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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by 아피

한 1년 정도 전 즈음에 인간실격을 한번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완독 하지 못하고 주인공 요조가 처음으로 자살시도 하는 장면에서 자살 시도의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어? 갑자기 왜 자살하지?' 해버리는 바람에 내가 책을 따라가지 못해서 다시 덮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덮었던 책을 다시 펼쳐보기 위해서 인간실격을 꺼내 보았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요조의 정신적인 위태로움이 잘 드러나는데 그런 점이 너무 잘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 점이 싫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해도 돼서 요조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지만 뭐랄까... 좀 지나칠 정도로 사람이 취약하다는 느낌도 버릴 수 없었다. 아마도 유년시절에 겪었던 정신적 트라우마가 크게 미친것 같은데 책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추측하건대 여자 어른들에 의해서 성적으로 학대를 받은 것 같다. 그래서 요조는 일부로 자신의 어두운 면을 숨기고 익살스러운 척하고 다니는데 그런 모습조차 몇몇 사람들에게 간파당하면 굉장히 침울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나는 요조의 해설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왜인지 요조가 하는 해설에 변명, 거짓과 비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다 보면 종종 괄호 사이에 부연을 길게 덧붙이는걸 볼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지금 이 사람이 무언가 말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기 싫어서 괜히 거짓을 섞어 변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내가 보통 그런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쓰고 자는데 일기를 쓰면서 오늘 나에게 있었던 일, 감정 같은 걸 쓰다 보면 괜히 나조차 나를 속이거나 합리화하고 싶어서 괄호를 달아두고 길게 길게 변명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혹시나 요조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특히, 이 책이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성격을 많이 담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가 숨기고 싶은 모습을 괜히 숨기는 건가 싶기도 했다.


인간실격 책 속에 나오는 마지막 장인 '직소'부분에서는 뜬금없이 예수님과 열두 제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왜 갑자기 기독교 내용이 나오지? 이게 본문과 무슨 상관이 있는 내용이지? 나만 이해가 안 가나? 하고 생각했는데 책 뒤에 달린 해설을 보고 나서 이 내용이 본문과 상관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실격 이전에 다자이 오사무가 쓴 단편소설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요조가 참으로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점인데 자살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렇게 생각했다. 요조는 자살을 하려고 마음먹을 때 혼자 죽을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랑 같이 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설령 상대의 처지도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그 사람이랑 같이 죽어야지 하고 마음먹는 건 좀 이상했다. 그리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남에게 술값을 내게 한다거나 주변 사람 생각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듯한 모습에서 굉장히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또 개인적으로 느낀 건 요조가 친구와 흥청망청 놀기 시작한 부분에서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생각났다는 점이다. 데미안의 싱클레어도 청년기가 되어가던 시절에 술집 단골이 되는 등 퇴폐적인 모습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요조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삶을 보낸다. 그래서 이게 그 시대 청년들의 동서를 불문한 특징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우연이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이름만 요조일뿐 다자이 오사무의 삶에 대해서 읽는 기분이었는데 그의 기행이 보기엔 좀 극단적이고 이상해 보일지라도 내면과 살아온 삶을 따라가다 보면 또 왜 그러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나도 내면이 사사롭고 복잡한 편이어서 요조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가끔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아예 두둔하기에는 좀 어려운 면들이 많았다. 그리고 책이 나온 시기를 생각해 보면 왜 일본인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근현대 일본사를 배우고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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