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엔 안 온 사람이, 장례식엔 온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엄마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이것저것 고르고, 계산하고, 준비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부고장을 작성해 지인들에게 보내고, 빌린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주문한 음식들이 도착했고, 도우미 아주머니들은 분주하게 상을 차릴 준비를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고, 화환도 한가득 도착했다. 가득 채워지는 꽃들이 엄마가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켜주는 것 같았다. 올해로 칠순을 맞으셨던 엄마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화려한 잔치를 치르듯 떠나셨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까지 와주었다. 흔히들 “결혼식엔 안 온 사람이 생각나고, 장례식엔 온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멀리서 한 달음에 달려와 준 이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원래 많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 아니어서 연락할 이가 많지 않았다. 그저 연락하지 않으면 화를 낼 것 같은 친구들에게만 알렸다. 한 명 한 명이 천군만마처럼 든든하고 고마웠다.
엄마의 영정 사진 앞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흘러나왔다. 사진 속 웃고 있는 엄마 앞에서 나는 다시 아이가 된 듯했다. “우리 엄마 뭐 좋아하시지?” 차려진 음식들 중 엄마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 위에 젓가락을 올렸다. 술 한 잔을 올리고, 향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며 가족들과 엄마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엄마 좋아하는 아들도, 언니도, 정아도 한자리에 다 모였네. 우리 엄마 이번에 칠순인데, 칠순 잔치를 참 크게 하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와주고, 꽃도 많이 받았네. 좋겠다, 우리 엄마.”
향을 꽂으며, 손님들과 맞절을 하며 눈물이 흘렀다.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의 눈물에 또 울었다. 그렇게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죄스러웠지만, 어김없이 배가 고팠고, 내 아이들을 챙겨야 했다. 그렇게 나는 또 내 삶을 살아내겠지.
발인 날, 관에 들어가는 엄마를 바라봐야 했다. 아무리 봐도 익숙해질 수 없는 장면. 언니가 골라준 고운 분홍색 옷을 입고, 곱게 눈을 감은 채 누워 계신 엄마. 몇 주 동안 드시지 못해 앙상해진 몸이었지만, 차려 입은 모습은 여전히 고왔다. 환하게 웃으며 금방이라도 일어나 우리에게 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불에 타고 있는 엄마를 기다리며, 곱게 가루가 되어 한 줌 재로 변한 엄마의 뼈를 직접 확인해야 했다. 관 속에 누워 계신 엄마를 보며 울고, 불길 속의 엄마를 기다리며 울고, 결국 한 줌의 재가 된 엄마를 보며 또 울었다. 그렇게 엄마는 작디작은 유골함 속에 영원히 잠들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났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참 열심히 살았던 성 인자. 우리 엄마의 인생이 그렇게 끝났다.
“엄마, 엄마 자식들 너무 잘 살아가고 있으니 잘 지켜봐줘. 하늘에서 다시 만날 때 꼭 기억해줘. 많이 늙어서 만나겠지만 알아봐 줄 거지? 엄마가 혹시 나를 못 알아볼까 봐 걱정되지만, 괜찮아. 내가 한눈에 엄마를 찾아낼 거니까. 그렇게 다시 만나는 날, 우리 손 꼭 잡고 못다 한 이야기 실컷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