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코톨드 갤러리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슬프다기보다는 멍한 느낌. 뭔가 좋은 것,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치면 아버지와 더이상 함께 즐기고 이야기 나눌 수 없다는 막막한 느낌이 든다. 상실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막막하구나.
복직을 앞두고 런던 생활을 정리해야 한다. 터키 항공을 타고 이스탄불에서 경유를 해가며 런던으로 돌아왔다. 도어투도어로 거의 24시간이 걸리는 대장정. 피곤하다. 몹시 피곤하다. 시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세 식구가 거의 이틀동안 동면하다시피 잤다.
이제 내게 남은 런던 생활은 고작 열흘 남짓. 무엇을 할 것인가. 마냥 흥이 나지도 대단히 의욕이 샘솟지도 않는 가운데, 무엇을 하며 마지막 시간을 채울 것인가.
아직 안 해본 것부터 좀 하자. 첫 선택은 코톨드 갤러리였다.
코톨드 갤러리는 서머셋 하우스에 자리한 미술관이다. 규모가 대단히 크지는 않지만 중세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근현대 영국 미술 작품까지 두루 갖췄다. 입장료는 성인 10파운드. 이날 이때까지 여기에 한번도 안 간 이유다. 런던에선 드문 유료 미술관. 그래도 방문할 가치는 있다. https://courtauld.ac.uk/gallery
지금은 끌로드 모네가 그린 런던 풍경화만 모은 특별전도 열리고 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런던의 겨울, 짙은 안개에 싸인 탬즈 강변 풍경이 나열되어 있다. https://virtualtour.courtauld.ac.uk/monet-and-london/
1월 19일까지만 전시된다. 미술관 입장료와 별도로 입장료를 내야 하는 모양인데, 어차피 19일 마지막 전시까지 모두 매진이다. 시간과 돈이 있어도 볼 수 없다.
이 전시를 너무너무 보고 싶다면 유일한 방법은 기존 회원의 도움을 받는 것 뿐이다. 코톨드 프렌즈인 친구에게 타임슬롯을 잡아달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 https://courtauld.ac.uk/join-and-support/friends/
건물 내 공간을 연결하는 계단의 맑고 진한 파란색 난간으로 장식된 계단이 인상적이다. 3층 계단참에는 큰 작품 한 점이 벽면 가득 걸려서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전시실 출입문 문고리는 대단히 장식적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유료 미술관이라 내부는 여유가 있다. 어떤 유명 작품 앞에건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파리 오르세 같은 곳에서 작품보다 사람 구경만 잔뜩 한 경험에 질렸다면 특히 코톨드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마네의 A Bar at the Folies Berg ère 앞도 여유롭다. 어딘가 공허한 여성 바텐더의 얼굴, 술 한잔을 더 부탁하는 남자의 얼굴, 그리고 포커스 아웃된 채 거울에 비친 취한 사람들, 바에 놓인 맥주와 압생트와 기타 등등 술병들 그리고 쌓여 있는 귤. 가까이서 멀리서 한참을 들여다봐도 좋다.
그밖에도 쇠라, 모네, 고흐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다.
특히 점묘화는 멀리서 전체를 감상한 뒤 가까이 들어가서 세부를 보고, 다시 두세 걸음 물러나서 작품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겨울철 소머셋하우스 마당에는 스케이트장이 들어선다. 아직 영업 중.
찬란한 런던의 겨울밤이 간다. 귀국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