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2일, 9시 30분
기다리던, 그래서 한없이 미안하기만 했던 그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 겨울의 첫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경남에 사는 우리 딸들은 '눈!'이라는 말에 벌떡 일어났다. 이번 겨울,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첫눈을 맞으며, 행복하다며 신나게 놀았다.
둘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방학 중인 첫째와 함께 엄마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 엄마에게로 가는 해안도로는 아침햇살을 받아 유난히 눈부셨다. 병원에 도착해 1층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딸아이의 빵 하나를 샀다. 그리고 12층 호스피스 병동으로 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병동 입구의 작은 꽃밭과 어항 속 물고기들이 우리를 반겼다.
문 밖에서부터 엄마가 보였다. 바깥은 추웠지만, 병실 안 공기는 따뜻했다. "엄마, 정아 왔어!" 하고 부르자, 엄마는 떠지지 않던 눈을 번쩍 떴고, 나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 따라 우리 엄마 더 예쁘네. 얼굴도 하얗고."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더 이상 엄마의 숨결을 느낄 수 없었다.
호흡이 잠시 어려운 걸까, 간호사를 불렀다. 손이 떨렸다. 종종 이런 일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 둥실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간호사의 다급한 호출에 의사가 왔고, 나는 처음 겪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았다.
"오전 9시 30분, 성인자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감정. 눈앞에 여전히 누워 있는 엄마. 방금까지 눈을 뜨고 나를 반겨주던 엄마가 이제 숨을 쉬지 않는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엄마, 정아 왔어. 린이랑. 엄마." 한동안 정신없이 울었다. 목이 다 쉬도록 통곡했다. 간호사와 의사가 오갔다. 정신을 차리니 딸 품에 안겨 있었다. 이렇게 우는 엄마를 처음 본 큰딸은 나를 토닥이며 함께 울고 있었다. 그 작은 품에서 나는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한참을 울다, 불현듯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청각은 마지막까지 열려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세요. "눈물을 닦고,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말을 쏟아냈다. "우리 엄마 오늘 참 예쁘다. 피부도 좋고, 주름도 없네. 누가 70살로 알겠어? 내가 우리 엄마 닮아서 이렇게 예쁘잖아. 우리 딸들을 많이 사랑해줘서 고마웠어. 항상 내 편 되어줘서 고마웠어. 어릴 때 많이 업어줘서 고마웠어. 엄마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잘 컸어. 사랑해. 그동안 많이많이 고마웠어, 엄마." 눈에서도, 코에서도, 슬픔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점점 차가워졌다. '이렇게 금방 차가워지다니…'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욕창 밴드와 주사바늘로 상처 난 엄마의 몸을 닦았다.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구석구석 닦고, 기저귀를 입고 있던 엄마를 차마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우리는 1층 편의점에서 새 팬티를 샀다. 딸아이가 할머니가 좋아할 것 같다며 고른 보라색 면 팬티를 갈아 입혔다.
"하늘에서 새 친구들 만날 텐데, 예쁜 팬티 입고 가, 엄마."
마지막 준비를 마치고, 언니와 동생이 빨리 도착하길 빌었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너무 울었는지 기운 없이 앉아 있으니, 차 안에서 딸과 나누던 노래가 떠올랐다. 딸아이의 목소리가 너무 예뻐 할머니에게도 들려주어야지 했었는데, 이렇게 늦어질 줄은 차마 몰랐다. 차가워지는 엄마를 느끼며,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그 삶 속에서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작은 목소리가 더해졌다. 큰딸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따뜻한 공기가 차가워진 할머니를 감싸는 듯했다. 우리는 다 차가워진 할머니 앞에서 노래하고, 인사하고, 추억을 이야기했다. 엄마가 다 듣고 있다고, 우리의 노랫소리를 다 듣고 있을 거라 믿었다.
야속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제발 빨리 와, 제발." 마음속으로 애원했다. 12시가 되었고, 장례식장 관계자들이 올라왔다. 시신을 병실에 오래 둘 수 없다고 했다. 이제 도착하는 가족들은 장례식장에서 만나야 한다고.
엄마의 얼굴을 흰 천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차마 똑바로 보기조차 힘든 모습이었다. 다시 목 놓아 울었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감쌌다. 남편이었다. "왜 이제 왔어? 엄마 얼굴도 못 보고, 예쁘게 하고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남편 품에서 한참을 더 울었다. 그의 어깨가 다 젖도록.
따뜻했던 커피는 엄마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시지 못했다. 화장실에 쏟았다. 병실을 정리하고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니, 언니와 동생이 도착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었다. 병원 장례식장이 아닌, 엄마의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한 우리는 차가운 엄마와 함께, 엄마의 마지막 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