풀부킹이라더니 과연 도때기 시장이 따로 없다. 다행히 10살 11살 여자 아이들은 꺄르륵 거리면서 어울린다. 공을 제대로 치는 친구는 거의 없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재미 있으면 그만이다.

피자와 감튀를 시키고 음료를 주문해서 먹인다. 76파운드. 음식도 먹을 만하네. 그래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지나가는 게임구루를 잡아다가 아이들 탁구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텐션 좋은 친구가 의외로 흔쾌히 해주겠다더니 10분간 아이들 서브 넣는 거 똑딱똑딱 가르쳐주다 가버린다. 쳇.

지루해질 수 있다. 이럴 땐 아빠 깨방정이 필요하다. 탁구공을 던져주거나 같이 탁구를 치는 건 기본. 그냥 치는 게 아니라 슬랩스틱을 좀 넣는다. 심지어 피자판을 들고 공을 치기 시작한다. 일단 내가 스스로 신나서 좋다.


1시간 반 만에 탁구장에서 나온다. 여자 아이들은 잠시 화장품 가게를 한바퀴 돈다. 못 말린다 진짜.


아이들이 가져온 딸 생일선물까지 내가 챙겨야 할 짐이 더 늘었다.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까지 그걸 다 들고 따라다닐 수가 없어서 나는 파리바게트 앞에서 대기한다. https://parisbaguette.uk/location/battersea-power-station/ 한국 파리바게트 맞다. 미리 주문해둔 아이 생일 케이크도 픽업한다. 평범한 스트로베리쉬폰 케이크가 57파운드.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한 발전소 앞마당에 나가서 사진도 좀 찍고 할랬더니...비바람에 혼비백산. 안 되겠다. 식당으로 가자. 길도 막힐테니 시간을 넉넉잡아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택시가 안 잡힌다. 가까스로 Gett과 우버로 차 두 대를 동시에 호출한다. 9명이 배터시에서 캔싱턴으로 이동. 역시 블랙캡 운임은 우버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사악하다.


대망의 한식 생일파티. 어른들도 예상 외로 많이 왔다. 인도, 바레인, 영국, 태국, 호주, 그리고 한국. 국적도 다양하다. 비바람을 뚫고 와줘서 고맙다. 게다가 이방인이 굴러들어와서 1년동안 받은 것들이 많으니 갚는 자리다.


"백수 너 괜찮니?" 생일날 부모가 고생하는 걸 서로 아니까 우리 부부 안부를 묻는다. (휘청이며) "아직 살아는 있어. 다행이지?" 일동 웃음. "너 맥주 필요해 보인다!" "노노. 쏘주 플리즈."


나는 귀국 일정을 공개한다. "나는 다음달에 돌아가야 해. 아내와 딸은 조금 더 남아 있을 거야." 눈물 닦는 시늉을 하면서 손으로는 예쓰!하며 결혼반지를 빼내려 하자 다들 박장대소.


어른들 테이블에서는 고기를 굽고 소주와 복분자를 마셔가며 즐겁게 어울렸다. 아이들은 비빔밥과 잡채와 전과 쌈밥 같은 것들을 고루 시켜서 먹도록 했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어른들까지 다 같이 생일축하 노래. 볼이 빨개진 아이가 행복해한다. 그래 그러면 되었다.

케이크 맛까지 모두가 대만족. 한국 드라마 좋아하는 바레인 엄마는 "꿈 같았다"고 해준다. 고마운 일이다.


선물을 들려서 손님들을 보내고 우리 가족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와서는 찾아와준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이 우리 아이 생일 중 역대 최고였어.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

호주에서 온 과자, 손수 짠 목도리, 인형과 쿠션, 옷, 목걸이, 스킨케어 제품들. 받은 선물이 한 보따리다.

이어지는 우리 가족의 조촐한 뒤풀이. 스파클링 와인과 한국 과자로 남은 생일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즐겨준다. 아이는 가는 생일을 슬퍼하면서 자정까지 버티겠다는데...미안하다 딸. 아빠는 틀렸어. 여기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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