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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 읽기

허상을 읽는 기분

by 아피

요즘에는 종이책도 책이지만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창구도 참 많다. 각 학교마다 연결되어 있는 전자도서관도 있고 지역 도서관에 연결된 전자도서관도 대출증만 만들면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자책 구독 플랫폼도 많아서 나도 고등학생 때는 통신사 제휴로 한 달에 한 번씩 밀리의 서재를 구독해서 필요한 자료들을 읽었다. 그렇지만 나는 뭔가 전자책은 책을 읽는 기분이 잘 안 나서 잘 안 읽게 되고 꼭 종이로 만든 책을 읽고 싶다.


똑같은 글씨를 읽어도 화면 너머로 보는 것보다 종이에 있는 걸 읽는 게 더 집중도 잘 된다. 그리고 나는 화면으로 보고 있으면 괜히 인터넷 하는 기분이라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잘 안 난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어도 종이로 읽는 것과 이북으로 읽었을 때 이해하는 정도도 좀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이북을 읽어야 하는 환경에서는 이북을 읽지만 절대 이북을 사지는 않는다. 옛날에 한번 급해서 이북을 산적이 있었는데 그 책은 있는 것도 까먹고 지금 데이터베이스에 고이 잠들어 있다.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뭔가 이북은 다시 되팔거나 그거를 주변인과 돌려보거나 할 수 있는 물성이 없기 때문에 더 꺼리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이전부터 들고 넘기고 줄을 긋는 등 책을 물리적으로 다루는 것을 좋아한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질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으니 이북은 무언가 차갑고 매정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이북을 읽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그렇게 느낀다.


반년정도 전에 고등학교 선생님을 뵈러 간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화면을 통해 읽는 것이었다. 어쩌다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 경위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선생님께서 자기는 논문 같이 데이터로 다운로드하는 것은 모두 종이에 인쇄해서 본다고 하셨다. 그렇게 읽는 게 더 좋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나도 그 말에 공감하면서 고등학생 때 항상 학교 프린터기로 논문을 인쇄해 읽었다고 이야기하면서 잠시 종이로 읽기에 대해서 말을 나눴던 것 같다. 그래서 나 말고도 화면 너머로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살짝 아날로그 한 것들을 좋아하는 듯하다. 손으로 직접 필기하는 걸 좋아하고 일기도 쓰고 다이어리와 스케쥴러도 따로 만들어 쓴다. 최근에는 연필에 꽂혀서 연필로 필기하는 경우가 많고 필사도 연필로 하고 있다. 아이패드도 있고 화면에 필기할 수 있는 펜도 있지만 직접 쓰는 것만큼 몰입감이 좋은 것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책도 종이로 된 걸 선호하게 된 듯하다. 이북은 허상을 읽는 기분이라서...


정신없는 몇 주를 지내고 명절까지 겹치면서 재미없는 책 이후로 책을 읽는 진도가 거의 나가지 못하고 있다. 브런치도 굉장히 오랜만에 쓰는 듯하다. 금방 책을 읽고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브런치북 연재를 힘내 보도록 하겠다. 오늘 맥락 없고 기운 떨어지는 글을 쓴 걸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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