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결혼식 전날 밤이다. 나와 스티븐은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린도스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저녁 식사는 기대 이상으로 환상적이었다. 석양 속에 물든 고대의 유적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완벽한 배경이었다.
내일 있을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식당 직원에게 택시를 부탁했는데, 그 직원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나 더 했다. 혹시 다른 커플과 합승을 해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큰 문제없다고 생각해 흔쾌히 동의했다.
잠시 후 택시에 오른 커플 중 여성은 임신부처럼 보였다. 남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스티븐은 그의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대답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그들의 호텔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현금이 없는데, 혹시 대신 내주실 수 있을까요?” 금액은 고작 10유로, 한화로 치면 약 2만 원 남짓이었다. 그는 카드밖에 없다며 난처해했다.
그 순간 스티븐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괜찮다”며 기꺼이 내주었다. 나는 순간 화가 났다. 왜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 대신 내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이래서 내가 스티븐과 20년 가까이 함께 살아왔구나.”
호텔로 돌아와 내가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했어?”
스티븐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현금 10유로가 없다는 이유로, 그 커플이 먼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게 더 안쓰러웠어.”
순간 그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여전히 손익을 따지고 순간의 불편함에 민감하지만, 스티븐은 사람의 상황을 먼저 본다. 작은 행동 하나가 그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르지만, 그 다름이 곧 우리가 함께 살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스티븐을 사랑하고, 결국 여기 그리스까지 따라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 결혼식의 주인공과 우리는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 굳이 이 먼 그리스까지 와야 할 만큼 친밀한 관계는 더욱이 아니다. 그런데 스티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결혼식을 하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그 말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왜’라는 질문으로 머뭇거리지만, 스티븐은 ‘덕분에’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결국 이 여행은 누군가의 결혼식이 아니라, 우리 둘의 삶에 선물처럼 얹힌 기회였다. 그렇게 바라보니, 낯선 섬에서의 결혼식도, 예기치 않은 만남도, 모두 감사한 여정의 일부가 되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