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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g 맬번니언 Aug 13. 2024

네가 진짜 아빠가 아니라서 창피해서 그래?

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꾀병도 함께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9살이 된 행복이는 이제 제법 진지하게 꾀병을 표현하는데, 가끔은 진짜 아픈 건지, 꾀병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눈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제가 학교에 가기 전에 피아노 연습을 시키는데, 아이는 눈이 아파서 형광등 불빛이 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두운 방 행복이를 옆에 앉혀 놓고 계속 피아노 연습을 시키는데, 마치 제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끝내고 학교에 갈 시간이 되자, 행복이는 이제 학교까지 걸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화가 폭발할 것 같았지만, 스티븐이 저를 달래며 "학교 가기 전에 아이를 울리지 말자"라고 했습니다. 저도 행복이를 울려서 보내면 마음이 불편하고, 행복이가 울고 간 날에는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수업에 집중을 못한다는 메일을 받기 때문에, 결국 행복이가 학교에 걸어가지 않기로 한 것에 동의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상황들이 계속해서 반복되겠지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행복이가 진짜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대처해야 하는 부모의 역할이 쉽지 않음을 실감합니다. 혹시 몰라서 선글라스를 주었습니다. "눈이 아프면 쓰고 있어"라고 말이죠. 아이는 또 제가 주는 선글라스 받아서 쓰고 학교에 갔습니다.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산책을 하고 있던 중, 다니엘 형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잠시 통화 가능해?" 형이 물었습니다.


"네, 지금 시간 돼요. 형, 무슨 일이시죠?" 제가 묻자, 형이 토요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세비와 함께 태권도 단 시험에 참석했는데, 세비가 무사히 단 시험에 합격했어. 합격증을 건네줄 시간이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비가 내가 건네준 합격증을 거부하고 날 무시하더라고. 그 순간 너무 민망하고 화가 나서, 집에 가는 도중 세비에게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하고 말았어."


"형,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형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네가 진짜 아빠가 아니라서 창피해서 그래?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그렇게 말 안 들으려면 네 친부모한테 가버려!"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세비가 울고, 나도 속상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네게 전화했어."


다니엘 형은 세비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저는 형의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형, 그건 정말 마음 아픈 일이네요... 세비도 많이 상처받았을 것 같고, 형도 속상하시겠어요."


형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 말했습니다. "그래, 나도 후회돼.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


저는 잠시 고민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형, 그 상황에서 너무 화가 나셨겠지만, 세비도 많이 상처받았을 것 같아요. 저도 스티븐을 만났을 때 소피아가 10살, 조쉬아가 12살이었잖아요. 저도 그때 아이들이 미웠던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죠. 그런데 행복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아이가 못된 짓을 하면 정말 미워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거예요."

형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맞아, 네 말이 맞아. 너무 후회돼.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

저는 형에게 조언을 건넸습니다. "먼저 세비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중요해요, 형. 세비가 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해요. 그럼 아이도 형의 진심을 알면 분명히 이해할 거예요."

형은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세비와 잘 이야기해 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고마워,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저는 형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힘내세요, 형. 아이들과의 관계는 늘 쉽지 않지만,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면 분명히 나아질 거예요."



저는 스티븐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삶은 드라마가 아니기에, 드라마처럼 친자식과 입양 혹은 재혼한 가정의 자식들에게 생각보다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친자식과는 다르게 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이들도 나의 일부가 되어가고, 자연스럽게 같은 마음으로 대하게 되더군요. 아이들이 때로는 못된 짓을 할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아이들의 행동이 마음 깊이 다가오고, 그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내 자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쌓인 경험들 덕분에 얻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도 사람입니다. 그래서 실수를 합니다. 실수를 하고 나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어른과 아이에 차이 같아요. 형이 세비랑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했으며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상처 주는 소리는 서로에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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