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하, 인생이 생각보다 길구나...
많은 분들이 비슷할 거라 믿는다.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일상에서 여러 일이 동시에 발생했을 때도, 항상 순서를 먼저 생각하고 일을 정렬한다.
그래야 주어진 시간과 내 능력 범위 내에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해 내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단순히 일의 순서 문제 차원이 아니라, 난이도 높은 어려운 문제들이 한꺼번에 닥쳐 숨이 콱 막혀버린 상황에서는 늘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본 후 '기본'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본다.
그러고는 가까스로 순서를 정해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곤 했다.
소위, 힘들고 어려울 때는 "Back to the Basic"을 항상 먼저 떠 올리고 실천하는 것이다.
최근 나는 많이 어렵고 힘들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다양한 감정들, 이런저런 일들,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등이 한꺼번에 뒤섞여 있는 지금의 나의 머릿속, 마음속으로부터 어떻게 '평정'을 찾고, '새로운 출발'을 찾을 것인가? 섣불리 엄두가 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혼란의 응어리들을 계속 맘속에 담고 가기에는 이제 슬슬 지치고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다시 "Back to the Basic' 해서 무엇을, 어떤 것부터 시작할 것인가? 하나하나 정리해 볼 시간이 온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아는 것이 없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어지러운 집 청소를 할 때도 순서가 있다. 우선, 비우거나 버릴 것을 먼저 찾아 치우는 것이다.
"그래, 우선 버릴 것은 버리고, 비울 것은 비우자..."
지난 28년의 긴 여정의 끝에 전혀 '배려 없는 버림'을 받고 나니
지금은 지난 세월 전체를 부정해 버리고 싶고, 이 세월의 기억을 전부 어디다 처박아 버리고 싶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속에는 많은 추억들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이, 소중했던 성취감의 뿌듯한 시간들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기도 하다.
아울러, 내가 부단한 노력을 통해 만들어 온 나름 전문성이 묻어 있는 '한 개인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고...
마치, 술을 제조할 때 고두밥을 쪄서 누룩으로 발효시킨 '술지게미' 와 같은 지금의 감정 덩어리로부터
어떻게 '맑은 술'과 다시 '찌꺼기'로 분리해 낼지가 지금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아까운 '술지게미'를 통째 다 버려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소박하게 시작하지만, 지난 시간의 좋은 기억들은 글로 써 나가며 기록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나 개인의 중요한 삶의 기록 한 부분으로 남기는 의미 외에도, 내가 공부하고 경험한 '무형의 자산'을 '유형의 자산'으로 전환하여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될 수 있도록 '내 인생 전반전의 의미'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리고, 정말 나에게 남겨진 몇 안 되는 소중한 분들과는 계속 좋은 인연을 유지해 나가리라 다짐 또한 해 본다.
그리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지워버리려고 한다.
떠난 회사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을 계속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직 '미련'이 남았다는 방증이고, 동시에 '찌질함'이라 생각한다.
남녀 간에 사랑하다 헤어져도 비슷한 경우가 생기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과감하게 부정의 기억들을 지워버림을 택하고자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굳이 과거의 많은 사람들과 다시 만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그 부정의 기억들을 떠올리다 오히려, 남기고 간직하고 싶은 좋은 기억들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2004년에 개봉한 로맨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수진(손예진)은 '건망증'이 심해 이로 인해 우연히 만나게 된 철수(정우성)를 많이 사랑하게 된다. 이후 수진은 자신이 '건망증'이 아니라 점점 자신의 '뇌'가 죽어감으로써 기억상실이 진행되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에는 사랑하는 철수를 보내주기 위해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하는...
젊은 날 보았던 아름다운 한 폭의 로맨스 영화다.
나도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내 기억 속의 '나의 회사'를 이제 놓아주려 한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