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하, 인생이 생각보다 길구나...
'회복탄력성(Resilience)' 이란 개념이 있다.
조금씩 다른 정의가 있지만 쉽게 정리해 보자면,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다."
다른 말로 흔히들 '마음의 근력'이라고도 한다.
이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어떤 위기나 고난에 처해도, 그 위기와 고난에 대해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으로 스토리텔링 할 줄 알며, 결국에는 재도약의 발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임원 재직 시절 많은 시간을 인사업무를 수행하였던 나는 이 개념을 어느 정도는 알고 업무에 활용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뼛속 깊이 내재화되지 못한 한 조각 지식을 가지고 마치 내가 '지식인' 인양 떠들었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나 스스로가 지금과 같은 힘든 시기에 막상 처하고 보니 그 어둠의 터널 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회복탄력성'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크게 들어왔고, 주저 없이 구매하여 그날 저녁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 한 권을, 그것도 나름 전문 서적을 쉼 없이 단숨에 완독(完讀) 해 버린 게 언제인 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 일할 때 제법 떠들고 다녔었는데, 왜 이걸 잊어버리고 있었지?"
지난 28년의 직장 생활을 통해 나에게는 차곡차곡 쌓아 올려 온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힘들 때나, 소위 잘 나갈 때 두 경우 모두 "이 시기는 절대 길지 않을 거야... 절대..."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며, 힘들 땐 좌절하지 않고, 잘 나갈 땐 거만하지 않고, 항상 '일정 선'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했었고, 다행히 그 믿음은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또 다른 하나는 후배들에게 많이 했던 말인데, 긴 직장 생활에서 롱런하려면 매사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에 대해 자기만의 고민을 통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의 '목표'를 향해 긴 여정을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이겨내고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힘들고 나쁜 일도 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여정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최근 소위 'MZ 세대'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주로 '상사'가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경우가 빈번했었고, 그들과 이야기할 때 주로 이 생각을 들려주곤 했던 것 같다.
그랬던 나였는데...
내가 막상 '퇴직'이라는 상황에 처하고 보니 이 생각을 잠깐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은 '인수분해' 과정을 통해 '남기고 유지할 것'과 '버릴 것'을 분리해 낸 상황이라 이제 나의 마음속 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 나의 '회복탄력성'을 끄집어 내는 시간이 된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긍정의 의미를 부여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건강 문제이다.
작년에 누적된 스트레스로 일종의 '공황장애' 증상이 생겨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상담과 약물치료를 해오고 있던 중이었다.
'공황장애'라는 질병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TV에 나오는 '연예인 병' 정도로 알고 있던 질환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었다.
나에게는 약간 '폐소공포증' 형태로 발현이 되었는데, 살면서 수도 없이 탄 비행기를 못 타게 되었고, 심할 때는 집에서 방문, 창문 닫고는 잠을 못 잘 정도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약물치료도 중단한 상태이다.
"웃픈일이다...!"
두 번째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놓고 볼 때 누구나 예외 없이 '인생 후반전'을 거쳐야 하고, 그래서 이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에너지와 열정을 고려할 때 지금 나이에라도 바깥세상으로 나온 게 얼마나 다행인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더 늦게 나왔으면 더 많은 사회적 제약이 괴롭혔을 것 같다.
"땡큐~ 일찍 내보내줘서...!"
세 번째는 요즘 점점 행복을 알아가고 있다.
평일에 활동하는 즐거움도 알아가고, 아내와의 많은 대화와 함께 하는 시간, 무엇을 하든 시간에 쫓김이 없이 여유가 있는...살면서 철들고는 처음 느껴보는 것들이다.
"앞으로 겁나게 행복해질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