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친정 엄마 06화

엄마와의 마지막 샤워

나는 엄마의 언니, 친구, 옆집 아줌마였다.

by 주현정

“우리 언니, 참 좋다.”

엄마가 몸을 닦아주던 나에게 한 말이었다.“언니? 그래. 그러니까 언니 말 좀 잘 들어, 동생.”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병실이 답답한지 계속 집에 가자고 보채는 통에 한 말이었다. “우리 제발 집에 가자. 언니. 응?” 가슴이 아렸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꾹 눌러야 했다. “오늘 선생님 오시면 여쭤보자, 동생.”

“아줌마, 나는 왜 밥 안 줘? 저희들만 맛있는 거 먹고, 나는 언제 밥 줘?”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음식을 먹으면 다 토해내는 통에, 어느 순간부터 음식 섭취가 금지되었다. 목의 편도가 비대해져 물조차 삼키기 어려웠고, 결국 영양분은 호스를 통해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야속하게도 식사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엄마는 그때마다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몇 주를 그렇게 굶다시피 하셨으니, 얼마나 먹고 싶으셨을까. “우리 퇴원하면 엄마 좋아하는 대게 먹으러 가자. 내가 쏜다.” 웃으며 나누었던 약속도 무색할 만큼, 몸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몸뿐 아니라 정신도 함께 무너졌다.

매일 아침 나를 만나는 엄마는 나를 ‘딸’이 아닌 ‘언니’, ‘동생’, ‘동네 아줌마’로 불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가도 “나, 엄마 둘째 딸 정아야. 잘 봐.” 그렇게 속상한 마음이 튀어나왔다.

엄마의 몸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샤워는 큰 과제가 되었다. 오랜 항암 치료로 듬성듬성 남은 머리카락은 엉켜서 빗을 수조차 없었다. 온몸에는 주사 바늘과 소변 줄이 연결되어 있어, 일반적인 샤워는 불가능했다. 나는 병원 샤워실을 미리 살펴보고,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엄마와 단둘이 들어갔다.

우선 머리를 정리해야 했다. “짧은 건 싫어.” 항암을 시작하고 머리카락이 한 줌씩 빠질 때도 긴 머리를 붙잡고 있던 엄마였다. 그 마음을 알기에 단발을 선택했다. 미용사는 아니지만, 그럴듯하게 잘린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엄마의 단발머리는 예뻤다. 평생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보다 더 큰 문제는 몸이었다. 엄마는 힘을 쓰지 못해 자꾸 의자에서 미끄러졌고, 바닥은 물로 흥건했다. ‘미끄러지지 않게, 주삿바늘 감염 안 되게, 소변 줄도 조심해야 해.’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두 다리로 엄마를 감싸듯 안고, 몸을 최대한 돌려가며 씻겼다. 살이 다 빠져 뼈만 남은 몸인데도, 쳐지는 엄마의 몸은 무거웠다. 그렇게 우리 둘만의, 처음이자 마지막 샤워가 끝났다.

“엄마 머리 내가 잘랐어. 진짜 잘 잘랐어. 나, 아무래도 미용실 해야 할까 봐.” 없는 정신에도 엄마는 웃으셨다. 그 웃음이, 그렇게도 좋았다. 머리를 빗기고 로션을 발랐다. “우리 엄마, 참 예쁘다. 이렇게 단발이 잘 어울리는데 왜 평생 묶고만 다녔어? 상쾌하지? 시원하겠다. 내가 또 씻겨줄게.” 끝내 지키지 못한 그 허망한 약속을, 나는 했었다.

“이제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에 희미하던 희망의 끈도 끊어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곁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퇴원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고, 이제는 ‘그날’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를 그날을.

살아 있는 엄마를 곁에 두고 장례 절차를 준비해야 했다. 아이러니했고, 불효 같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삼형제가 돌아가며 엄마 곁을 지켰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 속, 죽어가는 엄마 옆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냄새조차 미안했고, 물 한 모금조차 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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