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친정 엄마 12화

그렇게나마, 엄마를 기억한다.

답장하지 못한 문자들

by 주현정

나는 엄마를 떠나보냈다. 그 후로 매일 조금씩, 엄마의 흔적을 되짚으며 살아간다. 맞춤법 틀린 문자들, 오타 가득한 안부 속에 담긴 진심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 지 126일.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엄마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몹시 그리운 날이면 나는 핸드폰 속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는다. 그렇게라도, 나는 엄마를 느낀다.

며칠 전, 딸아이가 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울엄마’라고 저장된 문자를 열었다. 간간이 들여다보긴 했지만, 대낮, 그것도 놀이터 벤치에서 불쑥 마주한 엄마의 문자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금세 눈앞이 흐려졌다.

엄마가 보내온 수많은 메시지에 나는 대부분 답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답을 안 했을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옆에서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먹던 남편에게 물었다. “전화했겠지. 여보, 원래 그러잖아. 문자 귀찮아서 전화하잖아.” 남편이 다정하게 답했다. “그랬겠지? 전화했겠지? 엄마 혼자 문자만 보내진 않았겠지…” “엄마, 또 울어요?” 큰딸이 내 눈물을 보고 물었다. “응,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래. 하늘에 잘 계실 텐데… 오늘따라 눈물이 나네.”

엄마의 맞춤법도 틀린 문자들. 그중에서도 작년 엄마 생신 때 주고받은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병원에서 항암 치료 중이던 엄마를 위해, 엄마가 좋아하던 소소한 것들을 모아 한 박스 가득 담아 보냈다. 음식을 잘 드시지 못했기에 “이건 맛있다.” 하셨던 것들을 기억해 모조리 담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엄마 생신 선물’이라는 글과 함께. “고마워. 우리 딸뿐이네. 시간 지나면 다 갚아줄게. 조금…”

엄마는 평생 100원도 아끼며 사셨다. 동네에서 소문난 구두쇠였던 엄마는 그렇게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떠나셨다. 어쩌면, 갚아주겠다던 그 말처럼, 시간 지나서 보답을 해 준 걸까. 자식에게는 주어도 주어도 부족하기만 한, 아주 보통의 부모들처럼 말이다.

그때 나는, 시간이 지나면 퇴원할 거라 믿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곳도 다닐 줄 알았다. 엄마의 죽음을 상상조차 못 했다. 그 문자를 보내온 날은, 엄마 장례식이 있기 불과 6개월 전이었다.

그 후로 엄마의 문자에는 오타가 점점 더 많아졌다. 손이 떨려 문자를 쓰기도 힘들다는 엄마의 말. 그 메시지를 보고 나는 전화를 했을까? 답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사람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문자 속에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00점도 모자란 150점짜리 딸이다. 최고다. 잘하고 있다. 사랑한다.” 엄마는 끊임없이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 모든 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걸까. 아니면 자기 연민에 빠져, 그 사랑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엄마는, 당신의 세 자식을 사무치게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하늘보다 높은 부모의 사랑을. 이 불효를 어찌 갚을 길이 있겠는가.

‘이건 꿈일 거야. 진짜 부모는 따로 있을지 몰라.’ 현실이 너무 버거울 때마다, 그런 상상 속으로 도망치곤 했다. 하지만 지금, 40대 중반을 살아가는 나는 안다. 내 부모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 소중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부족했지만 따뜻했고, 고단했지만 사랑이 있었던 그 시절을 나는 마음 깊이 감사한다.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태어나도 당신 자식으로 태어나길 감히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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