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학비와 아빠 병원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하는 아들과 사랑하지 아빠 중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by Ding 맬번니언

2018년 7월 2일 과거 이야기


오늘 한국에서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집에서 의식을 잃으셨는데, 다행히 아빠 지인분이 발견했다. 그래서 급하게 대학 병원에 입원하셨다. 골든타임(4시간 이내)을 지나서 조영술로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을 하셨다고 했다. 뇌졸중의 종류에서 혈관이 막힌 것을 뇌경색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그렇게 뇌경색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나는 한국으로 급하게 들어가서 아버지를 돌봐 드렸다. 행복이는 그동안 스티븐과 소피아가 돌보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서 보니 엄마 혼자 병간호를 하고 계셨다. 누나들이 일하고 바빠서 모든 짐을 엄마 혼자 지고 계셨다. 누나가 회사에 눈치를 보고 연차를 내고 도와 주려고 병원에 왔는데 안쓰러웠다. 육아에 일에 병간호는 솔직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장님인 내가 모든 걸 알아봐야 했다.


뇌졸중으로 좋은 병원등을 검색하고 직접 찾아다녔다. 10곳은 넘게 병원을 찾아다니고 상담하고 했다. 그렇게 낮에는 병원을 알아보고 밤에는 엄마와 내가 아빠를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섰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24시간 동안 간호를 해보니 대소변은 물론 새벽에 불면증과 갑자기 몸을 움직여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냈는데 힘들었다. 그런 일을 엄마 혼자 하다니 빨리 좋은 병원으로 옮겨서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며칠 나를 지켜보던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다른 환자분과 그의 가족이 나보고 효자라고 했다. 결혼 안 했으면 사위 삼고 싶다고 이야기 들을 정도로 나는 아빠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에 대한 매형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한 것도 있다. 나는 호주로 한국에 가족들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그렇게 원하는 아들 도리를 나는 한다. 나는 자식 된 도리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아빠를 사랑하는 것이랑 거리가 멀 기 때문이다. 호주에 갈 때 매형들은 내 호주행을 반대했다. 호주로 도망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주변 지인들을 보면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한국에 식구들은 나 몰라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 모시는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것 아니냐 라는 말도 들었다. 매형들은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릴 때 우리 식구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솔직히 나는 아빠와 그렇게 사이가 좋지는 않다.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빠가 많이 보수적이고 욱하시는 편이다.


평소엔 멀쩡하시는데 갑자기 폭발하는 스타일시다. 아빠가 폭발하는 이유가 다양했지만 사실 자기가 화가 나면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시는 것으로 우리는 늘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갔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어릴 때 많이 맞았다. 아빠는 자신이 기분이 나쁘면 갑자기 때리셨다. 아빠는 다행히 술은 마시지 않아 지만 화가 나시면 죽일 듯이 팼다. 거기에 술까지 드셨으면 아마 누구 한 명은 죽었을 것이다. 맞는 게 무서워서 나는 한 번도 대들지 못했다. 맞다가 다리도 부러지고 군대 제대하고 학교 복학하고 어느 날 밥 먹다가 아빠가 화를 내시다가 분을 못 이기고 칼을 도시 적이 있다. 그래서 한 동안 친구 집에서 지냈다.


나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아빠를 피했다. 그리고 한동안 아빠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에서 2년 2개월 아빠랑 떨어져 살아서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그런 용기가 난 것 같다. 아무튼 아빠는 그다음부터는 나에게 손을 대지 않은 셨다. 그런 과거를 뒤로 하고 내가 아빠를 돌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아빠 병간호를 하는 것은 과거를 과거로 둘 정도는 되어서 가능했다. 10일 넘게 병간호를 하면서 나에게는 정말 무서운 분이 셨는데 한 순간 누구의 도움 없이 기본적인 대소변을 처리하지 못하는 아빠를 보니 참 안타까운 인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내가 행복이 아빠가 되지 않았다면 100프로 자신하는데 병원에서 아빠를 돌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이 아빠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빠를 돌 볼 수 있는 사람은 되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대범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아직은 용서를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엄마와 누나들은 아빠를 용서 이상으로 늘 아빠를 챙겼다. 그들은 나에게 말한다. 아빠는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힘들었다고 우리가 그런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나만 아빠를 이해 못 하고 문제가 있는 것 같이 살았다. 그런데 실제로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아빠가 우리 가족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으면 나는 용서가 안될 것 같다. 내가 속이 좁은 사람일 수 있지만 아빠에게 그동안 받은 상처는 쉽게 살아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알아본 병원 중 가족회의를 통해서 우리 지역에서 제일 좋은 재활 병원으로 입원을 시켜드리고 나는 호주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자식으로 도리를 다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하는데 진심으로 아빠가 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꼭 물어보고 싶다. 왜 우리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그렇게 떳떳한 지? 자식에게 그렇게 행동해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아빠의 자식이지 소모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행복이를 내 기분 쓰레기 통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아빠는 병원에 계신다. 앞으로도 계속 병원에서 지내실 것 같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 못할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병원비다. 처음에 병원비로 300만 원 이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이 사립학교를 포기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하나뿐인 아들 학비와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지 않는 하나뿐인 아빠에 병원비에서 나는 아빠를 선택했다.


3남매이기에 집마다 100만 원씩 얼마간 버티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나고 작은 누나가 더 이상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선포했다.


그래서 큰누나와 내가 지금까지 병원비를 책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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