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루틴(routine)'의 회복
<제2부> 하, 인생이 생각보다 길구나...
'루틴(routine)'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크게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정보·통신 분야에서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을 말한다.
둘째, 체육 분야에서 운동선수들이 최고의 운동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하는 동작이나 절차를 말한다.
셋째, 일상, 틀에 박힌 일을 의미한다.
나의 경우에는 골프 칠 때와 일상에서 이 루틴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편이다.
예를 들어, 골프장에서 많은 루틴이 있지만,
티잉 구역(Teeing Area)에 올라가면 우선 티를 꽂고, 뒤로 물러서서 방향을 결정한 뒤, 빈 스윙을 천천히 한 번 하고는 어드레스에 들어간다. 항상 잊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되풀이해야 좋은 샷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의 루틴은 나를 포함한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한 개념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하루를 보내는 각자의 루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때 조금씩은 달라질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항상 일정한 루틴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사는 것이다.
나는 28년이라는 시간을 한 직장에서 루틴을 반복하며 살았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수면과 같은 무의식의 순간에서도 반복할 수 있을 정도의 루틴이 몸에 박혀 있는 것이다.
이 루틴을 들여다보자면, 사람에 따라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면 매우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는 분들은 나처럼 '삶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촘촘히 배치된 수많은 '해야 할 일'들이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하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그 결과물로 경제적·심리적 보상을 받으며 사는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경우는 소위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라는 장면과 동일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나'라는 자아가 상실된 '타인'이 만들어 놓은 공간을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나의 경우에는 이 루틴을 굉장히 즐기며 긍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한 편에 속한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루틴이 퇴직 이후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의식과 분리돼서도 몸이 알아서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야 할 고정되고 반복된 일이 없어진 것이다.
막상 닥치고 보니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퇴직한 동료, 선배들의 입에서도 한결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잃어버린 루틴을 찾아야 한다고... 루틴이 없어 불편하다고...
우선, 늦잠부터 고치기로 했다.
여섯시, 둘째 고등학생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기로 했다. 과감하게 이부자리도 정리해 버리고.
가벼운 산책 후 샐러드 위주의 가벼운 아침식사를 하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도 한 잔 즐긴다.
그리고는 백팩을 챙겨 메고 집을 나서 퇴직 임원 사무실로 향한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퇴직한 임원들이 교류도 하고, 재취업 준비, 기타 업무를 볼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 준다. 회사 그만두고 난 후 유일하게 회사에 고마운 것이 이 사무실이다.
사무실에 나와서는 28년간 너무나도 익숙했던 루틴과 비슷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책도 보고, 어학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동료들과 가벼운 교류도 하고...
하루를 대충 이렇게 보내며 해가 진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서 비로소 다시 살아난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평생 살아온 습관을 한순간에 버리는 것은 힘든 것 같다.
내 친구는 담배를 끊기 어려운 이유를 루틴으로 설명한다. 언뜻 들어보면 궤변만은 아닌 듯해서 솔깃한 구석도 있다.
예를 들어, 담배 한 개비를 대략 열 번 정도 입에 댄다고 할 경우, 하루 한 갑을 피우면 총 이백 번을 입에 댔다 뗐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 행위를 일 년, 이년, 십 년, 이십 년 해 보라. 대략 몇 회라는 계산이 나오는지...
그러니 그 무서운 습관을 버리지 못해 담배를 못 끊는다는 것이다.
나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늘 나에게 맞는 루틴을 찾아 생활에 생동감을 불어 넣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며 뿌듯해하는 것이 중요하다.