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내 패션쇼를 하는 날이다. RAW(natural born artists)에서 주최하는 쇼에 초대를 받았다. RAW은 시각 예술, 영화, 패션 및 액세서리 디자인, 음악, 공연예술, 미용, 공예, 사진 분야의 독립적인 재능을 조명한다. 크리에이티브가 자신의 지역 커뮤니티와 전 세계에 선보일 수 있는 가장 재미있고 대안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평범한 예술 쇼가 아니다.' 라는 것을 마음껏 드러내고 RAW는 기분좋은 시끄러운 활기와 다채로움과 넘치는 창의력이 함께한다.
이번 패션쇼에는 총 6벌이 소개되었다. 나는 그 중 남성복 한 벌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는데 먼저 모델을 만나보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모델이 누구인지 한눈에 띄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역삼각형 몸매의 어깨 깡패, 뒷모습만 봐도 너무 섹시하고 멋있었다. 혹시나 하고 이름을 부르니 그가 나를 쳐다보았는데 눈이 마주친 순간 짧게 자른 머리가 남성적인 외모랑 잘 어울렸다. 그가 하얀 이를 보이면서 웃으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데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아니 모델의 가슴 근육이 꽉 낀 티셔츠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흥분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해보니 그는 미국에서 온 럭비 선수로 전형적인 미국형 미남 모델이었다. 너무나 완벽하게 세팅된 것 같은 이 모습이 막 운동을 끝내고 바로 온 모습이라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신의 피조물이 아닌가.
이후로도 패션쇼 준비 때문에 우리는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졌다. 나는 그의 멋지고 섹시한 매력에 어울리는 정말 멋진 옷에 대한 영감이 샘솟는 것 같았다. 피팅을 위해 그가 눈앞에서 팬티만 입은 체 왔다 갔다 하니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처럼 뛰는 것이 아닌가. 내가 스티븐 이외의 남성이 팬티만 입은 체 눈앞에 오가는 것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 것인지, 그의 남성적인 매력은 정말 의심할 여지 없이 너무나 최고였다. 내가 만든 의상을 갈아입을 때마다 보이는 몸에 문신이 그를 더 섹시해 보이게 만드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를 벗겨둔 채 옷을 갈아 입히며 감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핏을 보고 그에게 맞게 의상을 수정했다. 내가 만든 그의 의상은 플라스틱 비닐에 검은색 메쉬(Mesh)로 만든 옷이다. 메쉬는 직물로 옷감을 짠 듯한 형태의 배열 모양새를 가진 망 모양인데 그의 섹시한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면서도 잘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오늘 패션쇼는 가족들과 지인들까지 와 있기에 정말 내 작품이 가장 돋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역시 내 안목대로 패션쇼에 등장하자마자 그는 가장 큰 환호를 받으며 무대 위를 장악해버렸다.
'요즘 나의 삶은 패션 디자이너 비렐 영으로서 삶 20% 정도에 행복이의 아빠로서의 삶 80% 정도인 것 같다.'
어느 쪽도 완벽하게 버릴 수 없이 잘 해내고 싶다 하면 그건 내 욕심인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행복이를 키운 게 이제 고작 1년도 안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패션 디자이너 바렐 영으로서의 삶이 10%에 불과할지라도 0%만 아니라면 계속하는 거 자체에 의미를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디자인을 향한 열정이 있고, 나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며, 오늘 행복이를 봐주겠다고 선뜻 나서주신 스티븐의 부모님처럼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다. 그렇기에 지금 모델의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무대 위로 내보내는 나는 오롯이 비렐 영으로서 살아가는 순간 아닐까? 위킹맘들이 일하면서 자신의 아이를 걱정하듯이 행복이가 살짝 걱정되기는 했지만 지금 이곳에서 쇼를 하면서 내가 느끼는 전율이 좋았다. 모델들에게 내가 원하는 포즈를 가르쳐 주고 내 옷을 입은 모델들을 보면서 내가 하는 패션을 사랑하기로 했다.
'언젠가 행복이가 커서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었을 때 다정하고 가정적인 아버지만 되고 싶지는 않다. 당당하게 내가 일궈낸 커리어를 보여줄 수 있는 자랑스러운 롤모델이 되고 싶다. '
어떤 의미론 지금 이 패션쇼장에 있는 순간이 나에게는 일하는 순간인 동시에 휴식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게 무슨 모순된 표현인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이와 온종일 함께 있다 보면 가끔 혼자 있고 싶은 순간도 있고 아이와 관계없는 곳에 있는 시간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있다. 비록 신데렐라처럼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 분유를 타고 행복이 장난감을 정리하는 아빠로 돌아갈지라도 지금은 그저 샴페인을 마시면서 내 쇼를 관람 해주기 위해서 온 가족과 지인들과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RAW(natural born artists)은 단순히 패션쇼만 하는 곳이 아닌 재능 있는 사람들의 패션, 음악, 댄스 등 모든 예술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 형태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음악과 댄스를 동시에 관람할 수 있어서 나도 패션쇼가 끝나 한결 편한 마음으로 다른 공연을 관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