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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경청꾼 Jun 23. 2023

함께 걷는 시

<제주여행을 마치고_하>

 일곱 시간 넘게 잠들어있던 걸 보면 불면증이 치료되었나 보다. 조식 뷔페로 배를 채우고 바닷바람으로 소화를 시키다 보니 어느덧 체크인 시간이 가까웠다. 해가 강하지 않은 오전에 치유의 숲을 거닐며 피톤치드 가득한 나무 기둥들을 쓸어보았다. 점심은 차롱 도시락이라는 건강식이었다. 이에 대한 후기만으로 지면 하나는 채울 수 있을 맛이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나마 이호테우 해변에 발을 담갔다. 아차차, 잠시 시간을 내려두었더니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급히 공항으로 향하여 겨우 비행기 좌석에 앉아 제시간에 서울에 도착했다. 선약이 있었기에 여행을 함께한 다른 일행들보다 일찍 자리를 떠야만 했다. 다행히 약속 장소인 지하철역까지 동행해 주신다던 분이 계셨다. 덕분에 그날의 귀갓길까지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한 단락에 둘째 날 하루치 추억을 욱여넣었다. 이 여행의 본질은 시 낭송이니만큼 이번에는 시각장애인 분들이 직접 낭송한 시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새소리가 싱그러운 치유의 숲에서 초록에 둘러싸여 나무로 만든 침대에 누웠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새벽에 내렸다던 비는 숲의 내음만 깨운 채 사람들이 자리 잡을 나무 침대를 비워두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듯한 모두의 한가운데서 한 분씩 앞에 나와 발표하시는 시각장애인 분들의 입술에 귀를 열었다.


 먼저 최연소 참가자셨던 L 님이 고른 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었다. 유명했지만 모든 구절을 외지 못하는 시였다. 숲의 요정이 날갯짓하는 듯 소담한 목소리로 전해진 익숙한 시가 새로웠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된다는 가장 유명한 부분보다 마지막 부분에 마음이 갔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고백은 젊음의 특권이었다. 두 번째 낭송은 소녀 같으셨던 B 님이셨다. 막상 낭송을 시작하니 B 님께서는 전문 성우 못지않게 중후한 멋을 내셨다. 더욱이 고르신 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인 시, 이어지는 자작 시는 90여 년 전의 시인과의 악수였다. 시를 마치자마자 B 님 다시금 소녀처럼 수줍게 웃어 보이셨다.


 다음은 감귤 피자 짝꿍이었던 Y 님이셨다. 비건이기도 했던 그분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다. 시편 23장을 읽으시는 Y 님의 목소리에 같은 종교를 가진 분들께서는 각 절이 끝날 때마다 '아멘'이라고 속삭이셨다. 그러던 중 낭송하시던 Y 님께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준비한 구절을 모두 읽으신 뒤에도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평소 종교 안에서만 신을 찾지 않겠노라 여기는 냉담자였다. 그럼에도 Y 님의 낭송에 감정이 동했다. 성경 구절의 내용보다 무언가를 간절히 믿는 태도가 부러웠다. 믿음이 클수록 마음은 충만한 법이니까.


 마지막 순서는 노을이라는 필명이 있는 시인 K 님이셨다. 안내견과 함께 제주를 오신 K 님은 직접 쓰신 시를 몇 편 읽으셨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남았던 시는 역시 이번 제주여행의 마스코트기도 했던 안내견과 관련한 시였다. 서사시에 가까웠던 ‘너를 사랑해’라는 시의 줄거리를 꺼내어 보자. 존댓말로 진행되는 시는 공사장의 풍경을 그리며 시작한다. 시가 진행되다 보면 그 시선이 안내견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내견과 시각장애인 파트너가 공사장 길을 걷는 앞에 인도에 거대한 트레일러가 서있다. 안내견은 트레일러를 피해 차도로 방향을 틀지만 파트너는 똑바로 건너라고만 한다. ‘강아지가 참 똑똑하기도 하네.’ 파트너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안내견의 마음을 깨닫고 강아지를 안아준다.


 각자의 성격이 드러나는 훌륭한 낭독을 들은 것에 비해 내가 낭송하는 시간은 부끄러웠다. 황홀한 경험을 한 것만으로 만족하기에는 나의 염치가 부족했다. 지금까지 오전에 치유의 숲에서 들었던 시의 감상을 적었다. 불만족스러운 스스로의 시 낭송 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오후에 이호 테우해변에서의 감상은 시로 남겨볼까 한다. 오랜만에 지어보는 시에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떨린다.


==========


후련한 파도에 검게 굳은 모래에다가

흰 지팡이로 '동행' 두 글자를 적어보려다가

글자는 나아가지 못하고 동동거리기만 했습니다.


유심히 저를 바라보던 고마운 분과 함께

신발과 양말 벗고, 긴 바지도 걷어 올리고,

얕은 일탈에 얇은 두 다리 무릎까지 담갔습니다.


바닷바람처럼 보드라운 팔꿈치를 디딘 채

가만히 있어봐야 파도치는 모래에 묻힐 뿐입니다.

훠이훠이 부지런히 두 발을 놀리다 보니


다시금 신발을 신어야 할 시간입니다.

더운 시멘트 위에서 밍근한 물에 발을 닦아도

발바닥에 고이고이 남은 모래는 털지 못합니다.


지하철에 절어 온 귀갓길이 고됨은

일상의 파도에 씻길 고운 미련의 무게라 하니

서로의 귀퉁이 내어줄 이와 자박자박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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