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기하는 게 더 쉽다는 걸 배우며 자랐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도 아니었고, 힘이 센 아이도 아니었다. 그저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는 아이 중 하나였다. 그리고 초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나는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아이야’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 번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그 틀 안에서 살아간다. 자신만의 틀에서 보통보다 조금 못하고, 그런 자신이 만든 가정도 조금 모자라고, 결국 보통보다 살짝 못한 인생을 살다가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대부분 서민들은 그렇게 산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살 줄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 나를 다르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나는 게이였고, 그래서 한국에서는 더 이상 숨 쉬며 살 수 없었다. 그것이 나를 한국에서 호주로 이끌었다. 만약에 내가 게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브런치도 호주에서 삶도 모르고 그냥 보통 사람보다 조금 못난 사람으로 살다가 인생을 끝냈을 것이다.
그런데 호주에서 나는 전혀 다른 진실을 배우게 되었다. 비록 조금 부족하게 태어난 사람도 노력하면 된다. 단,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향해 노력할 때 말이다. 남을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한국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패션의 세계에 첫발을 들였다. 한국에서는 감히 꺼낼 수 없었던 내 취향과 감성이, 이곳에서는 경쟁력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쫓으며 일했고, 생계를 유지했고,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다시 짜 맞추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나는 멜버른의 트램 운전사로 일하고 있다. 이것도 계획된 것은 아니다. 이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교통수단의 역할일지 몰라도, 내게는 완전히 다르다. 도시를 관통하는 레일 위에서, 나는 매일같이 질서와 리듬을 가지고 움직인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출퇴근길의 손님들을 안전하게 태워주는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 단조로움 속에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과거처럼 끊임없이 ‘무언가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자유인지, 나는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한 아이의 아빠다. 아빠라는 말이 아직도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 아이가 내 곁에 있어 매일을 살아갈 이유가 되어 준다.
그 아이의 이름은 행복. 이름처럼, 아이는 내 삶에 진짜 행복을 데려왔다.
게이 아빠라는 단어는 세상에 여전히 낯설고, 때론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나는 이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간다. 최근에는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로도 한 발짝 내디뎠다. 2025년, 나는 단편소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로 문단에 데뷔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진실들을 조심스럽게 단어로 엮었다. 그 이야기를 읽은 누군가가 "나도 그런 길을 걷고 있다"라고 말해주는 순간, 비로소 내 지난 삶의 파편들이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삶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기회가 손을 내민다. 그게 인생이 주는 가장 공정한 선물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